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통행량 90% 급감·스태그플레이션 공포 확산… 금리 인하 전망 '빨간불'
이미지 확대보기통행량 일주일 새 90% 급감
NBC 뉴스는 5일(현지시각) 중동 분쟁 격화로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유조선과 화물선 운항이 사실상 멈췄다고 전했다. 선박 추적 서비스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집계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해협 통과 유조선 수는 전주 대비 약 90% 급감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공급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전략 요충지로, 원유·천연가스뿐 아니라 알루미늄·설탕·비료 등 주요 원자재의 대동맥 역할을 해왔다.
보험료 5배 폭등… 선박들 발 묶여
물류 마비의 직접적 원인은 보험 시장의 붕괴다. 보험 중개업체 마쉬 릭스(Marsh Risk)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전쟁 위험' 조항을 근거로 기존 보험 효력을 취소하거나 보험료를 대폭 올리고 있다. 선박 가액의 0.25% 수준이던 보험요율은 지난 3일 하루 만에 1.25%로 뛰어올라 불과 며칠 새 5배 폭등했다. 이익보다 위험이 크다는 판단이 굳어지자, 세계 1·2·3위 해운사인 머스크(Maersk)·MSC·하팍로이드(Hapag-Lloyd)는 식량과 의약품 등 필수재를 제외한 모든 예약과 운항을 중단했다. 지난 4일에는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에 컨테이너선 한 척이 정체불명의 발사체에 피격됐다는 보고가 접수되며 현장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가솔린값 급등… 트럼프 '물가 치적'에 균열
에너지 공급망 교란의 파장은 소비자 가격에 즉각 반영됐다. 미국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미국 전역 가솔린 평균 가격은 갤런(약 3.8리터)당 3.19달러(약 4680원)를 기록했다. 일주일 새 22센트 오른 수치이며, 1년 전보다도 10센트 높다.
가솔린 가격 안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핵심 경제 성과였다. 식료품·주거비·자동차 보험료가 줄줄이 오르는 와중에도 유가 안정이 인플레이션 수치를 방어하는 완충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약 11만7400원)에 육박하면서 이 '안심 국면'은 막을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글로벌 공급망 컨설팅 기업 에피시오(Efficio)의 매트 렉스투티스 이사는 "단순한 물자 부족을 넘어 에너지 가격 상승이 공급망 전체로 번지면서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구매·조달 운영자들의 최우선 감시 지표가 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중동발 물류 마비라는 악재 속에서도 미국 주식시장은 비교적 차분하며, 상승세다.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이를 시장의 '냉정한 계산'과 '기대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한다.
우선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사태를 실물 경기 침체보다는 단기적인 공급망 병목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유가 급등과 가솔린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미 해군 호송과 정부 차원의 보험 지원 등 강력한 개입 의지를 즉각 천명한 점이 투자 심리를 방어한 것으로 보인다. 공급 충격을 정책적 수단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신뢰가 시장에 투영된 셈이다.
아울러 선물 시장과 프리마켓에서의 추가 상승은 에너지 섹터의 이익 개선 기대감과 더불어, 위기 상황에서 미 달러화·금 같은 전통적 안전 자산으로 자금이 쏠리는 한편, 에너지 섹터 수혜 기대감이 증시를 방어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상승을 두고 "악재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술적 반등이자, 미 정부의 시장 개입 능력에 배팅한 결과"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멀어지는 금리 인하
물가 압박이 커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정책 운용도 한층 어려워졌다. 올해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로 연준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 추가 상승은 금리 인하 시점을 더욱 늦추는 요인이 된다. 이미 시장에서는 이달로 예상했던 금리 인하 전망을 철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금리 향방에 민감하게 연동되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는 2022년 이후 처음으로 6% 아래로 떨어졌다가, 전쟁 격화 이후 6.07%까지 다시 치솟았다.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가 현실성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 깊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운송비와 생산 단가를 동시에 밀어 올리면 전방위 물가 압박이 불가피하다"며 "소비 심리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을 지금부터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도 '직격탄' 우려
에너지 자급도가 낮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이번 사태의 충격은 배가될 수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정유·석유화학·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을 중심으로 생산 원가 압박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맞물리면 수입 물가를 통한 인플레이션 재점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의 전략비축유 방출 여부와 에너지 공급 다변화 대책을 주목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가 단순한 지역 분쟁의 여파로 그칠지, 아니면 세계 경제의 지형을 바꾸는 변곡점이 될지는 향후 수주 안에 판가름 날 전망이다. 확실한 것은 에너지 안보 없이는 물가 안정도, 금리 인하도, 경기 회복도 공허한 구호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전략 요충지 하나가 흔들릴 때 세계 경제 전체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이번 사태는 다시 한번 냉혹하게 드러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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