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의 핵관리 딜과 동맹의 시험대...동맹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억지는 사라진다
이미지 확대보기외교에 나설 준비를 마친 북한, 방향을 바꾸는 신호
2026년을 앞두고 국제 언론에 포착된 북한의 움직임은 분명하다. 일본의 교도통신이 1월1일 보도한 대로, 북한은 당대회를 기점으로 국방 노선을 재정비한 뒤 외교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술적 외교가 아니라, 핵 능력을 완성한 뒤 그 지위를 관리하고 정상화하려는 전략적 외교에 가깝다.
북한은 이미 자신이 추구해 온 핵 개발의 주요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전술핵, 고체연료 미사일, 핵추진 잠수함까지 포함된 5개년 국방 계획은 ‘핵을 갖기 위한 단계’를 넘어 ‘핵을 운용하는 단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런 조건에서 외교는 양보가 아니라 성과를 제도화하는 수단이 된다.
북한이 외교에 나서려는 대상은 명확하다. 미국이다. 그리고 그 목적 역시 분명하다. 핵 보유국으로서의 사실상 인정이다. 비핵화라는 단어는 협상 문서에 남을 수 있으나, 실제 협상의 내용은 핵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아니라 핵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트럼프의 선택: 비핵화가 아닌 ‘관리 가능한 북핵’
이 국면에서 중요한 변수는 미국,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다. 트럼프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종식을 선언했고, 새 국가안보전략(NSS) 역시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을 표방한다. 그러나 북한 문제에서 트럼프가 실제로 추구하는 목표는 이상적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 본토에 대한 핵 위협 제거에 가깝다.
트럼프에게 북한은 체제를 바꿔야 할 적대국이기보다, 거래를 통해 관리할 수 있는 위험 요소다. 김정은과의 정상 외교에 다시 열려 있는 트럼프의 태도는 북한의 체제 성격이나 인권 문제에 대한 재평가가 아니라, 핵 위협의 범위를 미국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계산에서 비롯된다.
이 지점에서 미·북 협상의 성격은 분명해진다. 핵 실험 중단, ICBM 발사 유예, 일부 사찰, 단계적 제재 완화와 같은 조합은 미국에게는 충분히 ‘성과’로 포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조합은 북한의 핵을 제거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을 겨냥한 핵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할 뿐이다.
미·북 핵관리 딜이 고착될 때 한국이 마주할 현실
문제는 이 구조가 한국에 어떤 의미를 갖느냐다. 미·북 핵관리 딜이 굳어질수록, 위협의 기준은 미국 중심으로 재설정된다.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않는 핵은 ‘관리 대상’이 되지만, 서울을 위협하는 전술핵은 협상의 주변부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이때 한국은 동맹국이지만, 핵 위협의 직접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핵 협상의 중심에서 밀려날 위험에 처한다. 이는 동맹의 붕괴가 아니라, 동맹의 성격 변화다. 보호는 유지되지만, 결정권은 약화되는 구조다.
한국이 빠질 수 있는 세 가지 전략적 함정
첫째는 동맹의 형식과 억지의 실질이 분리되는 함정이다. 확장억지는 반복적으로 확인되겠지만, 핵 사용 결정과 위기 관리의 핵심은 미국이 독점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
둘째는 침묵이 동의로 해석되는 함정이다. 한국이 명확한 조건과 선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이를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수용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 사후 항의는 협상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셋째는 대남 핵 위협의 정상화다. 북핵이 국제적으로 관리되는 현실이 되는 순간, 북한의 전술핵은 더 이상 ‘일탈’이 아니라 협상 이후에도 존속하는 전력으로 굳어진다.
이 세 가지 함정은 동시에 작동할 때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급격히 잠식한다.
한국 전략의 중심축: 자력 억지 없이는 동맹도 작동하지 않는다
이 국면에서 한국이 취할 전략은 분명하다. 자력 억지를 갖춘 상태에서 동맹을 운용하는 것이다. 동맹은 자력 억지가 있을 때 강화되고, 없을 때 관리 대상으로 전락한다.
첫 번째 축은 확장억지의 실질화다. 선언적 핵우산을 넘어, 핵 사용과 전략자산 운용에 대한 공동 기획과 공동 결정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상설 핵협의체, 위기 시 자동 가동 메커니즘, 공동 시나리오 훈련이 없는 확장억지는 심리적 위안에 불과하다.
두 번째 축은 조건부 독자 핵 옵션의 명문화다. 이는 즉각적 핵무장 선언이 아니다. 그러나 북핵의 사실상 승인, 대남 전술핵 유지, 미·북 합의에서 한국 안보의 배제라는 조건이 충족될 경우, 한국이 독자 억지 수단을 단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옵션의 존재 자체가 협상력이다.
세 번째 축은 핵무장으로 수렴 가능한 준비의 축적이다. 연료주기, 미사일 기술, 지휘통제 체계, 핵 운용 교리는 정치적 선언 없이도 준비될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핵무장은 위험하지만, 준비된 옵션은 억지다.
트럼프를 상대하는 한국의 협상 언어
트럼프식 외교는 가치보다 거래 구조를 중시한다. 한국이 제시해야 할 메시지는 단순하다.
첫째, 미국의 대북 딜이 성공하려면 한국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안보 불안은 동아시아 전체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트럼프의 성과를 잠식한다.
둘째, 북핵을 관리하는 순간 한국의 옵션은 커진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을 배제한 딜은 한국 내 대안 옵션에 대한 지지를 키운다.
셋째, 한국은 더 많은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결정권을 요구한다는 거래 언어다. 더 내면 더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국내 공론장의 재정렬: 핵무장은 이념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이 전략이 작동하려면 국내 공론장의 재정렬이 필요하다. 핵무장 논쟁을 찬반의 이념 대결로 둘수록 국가는 선택지를 잃는다. 프레임은 ‘비핵화 대 핵무장’이 아니라 한국이 배제된 핵관리 체제를 수용할 것인가, 한국이 포함된 억지 체계를 설계할 것인가여야 한다.
핵무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억지 권한, 공동결정권, 자동성, 옵션의 제도화다. 이 언어로 공론장을 옮길 때, 전략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선택을 미루는 순간 전략은 사라진다
북한은 핵을 완성했고, 외교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은 그 핵을 관리하려 한다. 이 흐름은 한국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전략은 반응이 아니라 선제적 설계여야 한다.
핵무장은 최종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열어두지 않는 순간, 한국은 미·북 핵관리 체제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결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자력 억지가 없는 동맹은 신뢰를 잃고, 선택지가 없는 국가는 협상 대상이 된다. 한국의 핵무장 논의는 이제 금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을 설계하는 문제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