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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AI가 반도체 집어삼켰다"…게이머에 날아온 '인상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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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AI가 반도체 집어삼켰다"…게이머에 날아온 '인상 청구서'

웨이퍼 쟁탈전서 밀려난 범용 메모리…GDDR6 값 40% 폭등 '쇼크'
AMD, 내년 GPU 10% 인상 시사…"저가 PC 시대 끝, 지금이 가장 싸다"
인공지능(AI) 열풍이 촉발한 반도체 '웨이퍼 쟁탈전'의 여파가 일반 PC 사용자들에게 '가격 인상 청구서'로 날아들고 있다. AI용 메모리 수요 폭증으로 GDDR6 등 범용 메모리 생산이 밀려나며 값이 40%나 폭등하자, AMD가 내년 GPU 가격 10% 인상을 시사하는 등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사진은 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AI) 열풍이 촉발한 반도체 '웨이퍼 쟁탈전'의 여파가 일반 PC 사용자들에게 '가격 인상 청구서'로 날아들고 있다. AI용 메모리 수요 폭증으로 GDDR6 등 범용 메모리 생산이 밀려나며 값이 40%나 폭등하자, AMD가 내년 GPU 가격 10% 인상을 시사하는 등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사진은 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포식자가 반도체 생태계의 자원을 독식하면서, 그 청구서가 엉뚱하게도 전 세계 PC 사용자와 게이머들에게 날아들고 있다. 데이터센터용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 D램에 생산 역량이 집중되면서, 일반 소비자용 메모리 공급망이 붕괴 직전의 '병목(Bottleneck)'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11월 30일(현지시각) 더스트리트 등 외신에 따르면, AMD는 2026년 초 주력 그래픽카드(GPU) 라인업인 라데온(Radeon) 시리즈의 가격을 약 10% 인상하는 방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물가 상승이 아니다. 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이 소비자용 IT 기기의 '테크플레이션(Tech-flation·기술 제품 가격 상승)'을 구조화하는 신호탄이다.

'웨이퍼 할당' 전쟁…돈 안 되는 '게이밍 메모리'는 찬밥


이번 가격 인상의 본질은 '반도체 원판(Wafer) 할당 전쟁'에서의 패배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메모리 제조사들은 수익성이 보장된 AI용 HBM과 고용량 DDR5 서버 D램 생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정된 생산 라인(Capa)에서 돈이 되는 AI 메모리를 찍어내기 위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범용 그래픽 D램(GDDR)과 일반 PC용 메모리 라인을 대폭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풍선 효과'는 치명적이다. 공급이 줄어드니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외신 분석에 따르면 현재 GDDR6 메모리 모듈 가격은 전 사양에 걸쳐 33~43%나 폭등했다. 2025년 말 기준 D램 계약 가격은 연간 세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AMD가 그동안 내부적으로 흡수해 온 원가 상승 부담(BOM Cost)은 이제 임계점을 넘었다. 톰스 하드웨어는 "AMD가 마진율 방어를 위해 더 이상 가격 인상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반도체 제조사들이 AI 가속기 외의 부품 생산을 후순위로 미루면서 발생한 '메모리 강세장(Bull Market)'이 일반 소비자 시장을 덮쳤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는 '방관', AMD는 '전가'…소비자만 '독박'


시장 지배자인 엔비디아와 추격자인 AMD의 엇갈린 행보도 소비자들을 절망케 한다. 엔비디아는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데이터센터(AI) 부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게이밍 GPU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가격을 인하할 유인이 전혀 없다. 오히려 한정된 메모리를 고마진 AI 칩인 '블랙웰' 등에 우선 배정하는 것이 이득이다.

반면, AMD는 게이밍 부문의 수익성 악화를 가격 인상으로 메워야 하는 처지다. 리사 수(Lisa Su) AMD CEO는 "AI 수요는 만족을 모르는(Insatiable) 수준"이라며 회사의 성장 동력이 AI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일반 소비자용 그래픽카드 사업이 회사의 최우선 순위가 아니며,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냉혹한 비즈니스 논리를 내포한다.

"버티기는 필패"…PC 조립, 지금이 막차

시장의 결론은 명확하다.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은 이제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에 599달러로 출시된 AMD의 '라데온 RX 9070 XT'는 사실상 마지막 '특가' 제품이 될 공산이 크다. 도매상들이 인상된 메모리 가격을 반영해 재고를 다시 채우는 2026년 초부터는 소매 가격이 600달러 중반대로 뛸 것이 확실시된다.

보드 파트너사 관계자들은 "DDR5 시스템 메모리와 SSD 가격 역시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며 "업그레이드 계획이 있다면 저렴한 구형 재고가 남아있는 지금이 '막차'를 탈 시간"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2026년은 'AI세(Tax)'가 PC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빅테크 기업들의 AI 패권 경쟁이 격화될수록, 일반 소비자들이 누리던 '가성비 PC'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술의 진보가 역설적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얇게 만드는 '테크의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