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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걷어차기’ 나선 EU, 제조 강국 회귀 선언… 한국형 공급망 전략 재편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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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걷어차기’ 나선 EU, 제조 강국 회귀 선언… 한국형 공급망 전략 재편 시급

EU, 부품 30%·고용 50% 의무화 담은 ‘산업 가속화법(IAA)’ 초안 발표.
중국 저가 공세 차단 및 청정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강력한 빗장.
현지 거점 확보한 배터리 업계 ‘수혜’ vs 수출 위주 완성차·철강 ‘타격’.
EU 집행위원회는저탄소 핵심 기술의 유럽 내 제조를 지원하기 위한 ‘산업 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초안을 전격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EU 집행위원회는저탄소 핵심 기술의 유럽 내 제조를 지원하기 위한 ‘산업 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초안을 전격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친환경 기술의 자급자족을 목표로 역내 생산 비중을 강제하는 강력한 산업 보호 장벽을 구축하며 글로벌 공급망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유럽 내 산업 공동화를 막고 제조 주권을 회복하려는 실리적 전략이며, 보조금과 공공 입찰을 무기로 한 ‘유럽 우선주의’의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4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풍력 터빈과 배터리 등 저탄소 핵심 기술의 유럽 내 제조를 지원하기 위한 ‘산업 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초안을 전격 공개했다.

역내 제조·고용 요건 강제


이번 법안은 유럽 내에서 활동하는 역외 기업들에 전례 없는 수준의 현지화 의무를 부과한다.

EU는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전략 산업 분야에서 1억 유로(약 172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에 대해 전체 인력의 50% 이상을 현지인으로 채용하고, 최종 제품 부품의 30% 이상을 유럽산으로 조달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스테판 세주르네 EU 산업담당 집행위원이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청정 기술의 100%를 중국에 내어주게 될 것"이라며 우려한 것처럼, 중국의 저가 공세를 차단하고 유럽 내 제조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유지하려는 강력한 방어책이다.

대기업 희비 교차 속 중소 협력사 ‘동반 진출’ 시험대


국내 산업계는 이번 법안의 세부 조항에 따라 업종별로 엇갈린 처지에 놓였다. 이미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가동 중인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3사는 중국 경쟁사들을 견제하는 이번 법안을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기회로 본다.

반면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국내 생산 물량의 수출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계는 공공 조달 시장 배제와 보조금 삭감이라는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저탄소 공법 도입이 시급한 철강 산업은 새롭게 도입되는 ‘그린 라벨’ 제도가 사실상의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내 중소 부품 협력사들의 생존권이다 ‘역내 부품 30%’라는 의무 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기업들이 협력사에 유럽 현지 동반 진출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본력과 전문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으로서는 현지 공장 설립에 따른 고정비 부담과 탄소 배출량 데이터 증명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업계에서는 독자적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 부품사가 공급망에서 탈락하는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통상 외교와 현지화가 생존 분수령


EU가 예고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지위 확보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기민한 대응이 향후 생존의 핵심 열쇠가 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한-EU FTA 파트너국으로서 우리 기업들이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오세르바토리오 골든 파워의 루카 피코티 연구원은 이번 조치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 만큼 협상의 난도가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입법 일정상 이번 법안은 2026년 하반기 최종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우리 기업들은 단순 수출 구조에서 벗어나 유럽 내 가치 사슬에 깊숙이 편입되는 ‘글로벌 현지화’ 전략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중소기업의 유럽 진출 자금 지원과 탄소 관리 시스템 구축을 돕는 등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하여 이번 위기를 공급망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