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실상 ‘전시’ 돌입, 텔레그램·코인으로 산 ‘일회용 스파이’…첩보전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확산
NATO “냉전 시대 ‘전쟁 준비’ 단계와 유사…선제 타격 등 강경 대응 검토”
NATO “냉전 시대 ‘전쟁 준비’ 단계와 유사…선제 타격 등 강경 대응 검토”
이미지 확대보기화물기 폭파 시도부터 철도 테러 모의, 해저 케이블 절단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러시아의 파괴 공작은 서방의 안보 태세를 시험하는 명백한 전쟁 행위라는 지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각) 러시아 정보기관이 주도하는 이러한 공격이 미국행 여객기 테러까지 염두에 둔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물기 폭파 실험, 미국행 여객기 겨냥한 ‘예행연습’
FT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영국, 폴란드, 독일 물류센터에서 DHL 소포가 잇따라 폭발했다. 당시 폭발력은 화물기가 비행 중이었다면 기체를 공중에서 분해할 만큼 강력했다. 보안 당국 추적 결과, 이 사건 배후에는 러시아 지시를 받은 파괴 공작조가 있었으며, 이들은 추가로 6kg의 폭발물을 소지하고 있었다.
서방 정보 당국자들은 FT와 인터뷰에서 “당시 사건은 단순한 화물 테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미국으로 향하는 여객기를 공격하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다”고 밝혔다. 만약 실행에 옮겨졌다면 2001년 9·11 테러 이후 항공 산업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힐 뻔한 사건이었다. 유럽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역학 관계를 넘어, 유럽 내 민간인 살상을 감수하더라도 서방 세계 전체를 타격하려는 장기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쓰고 버리는’ 첩보전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러시아의 새로운 공작 방식은 전문 스파이 대신 온라인으로 모집한 ‘일회용 대리인’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최근 유럽 각국이 러시아 외교관으로 위장한 정보 요원들을 대거 추방하자, 러시아 군 정보국(GRU)과 연방보안국(FSB)은 텔레그램 등 메신저 앱을 통해 현지 하수인을 모집하고 있다.
FT는 이를 두고 스파이 세계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대부분 러시아와 직접 연고가 없으며, 오직 돈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젊은 남성이나 범죄자들이다. 대가는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로 지급받는다.
실제로 폴란드 바르샤바-루블린 철도 폭파 미수 사건 용의자들은 러시아 정보기관 중개인에게 암호화폐를 받고 범행을 모의했다. 영국 런던 창고 방화 사건을 주도한 21세 딜런 얼(Dylan Earl) 역시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관계자의 지시를 받고 범행 장면을 촬영해 보고했다. 마치에이 마테르카 전 폴란드 군사방첩국장은 “이들은 솅겐 조약 지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작전을 수행하고 사라진다”며 “증거가 부족해 법원에서 풀려나는 경우도 많아 대응이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바늘 찌르기’ 아닌 ‘전쟁 준비’ 단계
전문가들은 일련의 사건을 산발적 도발이 아닌 체계적인 군사 교리로 해석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키어 자일스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의 행위는 명백한 ‘대(對)유럽 전쟁’이다”라며 “지금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FT는 냉전 시대 체코슬로바키아 비밀경찰(StB) 문건을 분석한 다니엘라 리히테로바 킹스칼리지런던 교수 분석을 인용해, 현재 상황이 ‘전쟁 전(Pre-war)’ 단계와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과거 소련 정보기관 교리에 따르면 평시에는 사고로 위장한 소규모 파괴 공작을 벌이다가, 전쟁이 임박하면 대규모 파괴 행위로 전환한다.
최근 유럽 전역에서 발생한 철도망 정찰, 쇼핑센터 방화 시도, 댐 방류 모의 등은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사회적 공포를 확산시키려는 ‘전투 정찰(Razvedka Boyem)’ 전술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지난 9월 폴란드 공항 운영을 마비시킨 드론 침투 사건이나, 발트해 해저 케이블을 끊어놓은 러시아 연계 유조선 ‘이글 S호’ 사건이 대표 사례다.
법적 회색지대 악용한 ‘하이브리드’ 공세
러시아는 서방의 법적·제도적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고 있다. 핀란드 법원은 지난 10월 해저 케이블을 훼손한 이글 S호 선장에 대한 소송을 기각했다. 선박이 공해상에 있었고 국적(쿡 제도) 문제로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핀란드 정부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수리비와 소송 비용을 떠안았다.
콘스탄틴 폰 노츠 독일 연방의회 정보감독위원장은 “고양이처럼 울고 고양이처럼 보이면 그것은 고양이”라며 “법적 증거가 100% 확실치 않더라도 이것이 하이브리드 전쟁임을 직시하고 정치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방 정부가 ‘법치’라는 틀에 묶여 러시아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NATO, “선제 타격 포함한 강력 대응 검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주세페 카보 드라고네 NATO 군사위원장은 FT에 “러시아의 은밀한 폭력에 대해 선제 타격을 포함한 훨씬 더 강력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히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 억제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유럽 내 고민도 깊다. 자칫 대응 수위를 높였다가 전면전으로 확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확전을 경계하는 상황에서 유럽 독자적으로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극적 대응이 오히려 위기를 키운다고 지적한다. 자일스 연구원은 “러시아는 상대가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이를 약점으로 간주하고 공세를 강화한다”며 “푸틴 대통령이 스스로 긴장을 낮출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강 건너 불’ 아닌 한반도… ‘한국형 하이브리드 방어’ 시급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 전술은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 큰 경고가 된다. 북한 역시 최근 오물 풍선 살포, GPS 교란, 방산 업체 해킹 등 저강도 도발과 사이버 공격을 배합한 하이브리드 전술을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전체 사이버 침해 사고 신고 건수는 899건으로, 전년 동기(664건) 대비 약 35% 증가했다. 2024년 4월 국가정보원(국정원) 산하 국가사이버안보센터는 2023년 국내 해킹 피해의 80% 이상이 북한발 공격으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일회용 스파이’를 쓰듯, 북한도 제3국 해커를 고용하거나 민간인으로 위장한 사이버 전사들을 통해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NATO가 ‘선제 타격’까지 거론하며 대응 태세를 전환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단순히 방화벽을 쌓는 수동적 방어를 넘어, 공격 원점을 식별하고 이를 무력화하는 ‘능동적 사이버 방어(Active Cyber Defense)’ 개념 도입이 절실하다. 아울러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를 통한 간첩 포섭이 일상화된 만큼, 대공 수사 역량 강화와 사이버 안보 법제 정비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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