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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규칙이 다시 쓰이고 있다...러시아의 초대형 공습과 트럼프식 협상이 열어젖힌 위험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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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규칙이 다시 쓰이고 있다...러시아의 초대형 공습과 트럼프식 협상이 열어젖힌 위험한 세계

협상 직전의 공습, 핵안전 위기의 반복, 확장 억지의 흔들림, 그리고 새로운 회색 전쟁의 부상. 한국 안보와 경제는 완전히 새로운 전략이 요청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이들처럼 '자기애성 리더십'을 보이는 지도자들의 공통점으로 권위적인 아버지와 과보호하는 어머니 등 유년기 환경을 지목한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이들처럼 '자기애성 리더십'을 보이는 지도자들의 공통점으로 권위적인 아버지와 과보호하는 어머니 등 유년기 환경을 지목한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사진=로이터

러시아가 휴전 협상을 불과 몇 시간 앞둔 12월6일(현지 시간) 밤부터 7일 새벽까지 우크라이나 전역을 타깃으로 대규모 미사일 및 드론 공습을 감행했다. 이번 공습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종전 협상 테이블을 설계하기 위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새 시대의 위험을 드러낸다.
이와 관련, 본지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12월6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대규모 미사일과 드론 공습, 트럼프 행정부의 특사 외교, 폴란드 전투기 출격과 유럽 안보 긴장 고조를 보도한 내용을 기반으로 심층 분석했다.

협상 직전의 공습, 전장의 포성이 협상장의 언어가 되는 순간


뉴스위크 보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공습의 시점이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러시아가 하룻밤 사이 수많은 드론과 미사일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전역을 타격했다고 전했다. 그 공격은 단순히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작전이 아니라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전쟁 종식을 논의하는 회담이 세 번째 날을 맞기 직전에 동시다발적으로 자행되었다.

우크라이나 측 발표에 따르면 방공망은 상당수의 드론과 미사일을 격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방어의 성과가 아니라 러시아가 선택한 목표였다. 공습은 스무 개가 넘는 지역의 전력 시설과 에너지 인프라, 철도 허브를 집중적으로 겨냥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가 밤사이 외부 전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가 정오 무렵에야 다시 외부 전원에 연결되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점령 중인 이 최대 규모 원전은 전력 차단이 반복되면서 핵안전 위기가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협상용 군사 행동이다. 군사적 승리를 위해서라기보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려는 시도에 가깝다. 협상에서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시와 인프라가 계속해서 인질로 잡힐 것이라는 암시다. 전선이 아니라 협상장을 향해 폭탄을 떨구는 방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 특사 외교와 우크라이나의 불안한 계산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축은 트럼프식 외교다. 뉴스위크는 전쟁 종식을 명분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독자적 평화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한다. 부동산 사업가이자 대통령의 측근인 스티브 위트코프와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특사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뒤, 미국 플로리다에서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들과 연속 회동을 가진 사실을 상세히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은 이들과의 통화에서 매우 집중적이고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면서 미국 측과 선의로 협력해 진정한 평화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피로를 끝내고 새로운 대규모 침공의 위험을 차단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러시아가 과거 수차례 약속을 어긴 경험을 강조하며 실행 가능한 합의가 아니라 선언적 문구에 그치는 평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제는 이 특사 외교가 누구의 이해를 우선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생존을 걸고 협상에 임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선 공약 이행과 노벨 평화상이라는 정치적 욕망이 결합된 무대다. 푸틴 대통령에게 이 협상은 서방의 분열을 확인하고 러시아의 전리품을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기회다. 그 사이에서 우크라이나는 협상 대상인 동시에 교환 가능한 카드가 될 위험에 놓여 있다.

폴란드 전투기 출격, 유럽 안보 체제의 새로운 임계점


뉴스위크는 폴란드 군이 러시아의 공습 징후를 탐지한 직후 자국 영공에 전투기를 긴급 출격시키고 지상 방공망과 레이더 체계를 일제히 고도 경계 상태로 올렸다고 전한다. 이는 전쟁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나토 회원국이 러시아 공습에 대한 실시간 대응 태세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유럽은 이미 새로운 전쟁 양식을 체감하고 있다. 전선은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 있지만 긴장과 공포는 발트 해와 폴란드, 독일과 북유럽까지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는 미사일과 드론을 활용한 장거리 타격, 사이버 공격, 에너지 공급 차단을 조합해 전면전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서도 유럽 사회 전체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폴란드 전투기의 긴급 출격은 유럽이 이 전쟁을 더 이상 남의 일로 처리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국제 질서의 관점에서 본 이번 공습의 구조적 의미


이번 사건은 세 가지 차원에서 국제 질서의 변화를 드러낸다.

첫째, 전쟁과 협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협상을 앞두고 전쟁을 확대하고, 미국은 평화 협상을 명분으로 새로운 영향력을 구축하려 한다. 전쟁을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못해도 협상 국면에서 군사 행동을 활용해 정치적 결과를 바꾸는 방식이 표준 전술로 굳어질 위험이 있다.

둘째, 핵 안전과 에너지 안보가 전쟁의 주요 전장이 되고 있다.

자포리자 원전의 반복되는 전력 차단은 한 나라의 원전이 공격받는 문제를 넘어서 유럽 전체와 국제 사회의 생태적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다. 원전을 둘러싼 긴장은 핵무기와는 다른 형태의 핵 공포를 만들어 낸다. 이는 에너지 시설이 곧 새로운 전략무기가 되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셋째, 강대국 특사 외교가 국제 규범을 우회하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다.

정부 간 공식 채널이 아니라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비공식 채널로 전쟁과 평화를 다루는 구조는 민주주의의 통제 장치를 약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소규모 강대국 담합이 국제 규범과 약소국의 이해를 압도할 위험이 커진다.

한국 안보에 대한 함의: 협상용 공습과 회색 지대 압박은 한반도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경고다.

첫째, 북한은 이미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협상 앞두고 배치해 온 경험이 있다.

러시아가 협상 직전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며 조건을 유리하게 만들려 한 것처럼, 북한은 남북 혹은 북미 협상이 논의되는 시점마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테이블의 구조를 바꾸려 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에서의 평화 협상 역시 군사행동과 분리된 순수 외교 영역으로 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둘째, 확장 억제와 동맹 신뢰의 문제가 더 민감한 의제로 부상한다.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정식 회원국이 아니지만, 그동안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자신들의 방어선 일부로 다루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장기화되고 협상 국면에서 강대국의 이해가 앞세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동맹국들은 위기 시 미국이 어느 선까지 지켜 줄 것인지 다시 묻게 된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셋째, 인프라 방호와 회복력이 안보 전략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러시아가 에너지 시설과 철도 허브, 수자원과 난방 시설을 공격하자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는 난방과 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이는 군사 기지보다 더 큰 압박을 국민에게 가하는 수단이다.

한국은 전력망과 정유 시설, 도시가스, 항만과 공항, 데이터 센터, 해저 케이블이 모두 잠재적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안보 전략은 군대와 무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력과 통신, 물류와 정보 체계, 금융 결제망까지 포함한 국가적 회복력과 방호 전략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전쟁 이전 단계인 압박만으로도 국가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한국 경제와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파급 효과


이번 공습은 한국 경제 차원에서도 중요한 시그널을 보낸다.

우선, 전력과 에너지 인프라가 공격의 첫 번째 목표가 된다는 사실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치명적인 리스크를 예고한다. 한국의 정유 시설, 가스 저장소, 송배전망, 원전이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국제 분쟁으로 인해 에너지 공급이 흔들리면 한국은 즉각적인 가격 급등과 공급 불안을 겪게 된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에너지와 곡물, 원자재의 국제 가격 변동성이 재차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 수출 기업의 원가와 물류비를 동시에 압박한다. 폴란드와 유럽 전역이 상시 경계 태세로 들어가면, 유럽 경제의 성장 둔화와 시장 위축이 한국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회색 지대 공격이 국제 해상 운송과 항만 인프라로 확대될 경우, 한국 해운과 조선 산업, 물류 기업은 새로운 위험에 노출된다. 지금은 흑해와 유럽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지만, 이런 전술은 언제든 동아시아 해역으로 옮겨올 수 있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대응 전략: 군사, 외교, 경제를 통합한 대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이 취해야 할 대응은 단일 차원의 해법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협상과 전쟁을 하나의 연속선으로 다루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평화 협상을 목표로 하더라도 협상 직전과 협상 도중의 군사적 압박 가능성을 전제하고 방어 계획과 외교 전략을 같이 설계해야 한다. 이는 북한과의 협상뿐 아니라 향후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위기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인프라 회복력을 강화해야 한다. 전력을 이중 삼중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 통신망과 데이터 센터의 분산, 항만과 공항의 비상 운용 계획, 금융 결제망과 현금 유동성 방어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군사 요충지만이 아니라 국가 기능 전체를 방어 대상으로 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외교적 역할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유럽과 함께 전쟁 중 원전과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 대상으로 삼지 말자는 국제 규범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직접적으로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더라도 재건과 인도적 지원, 디지털 인프라 복구,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 동맹국으로서의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한국이 단지 안보 수혜국이 아니라 규범을 만드는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중요하다.

러시아의 공습과 트럼프식 특사 외교, 폴란드 전투기 출격이라는 장면은 전쟁과 평화, 외교와 군사, 에너지와 안보가 더 이상 분리된 영역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국이 이 복합적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군사, 외교, 경제를 통합한 대전략을 마련할 때만 앞으로 다가올 더 큰 파고를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