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2026년 경고와 트럼프 2기의 자해형 권력, 그리고 한국이 설계해야 할 기술·동맹·억지의 대전략
이미지 확대보기미국의 패권은 외부의 도전에 의해 무너지는가, 아니면 내부의 선택에 의해 스스로 깎여 나가는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1월1일 일본 매체를 통해 2026년을 향해 던진 경고는 단순한 트럼프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패권이 작동해 온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가 아니라, 법의 지배와 제도의 예측 가능성, 개방된 인재·지식 생태계, 그리고 혁신을 매개로 한 동맹 네트워크가 함께 만들어낸 ‘신뢰의 질서’가 지금 동시에 약화되고 있다는 경고다.
트럼프 2기의 통치 방식은 이 네 가지 축을 하나씩 침식시키고 있다. 거래 중심의 정책 결정, 급변하는 관세와 투자 압박, 동맹을 비용 청구의 대상으로 다루는 접근, 대학과 연구기관을 정치적 압력의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는 단기 성장률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훼손한다. 그것은 세계가 미국을 규칙의 중심으로 받아들여 온 이유, 다시 말해 자본과 인재와 기술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게 했던 신뢰의 메커니즘이다. 스티글리츠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패권은 전쟁에서 이기는 힘이 아니라, 동맹과 시장이 스스로 붙어오는 힘이라는 점이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이 글을 통해 이 경고를 한국의 좌표에서 다시 묻고자 한다. 모두 세 개의 질문이다. 지난해 말 새 국가안보전략(NSS) 발표를 통해 자유주의 패권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트럼프 2기의 현실주의는 왜 헨리 키신저 저 국무장관의 세력균형 같은 정교한 세력균형으로 완결되지 못하는가. 다극화가 심화되는 환경에서 ‘동맹 강화’만으로 한국의 안보는 유지될 수 있는가.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축이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로봇, 우주, 해양으로 이동하는 현실에서 한국의 국력 레버리지는 어디에서 만들어져야 하는가.
결론은 하나로 수렴한다. 한국은 동맹을 ‘안보 보험’이 아니라 ‘질서 설계의 플랫폼’으로 격상시켜야 하며, 그 신뢰 위에서 자력 억지의 최종 형태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억지는 군사만이 아니라 산업·기술·공급망·금융·제재 내성을 포함하는 국가역량의 총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패권의 자기잠식이라는 경고
스티글리츠가 지적한 핵심은 미국 경제가 당장 수치상으로 붕괴하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패권이 유지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제도적 공간이었다. 법과 규칙이 존중되고, 정책이 비교적 예측 가능하며, 인재와 자본이 국적을 넘어 모여드는 곳이었다. 이 신뢰는 미국의 군사력만큼이나 강력한 힘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2기의 정책 충격은 이 신뢰를 잠식한다. 이민과 인재 유입을 제약하는 분위기, 연구·학문 영역의 정치화, 연방 차원의 연구 지원 불확실성은 생산성과 혁신의 뿌리를 약화시킨다. 이는 단기 경기 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우위가 재생산되는 메커니즘 자체가 흔들리는 문제다. 패권은 한 번의 승리로 유지되지 않는다. 매년, 매 세대,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그 재생산 장치가 훼손될 때 패권은 서서히 마모된다.
이 경고는 한국에 직접 연결된다.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할수록, 동시에 ‘미국이 흔들릴 때의 대체 설계’를 준비해야 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동맹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동맹의 불확실성 역시 함께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현실주의를 말하지만 균형정치로 가지 못하는 이유
트럼프 2기는 자유주의 패권의 언어를 후퇴시키고 현실주의를 선언한다. 그러나 실제 운용은 고전적 세력균형이라기보다 거래정치에 가깝다. 세력균형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체계의 안정을 목표로 한다.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기보다, 질서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정치다. 반면 거래정치는 동맹을 비용과 청구서의 문제로 환원시키기 쉽다.
이 방식은 동맹의 정치적 결속을 약화시키고, 레드라인을 모호하게 만든다. 레드라인이 불분명할수록 상대는 모험주의를 선택한다. 유럽 전장에서든, 인도태평양에서든 마찬가지다. 확장과 억지의 룰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압박과 거래만 남으면, 동맹은 불안해지고 경쟁자는 계산을 시작한다.
한국은 이 구조에서 두 겹의 위험에 노출된다. 하나는 미국의 억지력이 정치적 거래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동맹 결속의 균열을 ‘시간표’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전략은 “미국을 믿자”가 아니라 “미국이 믿을 수 있는 동맹이 되되, 미국이 흔들릴 때도 억지가 유지되게 하자”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다극화의 본질은 전쟁이 아니라 유혹이다
다극화의 본질은 전쟁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데 있지 않다. 유혹이 늘어나는 데 있다. 침공의 유혹은 상대가 분열되어 보일 때, 그리고 비용이 낮아 보일 때 커진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바로 이 두 조건이 동시에 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정치적 분열은 공동대응의 속도를 늦추고, 기술과 공급망의 무기화는 전면전 없이도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선택지를 늘린다. 전쟁과 평화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억지력은 군사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재를 견디는 경제 구조, 공급망의 탄력성, 정보·통신망의 방호, 금융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까지 포함한 국가 운영력이 억지의 일부가 된다.
이 점에서 독자 핵무장 논의는 오히려 더 넓은 전제를 요구한다. 핵은 버튼이 아니라 체계다. 체계는 외교, 산업, 기술, 사회적 합의가 함께 받쳐야 작동한다.
동맹을 질서의 플랫폼으로, 억지를 국가역량의 총합으로
한국이 2036년 세계 5위 선진강국을 목표로 한다면, 안보는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 한미동맹을 비용·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질서 설계의 플랫폼으로 격상해야 한다. 동맹 기여는 방위비 증액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질서의 핵심 영역에서 공동의 규칙과 표준을 만들어 가는 능력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우주, 조선, 방산, 해저 인프라에서의 공동 설계와 공동 방호는 군사 협력만큼 중요한 동맹의 내용이다.
둘째, 이 신뢰 위에서만 자력 억지, 특히 핵 옵션 논의가 외교적 현실로 전환될 수 있다. 핵은 감정의 결단이 아니라 질서 유지의 기술로 제시되어야 한다. 단계적·조건부·관리체계형 접근 없이는 국제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셋째, 자력 억지는 군사 억지의 최종 단계일 뿐, 그 이전 단계에서 한국을 지키는 것은 산업과 기술의 생산 능력이다. 반도체는 탄약이고, 인공지능은 지휘통제이며, 양자는 암호와 센서이고, 조선은 바다의 지속력이며, 방산은 동맹의 공급 능력이다. 이 연결고리가 끊기면 어떤 외교도 지속되지 않는다.
두 가지 함정과 하나의 결론
미국 패권 약화 국면에서 한국이 피해야 할 함정은 분명하다. 첫째, 미국이 흔들리니 중국에 더 가까이 가자는 유혹이다. 이는 단기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장기 안보 비용을 폭발시킨다. 둘째, 동맹 강화만으로 충분하다는 단순화다. 동맹은 내부 역량이 낳는 결과다.
스티글리츠의 경고는 예언이 아니라 선택에 대한 경고다. 미국을 중심축으로 삼되, 미국의 흔들림을 전제로 설계하라는 메시지다. 한국의 대전략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기술과 산업으로 버티는 힘을 만들고, 그 힘을 동맹의 신뢰로 전환하며, 그 신뢰 위에서 최종 억지로서의 독자 핵무장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미국 패권 없는 세계로 가는 길목에서 한국이 택해야 할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