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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베일 속 '영부인' 하메네이 아내 미스터리한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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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베일 속 '영부인' 하메네이 아내 미스터리한 일생

남편 사망 이튿날 별세… 사진조차 찾기 힘든 60년 '그림자 내조'의 종말
"로맨틱한 만남 아냐" 유일한 인터뷰 재조명… 철저한 은둔 뒤 가려진 권력의 삶
딸은 폭격으로 사망-아들은 후계 구도 핵심… '영부인' 칭호 거부한 채 역사 속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이란 대사관저에서 5일(현지 시각) 한 남성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위한 기도에 참석해 조의를 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이란 대사관저에서 5일(현지 시각) 한 남성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위한 기도에 참석해 조의를 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수십 년간 이란의 최고 권력자 알리 하메네이의 곁을 지키면서도 철저히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살았던 아내 만수레 코자스테 바게르자데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숨을 거두었다고 페르시아어 전문 뉴스채널 이란 인터내셔널이 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란 혁명 이후 최고 지도자의 배우자로서 '국모'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은 생전의 삶처럼 고요하고 비밀스러웠다.

사진조차 귀한 '보이지 않는 영부인'


보도에 따르면 바게르자데는 테헤란 중심부 파스퇴르 거리의 자택 근처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마지막을 맞이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란 현지 언론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개된 사진이 거의 없어 일부 매체는 실수로 전직 대통령 부인의 사진을 게재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이는 루홀라 호메이니나 라프산자니 등 다른 지도자들의 부인이 제한적으로나마 대외 활동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평생 이란 집권층 내에서도 사생활이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로 꼽혀왔다.

중매 결혼과 여섯 자녀 그리고 비극


1964년 마슈하드의 독실한 종교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족이 주선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메네이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로맨틱한 만남은 아니었다. 시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청혼하셨다"고 회고했다.

결혼 생활 동안 그는 네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가족으로서 겪어야 했던 비극도 적지 않았다. 딸 호다는 하메네이의 집무실을 겨냥한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집 밖에서는 철저한 히잡, 안에서는 내조"


그의 공적인 목소리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80년대와 90년대 단 두 차례의 잡지 인터뷰뿐이다. 그는 남편이 정치와 종교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정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었다.

집 밖에서는 엄격하게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이슬람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지도자의 아내라는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그림자 내조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이는 하메네이가 안보와 종교적 이유로 가족을 대중의 시선에서 격리시킨 통치 스타일과도 맞닿아 있다.

영부인 칭호 둘러싼 묘한 신경전


비록 그가 공식적으로 '영부인'이라 불린 적은 없지만 이 칭호를 둘러싼 상징적 권위는 이란 정계의 미묘한 갈등 요소였다. 과거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부인이 방송에서 이 칭호를 사용했다가 보수 진영으로부터 "영부인이라는 지위는 오직 최고 지도자의 가문에만 허용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정정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영 매체에 따르면, 평생을 남편의 그림자로 살았던 바게르자데는 마슈하드의 이맘 레자 성지에 있는 남편의 곁에 나란히 안장될 예정이다. 한 시대의 권력 뒤편에서 가장 고독하고도 강력한 조력자였던 그의 퇴장은 이란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이태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j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