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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일본 경차 미국 도입’ 언급 이후…현실성 두고 전문가들 “장벽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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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일본 경차 미국 도입’ 언급 이후…현실성 두고 전문가들 “장벽 높아”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돼 있는 일본식 초소형 자동차 ‘경차’.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돼 있는 일본식 초소형 자동차 ‘경차’.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초소형 자동차 ‘경차’를 미국에 도입할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이같은 차량이 실제로 미국 도로에 정착할 수 있을지를 두고 안전 규제와 소비 문화, 제조 비용 등 구조적 제약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일본 방문 당시 현지에서 널리 쓰이는 초소형 트럭형 경차를 보고 “아주 작고 귀엽다”며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이후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초소형 차량의 미국 내 생산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NBC뉴스는 일본식 경차가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을 인용해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일본 ‘경차’, 제도와 환경에 맞춰 발전

일본에서 ‘경차(게이 지도샤)’로 불리는 이 차량은 차체 크기와 배기량, 출력이 법으로 제한된 자동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고 자동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산물로 낮은 세금과 보험료 혜택이 보급을 뒷받침해 왔다.

대표적인 경차 트럭은 일본에서 약 1만 달러(약 1449만 원)에 거래된다. 이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픽업트럭인 포드 F-150 가격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출력도 60마력 안팎으로 300마력 이상인 대형 픽업트럭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의 마쓰모토 시게루 경제학 교수는 “경차는 장거리 주행보다는 일상적인 이동과 생활용에 적합한 차량”이라며 “특히 도로가 좁은 농촌 지역에서는 세컨드카로 널리 쓰인다”고 설명했다.

◇ “미국 고속도로 환경과는 괴리”


미국에서도 경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일부 존재한다. 텍사스 휴스턴에 거주하는 소방관 데이비드 맥크리스천은 일본에서 경차 트럭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인은 실제 필요 이상으로 큰 트럭을 산다”며 “5000파운드를 견인할 수 있는 대형 픽업은 내게 필요 없다”고 말했다.

맥크리스천은 차량을 900달러(약 130만 원)에 구입했고 여기에 운송비 2500달러(약 362만 원)를 더했지만 “이 가격에 이만한 활용성과 신뢰성을 가진 차량을 미국에서 찾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도로 환경과 안전 기준이 경차 확산의 가장 큰 제약이라고 지적한다. 미시간대 로스쿨의 티파니 새덱 교수는 “이런 작은 차를 타고 시속 70마일(약 113㎞)로 대형 SUV와 픽업트럭 사이를 달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 안전 기준·제조 비용이 핵심 변수


경차의 다수는 에어백조차 장착하지 않아 미국 연방 자동차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에서는 제작된 지 25년이 넘은 차량만 예외적으로 수입이 허용되고 있다.

주(州)별 규제도 엇갈린다. 일부 주에서는 공공도로 주행을 제한하거나 저속 주거지역에서만 운행하도록 하고 있다. 관련 단체들이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성과는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일본산 경차 수입 확대라기보다 미국 내에서 유사한 소형 차량을 생산하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혼다, 스즈키, 다이하쓰 등 주요 경차 제조사 가운데 미국에 대규모 승용차 생산 기반을 둔 기업은 많지 않다.

워싱턴앤드리대의 마이크 스미트카 경제학 교수는 “미국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차량을 공장 단계부터 새로 설계해야 한다”며 “기존 모델을 개조하는 방식은 비용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미국에서 생산되는 경차형 차량은 일본의 1만 달러 가격대를 크게 웃돌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주력 차보다는 보조 수단에 그칠 것”


규제와 제조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소비 문화는 또 다른 변수다. 러트거스대의 토머스 프루사 경제학 교수는 “이런 차량은 미국 가정에서 주력 차량이 아니라 두 번째나 세 번째 차로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프루사 교수는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 또는 플로리다의 은퇴자 커뮤니티처럼 소형 이동수단 활용이 이미 자리 잡은 지역에서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미국 전반의 자동차 문화와 맞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NBC뉴스는 “법 개정이나 안전 기준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이론적으로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본식 초소형 차량이 미국 도로 전반으로 확산되는 장면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