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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GaN' 버리고 'AI 올인'…기술은 美에, 물량은 대만에 넘긴 '솔로몬의 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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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TSMC, 'GaN' 버리고 'AI 올인'…기술은 美에, 물량은 대만에 넘긴 '솔로몬의 분할'

TSMC, 차세대 전력반도체 GaN 사업 2년 내 철수…첨단 미세공정 집중 위한 '전략적 가지치기'
美 GF엔 '기술 라이선스' 줘 안보 챙겨주고, 대만 VIS엔 '장비' 넘겨 실리 챙겨…시장 질서 재편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절대강자 TSMC가 차세대 전력반도체의 핵심인 '질화갈륨(GaN)' 사업에서 손을 뗀다. 표면적으로는 사업 철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고도의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돈이 안 되는 '곁가지'를 쳐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주력 분야에 화력을 집중하는 동시에, 미국에는 '안보 기술'을, 대만 자회사에는 '양산 물량'을 나눠주는 교묘한 '시장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잔돈은 안 줍는다"…2나노 집중 위한 전략적 포기


지난 28일(현지 시각) 디지타임스와 업계에 따르면, TSMC는 2025년 중반 "향후 2년 내 GaN 파운드리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겠다"고 선언했다. GaN은 전력 효율이 높아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의 필수 부품으로 꼽히지만, 6인치·8인치 웨이퍼 기반의 레거시(구형) 공정이 주류라 TSMC가 주력하는 12인치 초미세 공정에 비하면 수익성이 낮다.

업계 관계자는 "TSMC 입장에서는 2나노, 1.4나노 등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한 최선단 공정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급선무"라며 "매출 비중이 미미하고 손이 많이 가는 GaN 사업을 과감히 정리해 리소스를 효율화하려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美엔 '기술 안보' 선물…GF에 라이선스 이양

주목할 점은 TSMC가 떠나면서 취한 행동이다. TSMC는 경쟁사인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GF)'에 자사의 핵심 GaN 공정 기술(IP)을 라이선스 방식으로 넘겨주었다. 이는 철저히 미국의 입맛을 맞춘 정치적 행보로 해석된다.

GaN 반도체는 미사일 레이더, 통신 장비 등 방산 무기에 필수적이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이 핵심 부품의 공급망이 대만에 편중된 것을 안보 리스크로 여겨왔다. TSMC는 이 기술을 미 국방부의 신뢰를 받는 GF에 넘김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기조를 충족시키고 안보 우려를 잠재우는 '외교적 선물'을 안긴 셈이다. GF는 미국 버몬트 공장에서 TSMC 기술 기반의 고신뢰성 칩을 생산해 데이터센터와 국방 시장을 장악한다는 계획이다.

대만엔 '실리' 챙겨줘…VIS·PSMC의 낙수효과


미국에 명분을 줬다면, 대만에는 실리를 남겼다. TSMC는 자회사 격인 뱅가드(VIS)에 GaN 생산 장비를 이관하며 '양산 허브'로서의 지위를 물려주었다. VIS는 독자적인 기판 기술과 TSMC의 유산을 결합해 가전, 소형기기 등 물량이 많은 '볼륨 존(Volume Zone)' 시장을 흡수할 전망이다. 또 다른 대만 파운드리 PSMC 역시 저렴한 생산 단가를 무기로 가격 민감도가 높은 범용 시장 공략에 나섰다.

결국 TSMC의 퇴장으로 시장은 △미국(GF): 고신뢰성·안보·프리미엄 시장 △대만(VIS/PSMC): 대량생산·가성비·범용 시장으로 명확히 양분되게 됐다.

엔비디아가 쏘아 올린 '전력 전쟁'

TSMC가 떠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등장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량을 폭증시키면서, 이를 제어할 고효율 GaN 반도체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TSMC의 철수 시한인 2년 내에 새로운 공급처를 찾지 못하면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업계 전문가들은 "안보와 신뢰성이 중요한 서버·전장용 칩은 미국 GF로, 원가 절감이 중요한 소비자용 칩은 대만으로 주문이 몰리는 '공급망의 이원화'가 고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TSMC는 떠났지만, 그들이 설계한 판 위에서 미국과 대만의 새로운 반도체 분업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