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준중 사이에서 사라진 한국의 안보...대만 문제에서 무너진 한국 외교의 좌표
이미지 확대보기침묵이 승인으로 기록되는 시대, 한중 1.5 정상회담의 실체
지금은 외교적 수사가 시간이 지나 사라지는 시대가 아니다. 오늘의 발언은 즉시 기록되고, 그 기록은 다음 위기에서 인용되며, 결국 국가의 입장으로 굳어진다. 특히 군사적 긴장이 실제로 진행 중인 국면에서는, 모호한 표현조차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이 점에서 2026년 1월 초 한국 외교가 선택한 언어와 순서는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좌표의 문제다.
2026년 1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과 새해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청와대는 이 사실을 “시진핑의 신년 첫 정상회담 파트너가 한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별한 외교적 성과로 포장했다. 그러나 이 정상회담은 ‘어떻게 성사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를 띠기 시작한다. 정상회담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국이 무엇을 주었고 무엇을 유보했는가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단순히 ‘하나의 중국’ 입장에 대한 언급 여부가 아니다. 그것은 정상회담이라는 외교적 상징을 얻기 위해, 한국이 중국의 핵심 전략 프레임을 언제, 어떤 조건으로, 어떤 형식으로 수용했는가라는 문제다. 그리고 그 과정은 한국 외교가 얼마나 쉽게 원칙을 거래 대상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1.5 한중정상회담 이전에 먼저 건너간 것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다. 정상회담이 확정된 뒤에 외교적 수사가 오간 것이 아니라, 정상회담 일정이 논의되는 과정 혹은 제안 직후, 중국이 정치적 요구를 제기했고 한국이 이에 응답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이 시점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위성락의 발언 구조상, ‘지지 요청’과 ‘정상회담 성사’는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만약 중국의 요청이 정상회담 일정 확정 이후에 있었다면, 굳이 안보실장이 이를 공개 브리핑에서 먼저 언급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는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중국이 명확한 정치적 전제 조건을 제시했고, 한국이 이를 수용했음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신년 첫 정상회담은 외교적 우연이 아니라 교환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
‘하나의 중국’은 단순한 외교적 슬로건이 아니다. 이는 중국이 대만 문제를 다루는 모든 군사·외교·법적 행동의 출발점이며,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핵심 정치 프레임이다. 이 개념을 “존중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이해나 인지 차원이 아니라, 중국의 문제 설정 방식 자체를 규범적으로 인정하는 언어다.
특히 지금은 중국이 대만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 중인 시점이다. 일본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방어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국은 대만 문제를 인도태평양 질서의 시험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에서 스스로 발언권을 약화시키는 선택이다.
문제는 한국이 이 입장을 표명하면서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성락의 1월 2일 기자회견에는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라는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만약 그 조건이 중국에 전달된 공식 메시지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안보실장이 이를 숨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는 한국 외교의 방어 논리로 적극 활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곧 조건이 없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CCTV 인터뷰라는 ‘사후 방어선’
이 공백은 같은 날 공개된 이재명의 중국 CCTV 인터뷰에서 갑자기 메워진다. 이재명은 인터뷰에서 하나의 중국 입장을 지지한다고 말한 뒤, 곧바로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하며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만 떼어 놓고 보면 균형 잡힌 외교 언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왜 이 조건이 정부 간 공식 입장 전달이 아니라,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 등장했느냐다. 외교에서 조건은 먼저 제시되어야 의미를 갖는다. 사후적으로 제시된 조건은 원칙이 아니라 방어다. 이는 이미 전달된 메시지가 불러올 파장을 관리하기 위한 조치에 가깝다.
CCTV는 중국의 국영 방송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 간 공식 외교 문서가 아니다. 이 채널을 통해 제시된 조건은 중국 정부를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국제사회와 국내 여론에 ‘우리는 침공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최적화된 선택이다. 이는 원칙의 관철이 아니라, 인식 관리 전략이다.
이 구조는 명확하다. 공식 외교 채널에서는 지지 입장을 전달하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오해는 비공식 인터뷰를 통해 사후적으로 차단한다. 이것이 이번 사안에서 드러난 외교의 작동 방식이다.
신년 첫 정상회담이라는 유혹
왜 이런 선택이 이루어졌는가. 답은 청와대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표현 속에 있다. “시진핑의 신년 첫 정상회담 파트너가 한국이다.” 이 문장은 외교적 성과를 과시하기에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 상징을 얻기 위해 무엇을 내주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명확하다. 대만 포위 훈련을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은 공개적으로 반대 진영에 섰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까지 명확한 선을 긋는다면, 중국은 동북아에서 전략적 고립을 체감하게 된다. 반대로 한국이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고 공개 표명한다면, 이는 대만 문제를 둘러싼 국제 여론전에서 결정적 외교적 성과다. 이 대가로 신년 첫 정상회담이라는 상징을 제공하는 것은 충분히 계산된 선택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이 제공한 외교적 보상이며, 한국이 제공한 것은 정치적 인정이다. 이것이 바로 바터(barter, 교환) 외교 의혹의 핵심이다.
동맹과 억지 전략에 남긴 상처
이 선택이 남긴 후과는 가볍지 않다. 첫째, 한국은 대만 문제에서 스스로의 도덕적·전략적 좌표를 약화시켰다. 향후 한국이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를 주장할 때, 중국은 언제든 “당신들은 우리의 원칙을 존중한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외교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상대가 당신의 말을 인용해 당신의 입을 막는 순간이다.
둘째, 한미동맹의 신뢰 구조에 불필요한 의문을 남겼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동맹국을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위기 시 어느 편에 서는지를 조용히 분류한다. 대만 문제는 이미 미국에게 있어 중국의 ‘내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 책임자가 중국의 핵심 입장을 존중한다고 공개 발언한 것은, 군사 공약이 아니더라도 분명한 정치적 신호로 해석된다.
셋째,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이 선택이 한국의 자력 억지 전략, 특히 독자 핵무장 노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향후 핵무장을 설득하려면,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질서 유지에 실제 위험을 분담하는 책임 있는 국가라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런데 대만 문제에서 중국의 프레임을 먼저 수용하는 태도는, 한국이 자신의 안보 위기에서는 미국의 결단을 요구하면서도 미국의 핵심 전략 사안에서는 거리를 두는 국가라는 인상을 강화한다.
외교는 성과가 아니라 문장을 남긴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외교적 실수가 아니다. 이는 정상회담이라는 상징적 성과를 위해, 원칙의 제시 순서를 뒤집은 선택이다. 조건은 나중에 말해도 된다고 판단한 순간, 외교는 원칙이 아니라 관리의 기술이 된다.
한국이 중국 정부와의 정부 간 공식 입장 교환 때 말했어야 할 문장은 단순했다.“우리는 중국의 입장을 인지한다. 그러나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이 문장을 먼저 말하지 못했다면, 그 뒤에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로든 기자회견으로든 덧붙인 모든 조건은 방어일 뿐이다. 침묵은 기록되고, 존중은 승인으로 재해석된다. 그리고 정상회담은 끝나도, 그 문장은 남는다.
2026년 1월의 한중 신년 첫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가 무엇을 얻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먼저 내주었는지를 묻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지 대만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이 앞으로도 강대국 사이에서 원칙을 지렛대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성과와 교환할 것인지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지금 기록된 문장은 이미 되돌릴 수 없다. 문제는 다음 위기에서, 그 문장이 누구의 손에 쥐어질 것인가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