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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흔드는 ‘안전한 취업’ 정석…청년들에겐 나쁜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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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흔드는 ‘안전한 취업’ 정석…청년들에겐 나쁜 일만은 아니다”

지난 2019년 7월 3일(현지시각) 프랑스 앙제에서 헬프데스크 직원들이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9년 7월 3일(현지시각) 프랑스 앙제에서 헬프데스크 직원들이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로이터

최첨단 인공지능(AI)이 전통적인 직업 경로를 뒤흔들고 있지만 이 변화가 반드시 청년들에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업계 인물인 빌 걸리 벤치마크캐피털 총괄파트너는 기존에 정석으로 간주됐던 ‘사회 진출을 위한 안전한 진로’가 이미 오래전에 균열을 일으켰고 AI 확산은 오히려 젊은 세대가 관심과 호기심을 따라갈 기회를 넓혀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걸리는 이날 FT에 낸 기고문에서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의 미래를 두고 불안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인턴십이 정규직으로 이어질지 선택한 전공이 실제 직업으로 연결될지에 대한 걱정이 커진 데다 법조계와 의료계 금융 공학처럼 한때 안정적이라고 여겨졌던 직업들조차 기술 변화 앞에서 불확실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이같은 불안을 AI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거쳐 직업으로 이어지는 기존 경로 자체가 AI 등장 이전부터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걸리는 최근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연구진과 함께 직업 선택에 대한 후회를 주제로 한 연구를 진행했다. 미국 전역에서 다양한 산업과 경력 단계에 있는 1만명 이상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60%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하겠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40% 이상은 전혀 다른 직업을 택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는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갤럽의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몰입하고 있다’거나 ‘잘 지내고 있다’고 답한 근로자는 전체의 4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응답자의 59%는 이른바 ‘조용한 퇴사’ 상태로 직무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걸리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부모와 교사 정치인들의 선의가 오히려 청소년과 청년들을 고압적인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았다”고 진단했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안전한 전공을 고른 뒤 이력서를 쌓아 소수의 ‘안전한 직업’에 진입하라는 압박 속에서 많은 성인이 후회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도 예로 들었다. 걸리는 벤처캐피털에 몸담기 전 엔지니어로 2년 월가에서 3년을 보냈다. 당시에는 우회로처럼 보였던 이 경력들이 결과적으로는 시야를 넓히고 기술과 판단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걸리는 의미 있는 경력은 직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많은 성공한 인물들이 중간에 진로를 바꿨고 무엇이 자신을 진정으로 만족시키는 일인지 깨닫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사회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호기심을 따라갈 때 일은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에 가까워지고 그 결과 성과와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걸리는 부모들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자녀의 경제적 안정을 바라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그 본능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명문대와 좋은 성적 권위 있는 인턴십까지는 해냈지만 정작 무엇에 열정을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걸리는 AI가 이 지점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전통적인 직업 경로가 흔들리면서 젊은 세대가 스스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AI 덕분에 천체생물학이나 계산언어학 양자암호학 같은 특수 분야부터 영화 제작 같은 대중적 분야까지 새로운 주제를 빠르고 깊이 탐구하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는 것이다.

그는 자녀의 진로를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불안을 더하는 존재가 되기보다 잠재력을 끌어내는 조력자가 되라”고 조언했다. 청년이 진정한 관심과 내적 동기를 보일 때 더 안정적이거나 체면이 선다는 이유로 다시 기존의 컨베이어벨트로 돌려보내려는 충동을 억누르고 그 선택을 지지해 달라는 것이다.

걸리는 “AI가 모든 직업 경로를 흔드는 시대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은 청년이 타고난 호기심을 어디로 향하든 키워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