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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아시아 부호들 “자산은 스위스로”…프라이빗뱅크 수요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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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아시아 부호들 “자산은 스위스로”…프라이빗뱅크 수요 급증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자산관리은행 율리우스베어의 본사.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자산관리은행 율리우스베어의 본사. 사진=로이터

아시아의 초고액 자산가와 패밀리오피스들이 자산 보관처로 스위스를 다시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패밀리오피스는 고액 자산가의 가문 자산을 관리하는 전담 조직을 말한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산을 유럽에 직접 예치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고 이에 따라 스위스 프라이빗뱅크들이 본국에서 아시아 전담 인력을 대폭 확충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3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스위스의 자산관리은행 관계자들은 최근 2년간 아시아 지역에서 문의와 자산 이전 요청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아시아 부호들은 스위스에 자산을 직접 장부상 등록하고 금괴 등 실물 자산을 현지 금고에 보관하길 원하고 있으며 거주지나 사업장은 아시아에 두더라도 자산은 스위스 법체계 아래 두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스위스는 은행 비밀주의 약화와 역외 금융에 대한 국제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최대 자산 피난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위스의 역외 자산 운용 규모는 2조7400억 달러(약 3955조8200억 원)로 집계됐다.

◇ 홍콩·싱가포르 성장에도 ‘스위스 회귀’


아시아 금융 허브로 꼽히는 홍콩과 싱가포르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홍콩의 자산 운용 규모는 2조6500억 달러(약 3826조9500억 원) 싱가포르는 1조9200억 달러(약 2770조5600억 원)로 나타났다.

다만 홍콩과 싱가포르는 스위스 은행들에 있어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는 핵심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 유치된 자산 상당수가 최종적으로 스위스로 이전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제결제은행과 스위스국립은행 자료에 따르면 홍콩과 싱가포르 거주자의 스위스 예치금은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증가했다.

롬바드 오디에의 오마르 쇼쿠르 아시아 프라이빗 고객 부문 최고경영자는 “과거에는 스위스 추가 부킹을 요청하는 고객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점점 더 많은 고객이 스위스 부킹이 가능한지 묻고 있다”며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 지정학 불확실성이 자산 이동 촉발


이같은 변화는 지난 10여년간 홍콩과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아시아 부호 자산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스위스 은행들은 지난 20~30년간 아시아에 진출해 프라이빗뱅킹 모델을 확산시켜 왔지만 최근 정치·지정학적 충격이 자산 분산 수요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2019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아시아 부호들 사이에서 자산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설명이다. 취리히에 본사를 둔 율리우스베어의 크리스티안 카펠리 아시아 데스크 총괄은 “2010년만 해도 아시아 고객이 스위스 부킹을 요구하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며 “2019년 이후 지정학적 환경이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여러 관할 지역에 자산을 분산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LGT프라이빗뱅킹의 크리스티안 프리 스위스 아시아태평양 사업 총괄은 “아시아 고객들은 보통 자산의 10~15%를 지역 밖에 배분한다”며 “아시아 외 지역을 선택할 때 스위스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 스위스 은행들 아시아 전담 조직 확대


이같은 수요 증가에 대응해 스위스 은행들은 본국 내 아시아 전담 조직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율리우스베어는 1990년대부터 스위스 내 아시아 데스크를 운영해왔지만 2022년 이후 채용을 크게 늘렸다. UBS의 스위스 내 아시아 데스크 인력은 100명 이상으로 알려졌고 LGT프라이빗뱅킹의 아시아 데스크도 2023년 10명 미만에서 현재 취리히와 제네바를 합쳐 30명 안팎으로 확대됐다.

UBS의 프랑크 니더만 아시아태평양 스위스 자산관리 총괄은 “홍콩과 싱가포르의 일부 패밀리오피스는 이제 아시아와 유럽에 각각 거점을 두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주식 거래에서는 인지세 부담 등으로 홍콩과 경쟁하기 어렵지만 스위스만의 강점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