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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공포 경제학] AI가 '일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수록, 소프트웨어 기업 주가는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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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공포 경제학] AI가 '일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수록, 소프트웨어 기업 주가는 추락한다

세일즈포스·워크데이 수십 % 폭락… 월가 덮친 'SaaS 종말론'의 실체와 한계
2026년 연초 이후 미국 기업용 소프트웨어 섹터에서 증발한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2026년 연초 이후 미국 기업용 소프트웨어 섹터에서 증발한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미지=제미나이3
2026년 겨울, 미국 증시에서 가장 빠르게 돈을 잃고 있는 투자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이른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하락을 촉발한 주역은 다름 아닌 AI. 기술주 전체를 5년 넘게 끌어올려 온 바로 그 인공지능이다. 국내 기업들의 미국 법인 소프트웨어 구독 계약과 IT 서비스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번 혼란은 단순한 미국 증시의 내부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
최근 4주 주요 기술주 주가 변동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최근 4주 주요 기술주 주가 변동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소프트웨어 기업 주가 동반 폭락, 수치로 본 충격


2026년 연초 이후 미국 기업용 소프트웨어 섹터에서 증발한 시가총액은 1조 달러(1,445조 원)를 넘어섰다. 고객 관계 관리(CRM) 분야의 절대 강자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연초 대비 26% 이상 하락해 52주 최저가 근방을 오가고 있으며, 인사·재무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워크데이(Workday)12개월 누적 기준 40% 이상 가치가 사라졌다. 클라우드 보안 기업 크라우드스트라이크와 데이터베이스 기업 오라클도 같은 기간 20~30%대 낙폭을 기록했다.

기술주 벤치마크인 나스닥 종합지수가 흔들리는 가운데, 유럽에서도 스톡스(Stoxx) 유럽 소프트웨어 지수가 단 하루 만에 5% 이상 급락하는 등 매도세는 대서양을 건넜다. 영국 정보분석 기업 RELX는 하루 만에 14% 넘게 추락했고, 프랑스 IT 대기업 캡제미니(Capgemini)9%대 낙폭을 피하지 못했다.

공포의 진원지, '에이전트 AI'가 일자리와 라이선스를 동시에 없앤다


이 같은 투매의 핵심에는 '에이전트 AI(Agentic AI)'에 대한 시장의 공포가 자리한다. 에이전트 AI는 사람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인공지능으로, 기존 소프트웨어 도구와 이를 사용하는 인력을 동시에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전 AI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문 조사기관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는 최근 보고서에서 에이전트 AI2028년까지 미국 화이트칼라 업무는 물론 인도의 IT 서비스 수출 부문까지 대거 대체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실업률 10% 도달, 증시 40% 급락 등 대공황 수준의 충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AI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될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재배치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공개 석상에서 밝혔다.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 역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연쇄 부실 가능성을 투자자들이 심각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SaaS 비즈니스 모델의 구조적 취약점도 이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수익 구조는 직원 1인당 라이선스 요금, 이른바 '시트(Seat)' 기반이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수십 명 몫의 업무를 처리하게 되면 기업들이 구매하는 소프트웨어 좌석 수 자체가 급감한다. 투자업계는 이를 '시트 압축'이라 부르며, 이것이 세일즈포스·워크데이 같은 기업들의 장기 수익 모델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핵심 변수라고 보고 있다.

"가장 잘 아는 자가 가장 두렵다", 내부 경고의 역설


지난달 27(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공포가 외부 비평가가 아닌 기술 산업의 중심부에서 발원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자신의 보고서에서 AI가 전쟁, 노동, 정부 시스템, 그리고 자유 사회의 미래에 미칠 위험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AI를 직접 개발·판매하는 기업의 최고 수장이 자사 기술의 파괴력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같은 현상을 역사적 선례와 연결 지어 분석했다. 원자폭탄을 만든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이후 핵확산의 가장 열렬한 반대자가 된 것처럼, 새로운 기술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 그 위험도 가장 생생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기술 창조자들이 스스로 만든 기술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가 되는 역설적 구도가 이번 AI 공포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공포의 함정, 1990년대 닷컴 버블과 닮은 과잉 반응


그러나 '종말 시나리오'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냉정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월가의 유력한 해석 가운데 하나는 지금의 AI 공포가 1990년대 닷컴 버블 당시 인터넷에 대한 공포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인터넷은 기존 모든 산업을 붕괴시킬 '종말의 기술'로 묘사됐지만, 결과는 파괴와 혁신이 혼재한 장기 성장으로 귀결됐다.

CNBC 보도에 따르면 세일즈포스는 2026 회계연도 4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2% 증가한 112억 달러(161840억 원)를 기록하고, 주당순이익도 시장 예상치를 대폭 웃돌았다. 주가는 추락하고 있지만, 실적은 건재하다는 뜻이다. JP모건과 골드만삭스의 분석가들은 소프트웨어 섹터의 주가매출비율(P/S)9배에서 6배 수준으로 압축된 현 시점이, 중장기 관점의 투자자에게는 선별적 저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해, AI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운명이라면 패닉은 무의미하고, 그렇지 않다면 패닉 자체가 불필요한 피해를 양산하는 최대 위험 요소라고 지적했다. 기술의 실체보다 공포의 크기가 시장을 지배하는 현 국면이 오히려 더 큰 위험 신호일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 기업엔 수혜와 리스크 공존


이번 충격은 국내 산업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삼성SDS, SK C&C 등 국내 주요 IT 서비스 기업들은 기업용 솔루션 사업을 핵심 수익원으로 삼고 있어, 글로벌 SaaS 시장이 위축될 경우 연관 사업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 반면 AI 에이전트 기술을 선제적으로 내재화하는 기업에는 오히려 해외 경쟁사의 공백을 파고들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에이전트 AI의 기업 도입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경우, 기존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계약 구조 전반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올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2026년 들어 'SaaS 종말론' 공포가 확산되며 전 세계 기업용 소프트웨어 섹터에서만 1조 달러 이상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나스닥 전체와 S&P500은 상대적 탄력을 유지했다. 자금이 소프트웨어에서 빠져나가 AI 인프라(엔비디아·TSMC), 에너지·방산 등 실물 자산 섹터로 이동하는 '대회전(Great Rotation)'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유럽 증시도 스톡스 소프트웨어 지수가 5% 이상 급락하는 등 동조화됐다. 한편 JP모건·골드만삭스는 현 주가매출비율(P/S 6)이 역사적 저점 수준으로, 장기 투자자에게는 선별적 저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 공포가 섹터 재편의 구조적 신호인지, 기술 혁명 초입의 일시적 과열 해소인지는 2026년 분기별 기업 실적이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