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동맹 보완', 일본은 '각자도생'…전략적 지향점 달라
-대중(對中) 견제·북핵 시각차 뚜렷…"협력 선언보다 불신 관리 시급"
-대중(對中) 견제·북핵 시각차 뚜렷…"협력 선언보다 불신 관리 시급"
이미지 확대보기같은 협력을 말하지만 서로 다른 질서를 상정하고 있다
일본의 고도인 나라에서 14일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 간에 개최되는 한일 정상회담의 표면적인 의제는 명확하다. 안보 협력 강화, 경제와 기술 분야의 실용 협력, 북핵 대응과 역내 안정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여기에 있지 않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협력의 양이나 속도가 아니라, 양국이 이 협력을 통해 도달하려는 전략적 목적지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의 한일 관계는 협력의 필요성보다 협력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는 국면에 놓여 있다. 양국은 모두 동맹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동맹이 어떻게 작동하고 언제 작동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세계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쪽은 여전히 자동성을 기대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이미 그 자동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움직인다.
이 같은 차이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 인식의 문제다. 자동 억지가 유지되는 세계에서는 협력은 보완 장치다. 그러나 자동 억지가 불확실해지는 순간, 협력은 대체 장치가 된다. 한국과 일본은 지금 같은 협력을 말하면서도, 한쪽은 보완을 상정하고 다른 한쪽은 대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불일치가 바로 오늘의 한일 관계를 규정하는 구조적 긴장이다.
자동 억지의 붕괴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간표
반면 일본의 시간표는 다르다. 일본은 이미 동맹의 자동성을 조건부 변수로 인식하고 있다. 미일동맹이 존재하더라도 개입의 범위와 속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자국이 먼저 판단하고 움직여야 할 가능성까지 고려한다. 이 인식 위에서 한일 협력은 선택적 보완이 아니라 필수적 대비 수단이 된다.
이 시간표의 차이는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 국면에서는 치명적인 어긋남을 낳는다. 한국은 시간을 벌며 국면을 관리하려 하고, 일본은 시간을 앞당겨 결단을 내리려 한다. 같은 위기를 두고도 서로 다른 시계를 보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자동 억지가 무너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억지의 약화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동맹국들이 서로 다른 붕괴 시점을 상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불일치는 협력의 순간에 협력을 지연시키고, 결단의 순간에 결단을 분산시킨다.
중국을 둘러싼 전략 공간 인식의 충돌
한일 간 가장 구조적인 균열은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발생한다. 한국에게 중국은 관리해야 할 현실이다. 경제, 외교, 안보가 얽힌 복합적 대상이며, 전면 충돌은 피해야 할 시나리오다. 이 관점에서 한일 협력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안정성을 유지하는 완충 장치로 설계되기 바라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반면 일본에게 중국은 이미 구조적 경쟁자이자 위협이다. 해양 통제, 대만 문제, 공급망, 희토류와 기술 패권까지 모든 영역에서 제로섬 경쟁이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 구도에서 한일 협력은 중국을 견제하는 전선의 일부로 기능해야 한다는 일본의 바람이다.
이 같은 차이는 단순한 외교적 뉘앙스 차이가 아니다. 일본은 한국이 결정적 순간에 중국 문제에서 한발 물러설 수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고, 한국은 일본이 자신을 대중 충돌의 전면으로 끌어들이려 할 수 있다는 경계를 품고 있는 것이다. 신뢰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고 있다.
회담 테이블 위에서는 이 같은 충돌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대신 공동성명 문구의 수위, 언급과 침묵의 경계, 모호한 표현 속에 숨어서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 숨겨진 균열은 위기 상황에서는 반드시 표면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협력이 가장 필요할 때, 협력의 방향을 둘러싼 이견이 먼저 충돌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과거사가 다시 전략 변수로 돌아오는 이유
북한 문제 역시 한일 간 인식 차이가 분명한 의제다. 한국에게 북한은 실존적 위협이자 관리해야 할 현실이다. 억지는 필수지만, 동시에 국면 전환의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게 북한은 지속적 외부 위협이자 국내 정치와 안보 결속을 정당화하는 고정된 변수일 수밖에 없는 의제인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위협의 성격을 다르게 만든다. 한국은 위협을 유동적으로 관리하려 하고, 일본은 위협을 고정시켜 협력의 명분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이 같은 불일치는 정보 공유, 대응 수위, 확전 관리에서 반복적으로 마찰을 낳을 수밖에 없다.
과거사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다시 부상하고 있다. 동맹의 자동성이 흔들릴수록, 신뢰의 미세한 균열은 전략적 문제로 증폭된다. 한국에게 과거사는 완전히 닫히지 않은 의제다. 그러나 일본에게 과거사는 이미 정리됐다고 생각하는 사안이다. 이 같은 시간 감각의 차이는 질서가 불안정해질수록 더 큰 불신의 촉매로 작동할 것이다.
안정된 질서에서는 과거사가 관리 가능하다. 그러나 질서가 흔들릴 때, 과거사는 다시 현재의 전략 문제가 된다. 신뢰가 약해질수록, 기억은 돌아오는 법이다.
협력의 언어로는 갈등을 봉합할 수 없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실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합의는 도출될 것이고, 협력은 강조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완전한 전략적 합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양국은 같은 협력을 말하면서 서로 다른 질서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동맹을 보완하는 협력을 원하고, 일본은 동맹 이후를 대비하는 협력을 원한다. 한국은 속도를 조절하려 하고, 일본은 방향을 고정하려 한다. 이 같은 차이는 외교적 수사로는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이번 회담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합의를 했는가가 아니라, 서로의 전략적 한계를 어디까지 인정했는가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았는가, 오해를 관리했는가, 기대를 과잉 설정하지 않았는가가 핵심인 것이다.
동맹 이후의 시대에 협력은 더 중요해졌지만, 동시에 더 어려워졌다. 자동 억지가 사라진 세계에서 협력은 신뢰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신을 관리하는 기술이 된다.
본지가 이번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제기하고자 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한일 관계의 불안정성은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략 지도 위에 같은 회담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협력의 선언이 아니라, 그 협력이 작동하지 않을 순간을 상상하는 전략적 정직함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