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더 이상 지갑만 여는 '호갱' 아니다…국산화 및 R&D 집중하며 방산 생태계 구축 박차
중국·튀르키예의 거침없는 질주…전 영역 아우르는 '무기 백화점' 차리고 안방 차지한 미국 맹추격
초라한 러시아와 '실전 인증' 앞세운 우크라이나…전쟁이 바꾼 K-방산 수출 시장의 새로운 함수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격년으로 개최하는 세계방위산업전시회(WDS·World Defense Show)는 단순한 무기 거래의 장을 넘어, 글로벌 방위산업의 힘의 이동과 미래 전쟁의 트렌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풍향계다. 지난 2월 사우디 리야드 외곽에서 열린 'WDS 2026' 현장을 직접 취재한 폴란드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24(Defence24)의 보도를 통해, 요동치는 세계 방산 지형과 그것이 한국(K-방산)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를 심층 분석한다.중국·튀르키예의 거침없는 질주…전 영역 아우르는 '무기 백화점' 차리고 안방 차지한 미국 맹추격
초라한 러시아와 '실전 인증' 앞세운 우크라이나…전쟁이 바꾼 K-방산 수출 시장의 새로운 함수
사우디의 각성: "이제 완제품은 사지 않는다, 기술을 다오"
이번 WDS 2026의 가장 큰 특징은 주최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완연한 태도 변화다. 과거 오일머니를 앞세워 서방의 최첨단 무기를 '쇼핑'하듯 사들이던 사우디는 이제 없다. 무기 수입국에서 독자적인 방산 강국으로 거듭나려는 야심이 전시장 곳곳에서 묻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제조(Made in Saudi Arabia)' 마크가 선명한 장갑차와 각종 군사 장비들이 당당히 메인 파빌리온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30년까지 국방비 지출의 50% 이상을 자국 내에 배정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이번 전시회는 그 선언이 헛된 구호가 아님을 입증했다.
사우디는 단순히 해외 무기를 조립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미래 국방 랩(Future Defense Lab)'과 '사우디 공급망 존(Saudi Supply Chain Zone)'을 별도로 마련해 스타트업, 투자자, 정부 관계자를 한데 모으고 독자적인 연구 개발(R&D)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 방산 기업들에게 사우디는 이제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기술을 나누고 합작 투자를 해야 하는 깐깐한 파트너가 되었다. 무기 판매와 함께 현지 생산 및 기술 이전(TOT)을 패키지로 묶어 파는 전략이 없다면 중동 시장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무기 백화점' 차린 중국과 튀르키예의 무서운 굴기
전시장 양쪽 날개를 차지한 중국과 튀르키예의 약진은 미국과 유럽 중심의 전통적인 방산 질서가 흔들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은 과거의 '가성비 무기' 이미지를 벗고, 육·해·공은 물론 우주와 사이버 영역까지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을 들고나왔다. 로봇개부터 드론 스웜(군집 드론) 발사기, 레이저 무기(DEW), 심지어 6세대 전투기 개념 모형까지 선보이며 압도적인 기술력을 과시했다. 노린코(NORINCO) 등 국영 거대 기업을 중심으로 수많은 중소 전문 기업들이 포진해, 고객이 원하는 어떤 무기 체계든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뽐냈다. 디펜스24는 "중국은 이미 무기 수출 시장에서 러시아의 자리를 대체할 준비를 마쳤다"고 평가했다.
이미지 확대보기튀르키예의 행보도 매섭다. 오토카르(Otokar), 아셀산(Aselsan) 등 방산 대기업들을 필두로 장갑차, 자주포, 무인 수상함(USV), 그리고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바이락타르 무인기(UCAV)까지 전 영역에 걸친 첨단 무기를 선보였다. 특히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5세대 전투기 '칸(KAAN)'의 모형을 대대적으로 전시하며 중동 차세대 전투기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초라해진 러시아와 '실전 검증' 내세운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리야드 전시장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과거 웅장한 부스와 화려한 카탈로그로 전 세계 무기 바이어들을 홀렸던 러시아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쪼그라들었다.
러시아는 이스칸데르 미사일 모형과 대공 시스템 등을 전시했지만, 관람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란,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드러난 '러시아제 무기 거품' 논란과 이로 인한 S-400 대공 방어망의 실패 경험이 중동 고객들의 신뢰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서방의 견제로 핵심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 방산업계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전투에서 검증된(Combat-proven)"이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혹독한 실전 환경에서 성능이 입증된 자국산 무기체계를 홍보하며 틈새시장을 노렸다. 특히 자주포 '보그다나(Bohdana)'를 사우디까지 공수해 전시한 것은 전란 속에서도 방위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우크라이나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여전히 굳건한 안방마님 미국, 그들이 싸우는 방식
중국과 튀르키예의 맹추격 속에서도 미국의 패권은 여전히 굳건했다.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온(RTX) 등 글로벌 방산 공룡들은 미군이 실제로 운용 중인 에이브럼스 전차, 브래들리 장갑차, 하이마스(HIMARS) 등 검증된 무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미국의 가장 강력한 영업 사원은 다름 아닌 '미군' 그 자체였다. 미국은 전시장에 현역 군인들을 배치해 관람객(잠재적 구매자)들이 직접 무기 체계의 실전 운용 경험을 듣고 토론할 수 있도록 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 관할 지역의 특성을 살려 F-35 스텔스 전투기는 물론 F-15, F-16, A-10 등 미 공군의 주력 기종들을 대거 전시하고 축하 비행까지 선보이며 '동맹국' 사우디에 대한 굳건한 안보 공약을 시각적으로 증명했다.
K-방산, '가성비' 넘어 '생태계 공유'로 진화해야
총 88억 달러(약 12조 6000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계약이 쏟아진 WDS 2026은 K-방산에 명확한 숙제를 던졌다.
무기를 수입하던 국가들이 앞다퉈 자국 방위산업 육성에 나서면서 글로벌 방산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해졌다.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더 이상 한국산 무기를 '가성비 좋은 서방 무기 대체재'로만 보지 않는다.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기술 이전, 현지 공동 생산, 나아가 제3국 공동 진출을 위한 '방산 파트너십'을 원하고 있다.
한국 방산업체들은 단품 무기 수출을 넘어, 우리 군의 운용 경험을 공유하고 현지 R&D 센터를 구축하는 등 상대국의 국방 생태계 성장에 기여하는 '포괄적 안보 협력 패키지'를 제시해야 한다. 중국의 물량 공세와 튀르키예의 정치적 결속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K-방산만의 고도화된 수출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정훈 기자 kjh777@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