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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몸체’에 이식된 미국의 ‘두뇌’… 로봇 패권의 새로운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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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몸체’에 이식된 미국의 ‘두뇌’… 로봇 패권의 새로운 양상

아마존·UC버클리, 인간형 로봇 파쿠르 시스템 ‘PHP’ 공개… 하드웨어 한계 넘었다
2000만 원대 로봇으로 1.25m 벽 정복… ‘SW 독점’ 노리는 빅테크의 노림수
중국산 ‘몸체’(유니트리 로봇)에 이식된 미국의 ‘두뇌’(PHP 시스템)가 눈앞의 콘크리트 장애물 코스를 인지하고, 이를 뛰어넘거나 기어오르는 역동적인 파쿠르 동작을 수행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산 ‘몸체’(유니트리 로봇)에 이식된 미국의 ‘두뇌’(PHP 시스템)가 눈앞의 콘크리트 장애물 코스를 인지하고, 이를 뛰어넘거나 기어오르는 역동적인 파쿠르 동작을 수행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글로벌 로봇 산업의 중심축이 하드웨어 제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아마존 프런티어 AI 로보틱스(FAR)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UC Berkeley) 공동 연구팀은 시각 인지 기술을 바탕으로 복잡한 장애물을 자율 돌파하는 ‘지각형 휴머노이드 로봇 파쿠르(PHP)’ 프레임워크를 선보였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과학 전문 매체 피즈오알지(Phys.org)를 통해 공개된 이번 연구는 특히 중국산 범용 로봇을 활용해 초인적인 민첩성을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각 정보로 스스로 판단… 60초간 끊김 없는 ‘장애물 돌파’


이번 연구의 주인공은 특정 로봇 제품이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이라면 어디든 이식할 수 있는 고성능 인지·구동 운영체제(OS)인 ‘PHP 시스템’이다.

지금까지의 로봇 보행 기술이 평탄하지 않은 지면에서 균형을 잡는 수준이었다면, PHP는 달리고 점프하며 기어오르는 역동적인 동작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연구팀의 젠 우(Zhen Wu)와 샤오유 황(Xiaoyu Huang) 연구원은 이번 논문에서 “기존 로봇 보행 기술이 안정성에 집중했다면, PHP는 인간의 표현력 있는 움직임과 장기적인 동작 구성, 시각 기반의 의사결정을 통합한 모듈형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실험에서 로봇은 60초 동안 이어지는 복잡한 파쿠르 코스를 자율적으로 완주하며 그 성능을 입증했다.

중국산 가성비 로봇의 반란… 미국의 ‘소프트웨어 패권’ 전략


이번 실험에 사용된 하드웨어는 중국의 로봇 스타트업 유니트리(Unitree)가 제작한 ‘G1’ 모델이다.
약 1만6000달러(약 2300만 원) 수준의 이 로봇은 고가의 특수 로봇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와 달리 대량 생산이 가능한 범용 모델이다. 미국 최고의 연구진이 중국산 로봇을 선택한 배경에는 로봇 하드웨어의 ‘범용화(Commoditization)’가 자리 잡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누가 로봇을 만드느냐보다 누구의 소프트웨어로 조종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왔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아마존의 목적은 자사의 PHP 시스템만 있다면 저렴한 중국산 로봇도 인간 수준의 파쿠르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 즉, 하드웨어 제조 국가와 상관없이 로봇의 ‘두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빅테크의 전략적 노림수다.

키 96% 높이 벽 정복… 재난 구조·산업 현장 ‘게임 체인저


기술적 성취도 압도적이다. PHP 시스템이 탑재된 로봇은 자신의 키(약 1.3m)의 96%에 이르는 1.25m 높이의 벽을 타고 올라간 뒤 부드럽게 굴러 내려오는 동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또한 장애물을 연속으로 뛰어넘을 때도 초속 3m(시속 10.8km)의 빠른 속도를 유지했다. 이는 로봇에 장착된 심도 카메라가 지형을 읽고 ‘넘을지, 기어오를지, 구를지’를 찰나의 순간에 결정하는 ‘시각 기반 강화학습’ 덕분이다.

로봇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미국의 AI 소프트웨어 권력과 중국의 제조 역량이 만난 기묘한 동거를 보여준다”며 “앞으로 로봇이 공장 밖으로 나와 재난 현장이나 복잡한 도심을 누비기 위해서는 하드웨어보다 고도화된 지형 인식과 민첩성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봇 산업의 미래는 하드웨어라는 ‘껍데기’를 넘어, 이를 얼마나 똑똑하게 움직이게 하느냐는 ‘지능’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아마존 연구팀은 향후 이 시스템을 더 다양한 기종의 로봇에 이식해 실제 상용화 가능성을 타진할 계획이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