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하바나 증후군'의 실체 확인…미 정부, 러시아발 에너지 무기 입수·극비 동물 실험

글로벌이코노믹

'하바나 증후군'의 실체 확인…미 정부, 러시아발 에너지 무기 입수·극비 동물 실험

CBS '60분' 9년 추적 보도…러시아 범죄 조직 통해 입수한 지향성 에너지 무기(DEW) 실체 폭로
러시아 정예 '29155 부대' 연루 '영수증' 확보…미 정부의 은폐 및 비밀 테스트 의혹 정면 제기
외교관과 정보 요원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신체 공격을 호소하면서 시작된 '하바나 증후군'이 발생한 쿠바 하바나 소재 미국 대사관 모습. CBS '60분'은 9년간의 추적 보도 끝에 미 정부가 러시아발 지향성 에너지 무기를 실제로 입수해 동물 실험까지 진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외교관과 정보 요원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신체 공격을 호소하면서 시작된 '하바나 증후군'이 발생한 쿠바 하바나 소재 미국 대사관 모습. CBS '60분'은 9년간의 추적 보도 끝에 미 정부가 러시아발 지향성 에너지 무기를 실제로 입수해 동물 실험까지 진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로이터

전 세계 미국 외교관과 정보 요원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하바나 증후군(Havana Syndrome)'이 단순한 질병이 아닌 실존하는 무기에 의한 공격이었음을 시사하는 파격적인 보도가 나왔다. CBS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 '60분(60 Minutes)'은 지난 8일(현지 시각) 방송에서, 미 정부가 이미 해당 무기 체계를 러시아 범죄 조직을 통해 입수해 비밀리에 동물 실험을 진행해 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다. 제작진 오리아나 질 데 그라나도스(Oriana Zill de Granados)와 마이클 레이(Michael Rey)가 스콧 펠리(Scott Pelley) 앵커와 함께 9년에 걸쳐 추적한 결과물이다.

9년의 추적…쿠바에서 워싱턴까지 확산된 '보이지 않는 공격'


하바나 증후군은 2016년 쿠바 하바나에 주재하던 미국 외교관들이 갑작스러운 현기증, 두통, 구토, 시력·청력 저하, 인지 장애 등을 호소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중국 광저우와 상하이, 그리고 워싱턴 D.C. 본토까지 피해 사례가 확산되었다.

'60분'이 2019년 처음 보도한 사례는 중국 광저우 미 영사관 보안 담당관 마크 렌지(Mark Lenzi)였다. 그는 2017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금속 깔때기로 구슬이 굴러 내려가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은 뒤 인지 장애, 시력·청력 이상을 겪었다. 렌지는 그 소리가 항상 아들의 유아 침대 바로 위에서, 아들을 재우는 같은 시각에 들렸다고 증언했다. 그의 가족과 이웃 상무부 무역 담당관 캐서린 베르너(Catherine Werner)는 모두 빠르게 건강이 악화됐다. 베르너는 한밤중에 관자놀이에 강한 압박감과 낮은 윙윙 소리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고, 이후 구토와 코피 증상을 경험했다. 상하이의 또 다른 상무부 관리 로빈 가필드(Robyn Garfield)의 가족은 어린 자녀까지 균형 감각을 잃고 쓰러지는 증상을 겪었다.
2022년 보도에서는 피해 사례가 워싱턴 D.C. 심장부까지 침투했음이 드러났다. 당시 펜스 부통령의 국토안보·대테러 보좌관이었던 올리비아 트로이(Olivia Troye)는 2019년 아이젠하워 행정청 건물에서 백악관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중 "머리 한쪽에 관통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극심한 현기증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주차장으로 걷다가 "땅이 어디에 있는지 감각이 사라지는" 또 다른 증상을 겪기도 했다.

러시아 '29155 부대'의 '영수증'…조사 기자가 포착한 결정적 문서


이번 보도의 핵심 고리는 러시아 군사정보국(GRU) 산하 엘리트 암살·파괴 공작 조직 '29155 부대'와의 연결이다. 이 부대는 2018년 탐사 기자 크리스토 그로제프(Christo Grozev)가 처음 존재를 확인했다. 그로제프는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Alexei Navalny) 독살 시도 및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Sergei Skripal) 독살 시도 배후를 밝혀낸 인물이다.

그로제프는 29155 부대원이 러시아 정부에 제출한 이메일을 추적했다. 해당 문서는 "비살상 음향 무기의 잠재적 역량"에 대한 용역 대가를 청구하는 일종의 '영수증'이었다. 펠리 앵커가 문서를 직접 확인하며 "흑백으로 적혀 있다"고 말하자, 그로제프는 "이것이 가장 영수증에 가까운 증거"라고 답했다.

국방정보국(DIA)의 이상 건강 사례(Anomalous Health Incidents) 조사를 이끌었던 그렉 에드그린(Greg Edgreen)도 같은 패턴을 포착했다. 그는 "DIA 최상위 5~10%의 고성과 요원들이 일관되게 피해를 입었으며, 모두 러시아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뇌간을 쥐어짜는 고통"…전직 중령과 아내의 참혹한 증언

이번 보도에는 성을 밝히지 않은 전직 중령 '크리스(Chris)'가 등장했다. 극비 정찰위성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워싱턴 D.C. 인근 자택에서 5개월 동안 다섯 차례 공격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다섯 번째가 가장 끔찍했습니다. 전신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났는데, 마치 바이스(vice·조이개)가 뇌간을 쥐어짜는 것 같은 생애 최악의 고통이었습니다."

마지막 두 차례 공격 때 근처에 있었던 아내 하이디(Heidi)는 "온몸 관절이 극심하게 아프며 잠에서 깼다"고 말했다. 이후 병원 검사에서 어깨뼈가 녹아내리는 '골용해(Osteolysis)'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아야 했다. 크리스는 "우리나라가 게임의 판도가 바뀌었음을 직시해야 할 때"라며 "적대 세력이 이제 미국 본토, 우리 집까지 손을 뻗을 수 있게 됐다"고 경고했다.

스탠퍼드 박사의 경고, 그리고 미 정부의 '은폐'


미 정부의 의뢰로 두 차례(2020년, 2022년) 조사를 이끈 스탠퍼드대 데이비드 렐먼(David Relman) 의학박사는 패널 보고서에서 "가장 타당한 설명은 무선 주파수 또는 마이크로파 에너지 형태의 공격"이라고 결론지었다. 특히 이러한 연구의 압도적 다수가 구소련에서 수행되었으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식 상실, 경련, 기억 장애, 집중력 저하, 두통, 극심한 압박감, 균형 감각 이상 등이 유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하바나 증후군 피해자들이 호소한 증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나 렐먼 박사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미 정부 일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저평가되고 심지어 묻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 일부에 의해 저평가됐냐"는 펠리의 질문에 그는 "절대적으로 그렇다. 저평가를 넘어 기각되거나 은폐된 경우도 있었다"고 답했다.

미 정부, 러시아발 무기 직접 입수…동물 실험서 인체 피해 일치


이번 보도의 가장 충격적인 핵심은 미 정부가 이 무기를 직접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다. '60분'의 4명 이상의 기밀 소식통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러시아 범죄 조직 루트를 통해 이 지향성 에너지 무기(DEW)를 입수했으며, 1년 이상 미 군사 연구소에서 쥐와 양을 대상으로 성능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동물들에게서 하바나 증후군 피해자들과 일치하는 신체 손상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논평을 거부했으며, 18개 정보 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은 하바나 증후군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포괄적이고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며 "진실 규명에 전념한다"고 밝혔다.

한편 질 데 그라나도스와 레이는 9년간의 취재를 집대성한 저서 『하바나 증후군: 비밀 병기, 정부의 은폐, 그리고 우리 시대 최대의 스파이 미스터리(The Havana Syndrome: Secret Weapons, a Government Cover-Up, and the Greatest Spy Mystery of Our Time)』를 펭귄 랜덤 하우스(Penguin Random House)를 통해 오는 10월 출간할 예정이며 현재 예약 판매 중이다.

※ '지향성 에너지 무기(DEW·Directed Energy Weapon)'는 레이저, 마이크로파, 음향 에너지 등을 특정 방향으로 집중 방사해 대상에 피해를 주는 무기 체계를 총칭한다. 비가시성과 원거리 타격 능력으로 인해 차세대 비살상 무기 분야의 핵심 연구 대상으로 꼽히며, 미·러 양국이 관련 연구를 수십 년간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