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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미중 착시 경쟁의 시대, 한국은 질서를 설계해야 강국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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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미중 착시 경쟁의 시대, 한국은 질서를 설계해야 강국 된다

중일 군사 갈등과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전환, 중국의 내부 불안이 교차하는 세계 질서 전환기에서의 한국의 대전략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인한 중일 갈등이 군사적 갈등으로 확대되면서 장기화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다카이치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인한 중일 갈등이 군사적 갈등으로 확대되면서 장기화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다카이치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미중 패권 경쟁은 여전히 세계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이 구축해 온 전후 질서는 더 이상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란틱 카운슬이 지난 12월12일 베이징 현장 보고서를 통해 포착한 중국 지도부의 자신감이나 같은 날 글로벌 온라인 매체인 더 컨버세이션과 파리 소재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모던 디플로머시가 각각 분석한 중일 갈등의 출구 상실과 미국 전략의 후퇴는 개별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전환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 같은 전환은 한국에게 단순한 위기가 아니다. 동시에 기회다. 한국은 더 이상 기존 질서의 보호를 받는 중견국으로 머물 수 없는 위치에 와 있다. 이 변화의 방향을 정확히 읽고 전략으로 설계한다면 한국은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세계 상위 선진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반대로 이를 놓친다면 한국은 강대국 경쟁의 압력 속에서 점차 소모되는 국가가 될 위험이 커진다.

기술 경쟁에서 배치 경쟁으로 이동한 미중 패권 게임


애틀란틱 카운슬 보고서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미중 경쟁의 핵심이 더 이상 기술 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경쟁의 본질은 기술을 얼마나 빠르고 넓게 배치하느냐에 있다. 중국은 완벽한 기술을 기다리지 않는다. 일정 수준에서 작동하는 기술을 즉시 산업과 일상에 투입하고, 사용 과정에서 개선한다.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자율주행과 제조 자동화, 희토류와 전략 소재 분야에서 중국은 속도와 규모를 무기로 삼고 있다.

반면 미국은 연구와 통제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고 있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 다수의 국가는 가장 앞선 기술보다 당장 사용할 수 있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해법을 선택한다. 이 지점에서 미중 경쟁은 군사 충돌이 아니라 표준과 공급망, 가격과 신뢰의 경쟁으로 확장된다. 한국이 이 구조를 오판하면 양측의 압박을 동시에 받게 된다. 그러나 이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면 한국은 미국의 신뢰성과 중국의 비용 경쟁력 사이에서 독자적인 전략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중일 갈등이 보여준 동아시아 질서의 관리 불능 상태


더 컨버세이션이 분석한 중일 갈등은 동아시아 질서가 더 이상 관리 가능한 단계에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과거 중일 관계에는 경제와 안보를 분리해 관리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했다. 그러나 대만 문제가 일본의 생존 문제로 공식 언어화되는 순간 이 합의는 붕괴됐다.

중국은 일본을 더 이상 과거사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미국의 전초기지이자 대만 방어선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전략적 모호성 뒤에 숨지 않고 방위력 강화와 전방 배치를 통해 명시적 억제를 선택했다. 이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중일 갈등은 이미 미중 패권 경쟁의 핵심 전선 중 하나로 편입됐다.
이 구조 속에서 대만해협과 한반도는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묶인다. 중일 긴장이 높아질수록 미국의 군사 자원은 분산되고, 그 틈은 북한에게 새로운 계산을 허용한다. 한국의 안보는 더 이상 한반도 내부 변수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미국 전략 전환과 동맹 자동 보호의 종말


모던 디플로머시가 포착한 변화의 핵심은 미국이 더 이상 동맹을 자동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독일에게 유럽 안보의 책임을, 일본에게 자율 억제의 부담을 묻고 있다. 이는 특정 행정부의 일시적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국내 정치와 재정 구조가 만들어낸 장기적 변화다.

이제 동맹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파트너가 됐다. 이 변화는 한국에게 불편한 현실이지만 동시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동맹에게 더 많은 역할과 기술, 정보와 영향력을 넘긴다. 문제는 준비 여부다. 준비된 동맹은 전략적 영향력을 얻고, 준비되지 않은 동맹은 선택의 대상이 된다.

안보와 경제를 통합하지 않으면 강국은 없다


한국이 세계 상위 선진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서 사고해서는 안 된다. 안보는 경제를 보호해야 하고, 경제는 안보를 증폭시켜야 한다. 이 통합 구조를 설계하지 못하면 어떤 성장도 구조적으로 취약해진다.

안보 측면에서 한국은 확장 억제를 유지하되 그것에만 의존하지 않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재래식 타격 능력과 미사일 방어, 사이버와 우주 영역의 억제를 결합한 독자적 억제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 억제력이 신뢰를 얻을수록 한국의 전략적 발언권은 커진다. 일본과의 협력 역시 감정이나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작전 현실과 억제 효율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배치 능력이 곧 경제 안보가 되는 시대


경제 측면에서 한국의 핵심 과제는 배치 능력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과 원전, 방위 산업과 인공지능 인프라에서 한국은 이미 기술과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를 국가 차원에서 패키지로 묶는 능력이다.

금융과 표준, 외교를 결합해 한국과 협력하면 안정적이라는 인식을 세계에 심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수출 확대가 아니라 경제 안보 전략이다. 중국 리스크가 커질수록 세계는 안정적 공급자를 찾게 되며, 한국은 그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자체 핵무장은 선언이 아니라 조건부 전략 옵션이다


자체 핵무장 논의는 이 대전략 속에서 다뤄져야 한다. 핵무장은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조건부 전략 옵션이다. 그것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억제의 신뢰가 축적된 결과로만 의미를 갖는다.

한국은 확장 억제가 흔들릴 수 있는 조건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에 대비한 단계적 선택지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 준비 과정 자체가 협상력이 된다. 옵션이 존재할수록 실제로 그 옵션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오히려 커진다. 이것이 성숙한 억제 전략의 핵심이다.

질서를 소비하는 국가에서 질서를 설계하는 국가로


한국의 목표는 불안정의 가속이 아니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질서를 파괴하는 국가가 아니라 질서를 설계하는 국가다. 미중 경쟁 속에서 기술과 공급망 충돌을 완화할 수 있는 중재자, 동아시아에서 억제의 신뢰를 높이는 핵심 축, 글로벌 사우스에 안정적 발전 모델을 제시하는 파트너로 자리 잡는 것이 한국의 장기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 역할은 선언이 아니라 능력에서 나온다. 억제 능력과 경제 배치 능력, 외교 설계 능력이 결합될 때만 가능하다.

결론은 대전략을 통해 질서를 설계하는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미중 모두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믿는 위험한 착시의 국면에 들어섰다. 일본과 독일은 각성을 시작했고, 중국은 내부와 외부의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으며, 미국은 부담을 나누려 하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 한국이 서 있다.

이 시기를 단순히 관리하려 하면 한국은 소모된다. 그러나 대전략을 설계한 뒤 면밀하게 추구하면 한국은 도약한다. 이는 미 외교안 전략가인 존 루이스 가디스가 저서 '대전략'에서 대전략이란 목표와 수단, 시간과 공간, 위험과 자원의 균형을 설계하는 능력으로서 국가가 평시와 위기를 관통해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해 선택하는 전체적인 설계라고 정의한 데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를 통합한 전략과 조건부 핵 옵션을 포함한 억제 구조, 배치와 표준을 장악하는 산업 전략을 갖춘 국가는 많지 않다. 한국은 이미 그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결단과 설계다. 질서를 소비하는 국가에서 질서를 설계하는 국가로 전환할 수 있는 드문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