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적 세력균형으로 이동하는 유럽, 핵억지 공백을 안고 있는 한국에게 던지는 경고
이미지 확대보기영국의 국방 전문 매체인 디펜스 저널(Defense Journal)이 12월 2일 러시아가 유럽 전역을 타격권에 두는 장거리 공격 능력을 더욱 확장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이 수십 년 만에 가장 포괄적이고 공격적인 장거리 무기 재무장 계획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널은 영국이 유럽 여러 나라와 함께 새로운 장거리 정밀타격 체계를 공동 개발하며 유럽의 전략 구조 전체가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본 분석은 이 같은 외신 보도를 토대로 유럽의 장거리 억지력 재편 과정과 그 국제정치적 의미, 그리고 한국이 얻어야 할 대전략적 교훈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유럽 전략 지형의 구조적 변곡점
유럽의 전략 지형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영국이 추진하는 장거리 타격 체계의 재건은 단순히 무기 하나를 개발하는 수준을 넘어 유럽의 안보 체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하는 움직임이다. 러시아가 유럽 동부뿐 아니라 서유럽 핵심 도시까지 타격 가능한 장거리 무기를 실전 배치하고 실제 전장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유럽의 전략 공동체는 과거 냉전 이후 유지해온 제한적 억지 구조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 도달했다.
미국 확장 억지 의존이 드러낸 유럽의 취약성
영국의 장거리 타격 재건과 현실주의 억지론의 귀환
영국의 전략 전환은 이러한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다. 영국은 유럽에 대한 군사적 약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자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장거리 무기 개발을 재개했다. 이는 냉전 이후 사실상 중단되었던 본토 기반 지상발사 정밀타격 능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다. 영국이 유럽 동맹국과 공동으로 추진하는 새로운 장거리 타격 체계는 유럽 어느 지역에서든 러시아의 핵심 군사시설과 지휘체계를 직접 겨냥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
유럽의 방위 전략은 이미 그만큼 깊은 전략적 공백을 경험했다. 러시아의 장거리 타격 능력은 단지 기술적 위협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장거리 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전쟁의 시공간을 넓혀 상대의 전략적 계산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전쟁 비용을 급격히 높인다. 유럽은 이 사실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방공 체계를 확충하고 전장 인프라를 분산해도 공격자가 장거리 정밀무기를 대량으로 사용할 경우 방어는 항상 그 뒤를 쫓는 구조가 된다. 러시아는 이 원리를 활용해 군사 목표뿐 아니라 전력망과 통신시설 같은 전략적 기반시설을 반복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영국이 주도하는 장거리 대응 전략은 바로 이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시도다. 억지는 상대의 공격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공격을 감행할 경우 자신도 견딜 만한 피해를 감수하게 만든다는 현실주의적 안정이론에 기반을 둔다.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은 바로 이러한 전략적 균형의 핵심 요소다. 상대가 장거리 공격을 감행할 때 그 대가를 즉각 되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확보되지 않는 한 방어는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영국이 장거리 무기 개발을 재개한 배경에는 억지의 본질을 다시 현실주의적 정의로 되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동식 지상 발사 체계와 유럽연합 억지의 재구성
영국이 독자 개발 중인 이동식 지상발사 타격 체계는 유럽의 연합 전략을 더욱 촘촘하게 만든다. 이동식 지상 발사대는 전시에 생존성을 크게 높이고 실전 배치 지역을 동맹국의 영토 어디든 확장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이는 유럽 연합군의 전장 운용을 성격상 변화시키며 분산 배치 전력을 보다 강화된 형태로 구성하게 만든다. 이런 변화는 러시아 입장에서 상대해야 할 목표의 수를 늘리고 공격계획을 복잡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럽은 방어적 동맹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공격적 억지의 일부를 재건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장거리 타격 역량 회복은 미국의 전략적 변화를 고려한 조치이기도 하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전략을 강화하며 동맹국의 지리적 문제까지 모두 책임지기 어려운 구조가 강화되면서 유럽의 자주적 억지력이 빈틈없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유럽은 이전과 달리 미국이 전략적 부담을 완전히 떠안아 주지 않을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계산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만큼 유럽이 스스로 방위 능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판단이 커졌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무기 개발이 아니라 세계 질서가 다시 현실주의적 세력균형 체제로 이동하는 과정의 일부다. 자유주의적 질서가 약화되고 전체주의 블록이 장거리 타격 능력과 핵전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각 지역의 민주국가들은 다시 공격적 억지 체계를 자국의 손에 쥐려 하고 있다. 유럽이 재무장을 가속하는 이유는 전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안정은 방어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유럽 전략 변화의 근본적인 의미가 있다.
한국에 주는 대전략적 질문: 핵억지 공백을 계속 감수할 것인가
유럽의 변화는 한국에게 더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핵무기를 가진 상대가 장거리 타격 능력을 계속 확장하는 상황에서 비핵국이 재래식 억지만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믿음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유럽은 장거리 정밀타격 능력을 되살림으로써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핵억지의 상층부를 외부에 의존하고 있다. 이 구조가 지속될 경우 한국은 북·중·러가 결합한 전체주의 진영의 핵 위협에 더욱 취약하게 노출될 수 있다. 유럽의 전략 재편은 결국 한국에게 현실주의적 억지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교훈을 던지고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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