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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끝내면 3000억 달러 쏜다"...트럼프, '돈'으로 푸틴 매수하는 '빅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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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끝내면 3000억 달러 쏜다"...트럼프, '돈'으로 푸틴 매수하는 '빅딜' 추진

마이애미 비밀 회동서 동결자산 활용한 '미·러 공동 투자' 논의
유럽·우크라 "안보 팔아넘긴 장사" 반발 속 엑슨모빌 등 美 기업은 '러시아 러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양자회담을 위해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엘멘도르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양자회담을 위해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통적인 외교 공식을 깨고 ''을 앞세운 파격적인 해법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러시아와의 거대 사업 기회를 미끼로 푸틴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는 이른바 '비즈니스 평화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8(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들과 러시아 고위 관계자가 마이애미에서 비밀리에 만나 유럽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활용한 대규모 합작 투자 계획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마이애미 밀실 회동... "국경보다 이익이 먼저"


지난 10, 미국 마이애미 비치의 한 저택에 세 명의 사업가가 모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 친구'이자 우크라이나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그리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키릴 드미트리에프 러시아 국부펀드(RDIF) 대표였다.

표면적으로는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을 위한 자리였으나, 실상은 러시아의 2조 달러(2940조 원) 규모 경제를 서방 시장으로 복귀시키는 경제 협력 회의였다고 WSJ는 전했다.

드미트리에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유럽에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 약 3000억 달러(440조 원)를 활용해 미국 기업들이 러시아와 공동 투자하고,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주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북극 광물 자원 공동 개발뿐 아니라, 냉전 시대 경쟁자였던 미·러 우주 산업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손잡고 화성 탐사를 함께 추진하는 계획까지 포함됐다.

트럼프의 계산법 "돈이 흐르면 총성 멈춘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복잡하게 얽힌 지정학적 난제를 ''으로 풀 수 있다고 믿는다. 위트코프 특사는 WSJ와 인터뷰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이 모두 사업 파트너가 되어 번영을 누린다면, 그 이익 자체가 미래의 갈등을 막는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1980년대 트럼프 대통령이 크렘린궁 맞은편에 트럼프 타워를 짓고 소련 공산당을 사업 파트너로 삼아 냉전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던 논리의 연장선이다. 국경선 확정이나 안보 보장 같은 외교적 난제보다는, 당장 눈앞의 경제적 보상을 통해 푸틴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서방 안보 당국자들은 이를 두고 "러시아가 미국을 안보 위협국이 아닌 '기회의 땅'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미국과 전통적 동맹국인 유럽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크렘린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의 분노 "이것은 평화 아닌 비즈니스"


이달 초 28개 항목으로 구성된 평화안 초안이 유출되자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발했다.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이것은 평화에 관한 것이 아니다. 비즈니스에 관한 것일 뿐"이라며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의 희생을 담보로 러시아에 면죄부를 주고, 그 대가로 미국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유럽 경쟁자들을 제치고 이권을 독점하려 한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트럼프의 참모들은 위트코프와 쿠슈너에게 "러시아는 평화 노력에 대해 험담만 늘어놓는 유럽 국가들보다 미국 기업이 들어오기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엑슨모빌·트럼프 후원자들, 러시아 자원 사냥 시작


이미 미국 기업들은 '전후(戰後) 특수'를 노리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엑슨모빌은 최근 카타르 도하에서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로스네프트와 접촉해, 2022년 철수했던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 복귀 가능성을 타진했다.

트럼프 주니어의 대학 동창이자 고액 후원자인 젠트리 비치는 제재가 풀릴 경우 러시아 북극 가스 프로젝트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또 다른 후원자인 스티브 린치는 파괴된 '노르트스트림 2' 가스관을 헐값에 인수하기 위해 로비스트에게 60만 달러(88000만 원)를 지급하고 미 재무부 허가를 추진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 역시 겐나디 팀첸코, 로텐베르크 형제 등 자신의 최측근 억만장자들을 내세워 미국 기업들에 희토류 광산 개발과 에너지 사업권을 제안하며 유혹하고 있다.

'그림자 외교'의 위험한 도박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기존 외교·안보 채널을 철저히 배제한 채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위트코프 특사는 미 중앙정보국(CIA)이나 국무부와 상의 없이 러시아 측과 대규모 포로 교환을 논의했다.

유럽 정보기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 몰래 북극 희토류 공동 개발 등 경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큰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WSJ"이것은 기업가들이 전통적인 외교라인 밖에서 사업 거래로 평화 협정을 굳히려는 놀라운 이야기"라며, 푸틴이 진정으로 전쟁을 끝내려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을 달래면서 시간을 벌어 우크라이나를 서서히 무너뜨리려는 것인지는 역사가 판단할 몫이라고 짚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