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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텍사스서 ‘TV 시청정보 무단수집’ 피소… “당신을 감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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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텍사스서 ‘TV 시청정보 무단수집’ 피소… “당신을 감시한다”

팩스턴 장관, 소송 기각되자 관할 바꿔 ‘재제소’… 이례적 법정 전략 논란
하드웨어 넘어선 ‘데이터 수익’ 제동 걸리나… 삼성·로쿠 등 업계 긴장 고조
LG 전자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LG 전자 로고. 사진=로이터
LG전자가 미국 텍사스주에서 스마트 TV 시청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했다는 혐의로 켄 팩스턴(Ken Paxton) 텍사스주 법무장관에게 다시 피소됐다. 팩스턴 장관이 기존 소송을 스스로 취하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관할 법원을 바꿔 소장을 다시 접수하는 이례적인 강수를 두면서,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블룸버그 로(Bloomberg Law)는 지난 30(현지시간) 팩스턴 장관이 텍사스주 벨 카운티(Bell County) 지방법원에 LG전자 미국법인을 상대로 소비자 보호법 위반 소송을 재제기했다고 보도했다.

법원 바꾸는 강수… '포럼 쇼핑' 전략 통할까


팩스턴 장관은 지난 29(현지시간) 벨 카운티 법원에 새로운 소장을 접수했다. 이는 지난 23일 태런트 카운티(Tarrant County) 법원에 냈던 소송을 스스로 취하(non-suit)한 지 엿새 만에 나온 조치다.

현지 법조계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법원 쇼핑(Forum Shopping)' 전략으로 풀이한다. 소송 취하 열흘 전, 태런트 카운티 법원은 텍사스주가 요청한 '일시적 접근 금지 명령(TRO)'을 기각했다. 피고 측 행위가 즉각적인 피해를 준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팩스턴 장관은 자신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린 법원을 피해, 승소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한 벨 카운티로 전장을 옮긴 셈이다.

"TV가 당신을 본다"… 쟁점은 ACR 기술


이번 소송의 핵심은 스마트 TV에 들어간 '자동 콘텐츠 인식(ACR·Automatic Content Recognition)' 기술이다. ACR은 사용자가 TV로 무엇을 보는지 실시간 식별하는 기술이다.

소장에 따르면 LG전자 스마트 TV는 공중파 방송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심지어 TV에 연결한 DVD 플레이어나 게임 콘솔 화면 정보까지 수집했다. 텍사스주 검찰은 "소비자가 TV를 켜는 순간 기기는 '보이지 않는 디지털 침입자'가 된다""사용자가 명확히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시청 습관을 기록하고 이를 광고 타기팅에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러한 행위가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라고 보고 '텍사스 기만적 거래 관행법(DTPA)'을 위반했다고 명시했다. 기업이 데이터를 수집하려면 소비자가 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동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LG전자는 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부진, 데이터로 메우려다 '역풍'


이번 소송은 단순히 과태료 문제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TV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제조사들은 하드웨어 판매 대신 '플랫폼 비즈니스'로 눈을 돌렸다. 시청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광고를 보여주는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FAST)가 대표적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들의 분석을 보면, 스마트 TV 제조사가 거두는 광고 수익 비중은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만약 텍사스주가 승소해 데이터 수집에 제동을 건다면, LG전자를 포함해 삼성전자, 비지오(Vizio), 로쿠(Roku) 등 관련 업계의 수익 모델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팩스턴 장관은 앞서 구글과 메타 등 빅테크 기업을 상대로 생체 정보 무단 수집 혐의를 걸어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받아낸 전력이 있다. 기술 기업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 그가 관할까지 바꿔가며 소송을 재개한 만큼, 이번 재판은 텍사스주와 글로벌 가전 기업 간의 치열한 법리 다툼으로 번질 전망이다.

LG전자 미국법인은 구체적인 소송 내용에 대해 아직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향후 재판 과정에서 데이터 수집 동의 절차가 합법적으로 이뤄졌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