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점유율 71% 독주 TSMC, 시기·위치·화합 3박자로 압도적 경쟁력 구축
창업자 모리스 창 철저한 검증 문화...인텔 인재 유출 속에서도 조직력이 핵심
창업자 모리스 창 철저한 검증 문화...인텔 인재 유출 속에서도 조직력이 핵심
이미지 확대보기이번 인터뷰는 TSMC 임원 출신인 웨이젠 로가 올해 10월 인텔로 이직하면서 논란이 일자, TSMC의 리더십 전환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에 이뤄졌다. 칭화대 반도체연구대학 학장이자 TSMC 연구개발 선구자 6인 중 한 명인 번정 린은 "TSMC의 우위는 어떤 개인도 흔들 수 없다"고 밝혔다.
모리스 창의 철저한 검증 문화
왕은 창업자 모리스 창과의 협업 경험을 회고하며 TSMC 특유의 철저한 검증 문화를 소개했다. 그는 "창 회장에게 보고할 때는 정식 보고서가 10장을 넘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백업 자료는 60페이지에 달했다"고 밝혔다.
창 회장은 보고 과정에서 여러 각도로 논리를 파고들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수였다고 왕은 설명했다. 그는 "백업 자료를 꺼내는 것은 해당 주제에 충분히 숙달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며 "창 회장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면 곤란했다"고 회상했다.
창 회장은 보고 때 명확성을 요구했다. 질문을 받으면 간단하고 직접적으로 답해야 했으며, 지나친 설명은 피해야 했다. 왕은 이런 문화가 F.C. 청, 릭 차이, 마크 류, C.C. 웨이 등 TSMC 경영진에게 이어지며 강력한 실행력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올해 3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7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6.8%로 2위를 차지했으나 전분기 대비 0.5%포인트 감소했다. TSMC의 3분기 매출은 330억 6300만 달러(약 48조 원)에 달했다.
시기·위치·화합의 3박자
왕은 TSMC 성공의 3대 기둥으로 시기·위치·화합을 제시했다. 시기는 반도체 산업의 도약기를 의미하고, 위치는 대만 정부의 지원 정책을 뜻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화합, 즉 인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첫째, 리더십과 기업 문화다. 창 회장은 TSMC를 순수 파운드리로 명확히 자리매김하며 고객 신뢰를 얻었다. 그는 회사의 사명을 '신뢰받는 기술과 생산능력 제공자'로 정의하고, 성실·헌신·혁신·고객 신뢰라는 핵심 가치를 확립했다.
셋째, 조직 목표의 일치와 팀워크다. 겉으로는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드문 특성이라고 왕은 지적했다. 예를 들어 북부·중부·남부 공장 간 협력이 탁월하다. 지진이나 재해 발생 시 피해를 입지 않은 공장들이 즉시 최대한의 자원을 투입해 피해 공장의 빠른 복구를 돕는다. 이런 통합은 강력한 단합과 신속한 동원력을 필요로 한다.
30년 엔지니어의 성장 여정
왕은 1985년 청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6개의 일자리 제안을 받았다. 그중 소규모 반도체 회사인 궈산전자를 선택했다. 화학 공장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당시 신산업이었던 반도체에 호기심을 느꼈다.
궈산은 디램(DRAM)에 주력했지만, 자체 공장이 없어 UMC 시설 내에서 운영했다. 왕은 야간 근무를 자원하고 낮에는 공부하며 반도체를 배웠다. 얼마 뒤 TSMC가 설립됐고, 그는 포토리소그래피(노광) 엔지니어로 합류했다.
당시 TSMC는 정부 주도 대형 프로젝트였으며, 경영진은 엔지니어들을 깊이 신뢰했다. 신입이었던 그는 수천만에서 수억 대만달러(수십억 원)에 달하는 노광 장비 평가를 맡았다.
TSMC 엔지니어 대부분은 대만 산업기술연구원(ITRI)과 명문대 석·박사 출신이었다. 재능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왕은 더 열심히 일하고 배우려 노력했다. 그는 상사인 지안방 천이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며 감명받았다. 천은 일본어에 능통해 일본 장비 공급업체와 직접 협상했다.
왕은 장비 매뉴얼을 암기했고, 근무 교대 뒤에도 작업자들이 문제에 부딪히면 지도할 수 있었다. 그의 보고서는 그래프 용지에 손으로 정성껏 작성됐고 동료들 사이에서 자주 회람됐다. 일본 니콘에서 한 달간 교육을 받은 뒤 그는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엔지니어들은 원격으로 컴퓨터를 모니터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장 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웨이퍼를 검사하고, 문제를 연구하고, 실험을 진행하고, 이슈를 해결해야 했다. 대학원 이후 또 다른 연구 환경에 들어간 것 같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업계 평균 수율은 85~90%였지만, TSMC는 집단 노력을 통해 단기간에 95%를 돌파했다. 이는 통합된 공장의 힘과 명확한 목표를 입증한다고 왕은 강조했다.
인재 유출 우려 속 성공 요인 재조명
한편 TSMC는 최근 인재 유출 문제에 직면했다. 21년간 재직한 웨이젠 로 전 수석부사장이 지난 7월 은퇴한 뒤 10월 인텔 수석부사장으로 합류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현지 언론은 로가 은퇴 전 부하 직원들에게 2나노, A16, A14 등 차세대 공정 기술 관련 기밀문서를 브리핑받고 복사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TSMC는 지난달 25일 대만 지식재산권상업법원에 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인텔 최고경영자(CEO) 립부 탄은 내부 메모를 통해 로를 전폭 지지한다고 밝히며 "엄격한 지식재산권 보호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TSMC가 71% 점유율로 파운드리 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조직 문화와 인재 관리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패키징을 포함한 통합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올해 1분기 35.3%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5.9%로 4위에 그쳤다.
세게 최고 메모리 강자, TSMC 조직 문화서 배울 점은
TSMC가 파운드리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메모리 분야에서 독보적 위상을 구축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57% 점유율로 1위를 지켰다. 삼성전자는 22%로 2위를 탈환했다. 두 회사는 HBM 시장의 79%를 장악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뒤 10년 이상 기술 개발을 이어가며 시장을 선점했다. 엔비디아에 HBM3E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며 강자로 자리 잡았다. 올해 1분기에는 디램 매출 기준으로 33년 만에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2019년 HBM 사업성을 낮게 평가했다가 뒤늦게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파운드리, 메모리, 시스템반도체를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서 강점을 살려 HBM3E 품질을 끌어올렸다. 올해 3분기 점유율을 전분기 대비 7%포인트 끌어올리며 반격에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집중력과 삼성전자의 종합 역량이 각각의 강점이라고 평가한다. TSMC의 조직력과 단합은 두 회사 모두 참고할 만한 요소로 꼽힌다. TSMC는 재해 때 공장 간 즉각 지원, 명확한 목표 공유, 철저한 검증 문화로 엔지니어들의 역량을 극대화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는 순수 파운드리로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신뢰를 쌓았다"며 "한국 기업들도 각자의 강점을 살리되 조직 단합과 장기 비전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