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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보험 위기] 유조선 멈춘 진짜 이유… '환경 오염 배상' 보험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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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보험 위기] 유조선 멈춘 진짜 이유… '환경 오염 배상' 보험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선체·화물 보험료 6배 치솟아도 가입 가능… 정작 '기름 유출 배상 보험'은 시장 자체가 증발
미 DFC $200억 재보험도 오염 보상 제외… JP모건 "걸프 329척 보험 공백 $3,520억"
한국, 원유 70%·LNG 30% 호르무즈 경유… 봉쇄 장기화 시 에너지 수급 직격탄 불가피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의 선체·화물(hull, machinery, cargo) 보험료가 위기 직전 대비 4~6배 급등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의 선체·화물(hull, machinery, cargo) 보험료가 위기 직전 대비 4~6배 급등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400여 척이 꼼짝 못 하는 이유를 '미사일 공포'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사일은 보험료를 올릴 뿐이지만, 기름 유출 한 건이 발생하면 어떤 보험사도 감당할 수 없는 배상 청구서가 날아온다. 전 세계 해운·보험 시장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포탄이 아니라 해안선을 뒤덮을 검은 기름이다.

CNBC9(현지시각) 글로벌 보험 중개사 마쉬(Marsh)와 하우든 그룹(Howden Group) 자료를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의 선체·화물(hull, machinery, cargo) 보험료가 위기 직전 대비 4~6배 급등했다고 전했다. 돈을 더 내면 선체와 화물 보험은 여전히 가입할 수 있다. 문제는 대형 유조선이 침몰했을 때 발생하는 환경 오염 배상 책임을 떠안아 줄 보험 상품 자체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이란 전쟁 이후 주요 자산 가격 변동 추이 (2026.02.28~03.09).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이란 전쟁 이후 주요 자산 가격 변동 추이 (2026.02.28~03.09). 도표=글로벌이코노믹


'1980년대 유조선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해안 경제


쿠웨이트에서 카타르에 이르는 페르시아만 연안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유조선 전쟁' 당시만 해도 원유 수출 기지에 불과했다. 지금은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 군락, 카타르 도하의 고급 해변 리조트, 아부다비의 관광 특구가 밀집한 세계 최대 규모의 연안 경제 벨트로 탈바꿈했다. CNBC에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한 위험 분석 전문가는 "미국과 달리 이 지역에는 정교한 기름 제거 산업이나 기술 인프라가 부족하다""대형 유조선 침몰 시 관광 산업 중단에 따른 영업 손실을 산정할 데이터조차 금융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배상 상한선을 설정할 수 없는 위험을 인수할 수 없다. '무제한 오염 배상 보험'이라는 상품은 현재 전 세계 보험 시장 어디에서도 거래되지 않는다. 미사일에 맞아 선체가 부서지는 것은 보험료를 올려 관리할 수 있지만, 기름 유출이 수백 킬로미터 해안선을 오염시키면 그 피해액은 사실상 측정 불가능하다.

200억 달러 재보험의 치명적 빈칸… '오염'이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조선 안전을 공언하면서 시장에 일시적 안도감이 퍼졌다. 미 국제개발금융공사(DFC)200억 달러(295100억 원) 규모의 순환형 재보험 시설을 발표하며 민간 보험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 위험을 정부가 떠안겠다고 선언했다. DFC의 벤 블랙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원유, 휘발유, LNG, 항공유, 비료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다시 세계로 흐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대규모 지원책에도 결정적 사각지대가 있다. DFC 재보험은 선체·기계·화물 손실에만 적용되며, 가장 큰 비용이 발생하는 환경 오염 배상은 보장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DFC 측은 CNBC"세부 사항을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규모의 적정성도 논란이다. CBS 뉴스에 따르면 JP모건 에너지 애널리스트들은 현재 페르시아만에서 운항 중인 약 329척의 선박이 오염 배상·구조·선체·3자 책임을 포함해 최대 3520억 달러(519조 원)의 보험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DFC의 법정 리스크 노출 한도가 202512월 기준 2050억 달러(302조 원)인 점을 감안하면, 200억 달러 재보험만으로는 전체 공백의 6%도 채우지 못한다는 계산이다. JP모건 보고서는 "한도 초과 시 의회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고, 이에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완전히 무책임한 분석"이라며 강하게 반박하는 등 워싱턴과 월가 사이에서도 이견이 노출됐다.

9·11 이후 보험 위기의 '바다 위 재현'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20019·11 테러 직후 미국 금융시장이 겪었던 '보험 불능' 상황에 비유한다. 당시에도 민간 보험사들이 테러 위험을 인수할 수 없게 되자 미국 정부가 2002년 테러보험법(TRIA)을 제정해 연방 정부가 최종 보증인 역할을 맡았다. TRIA 모델 아래서는 민간 보험사가 1차 인수를 담당하되, 누적 손실이 2억 달러를 넘으면 연방 정부가 개입하고 이후 보험료 할증을 통해 재원을 회수하는 구조다.

CNBC 보도에 따르면 해운·보험 업계 관계자들은 "환경 오염 위험에 대해서도 TRIA와 유사한 정부 보증 프레임이 마련되지 않으면 페르시아만 물류의 동맥경화는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 신용평가사 모닝스타 DBRS도 별도 보고서에서 "TRIA를 해양 보험에 적용하는 모델이 민간 시장의 가격 결정력을 유지하면서도 공공 노출을 재앙적 손실에 한정시킬 수 있다"고 제언한 바 있다.

3가지 숫자로 읽는 사태의 심각성


이번 위기의 윤곽을 압축하는 핵심 숫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6배이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의 선체·화물 보험료 인상 폭. 전쟁 위험 프리미엄이 선박 가치의 0.2%에서 1%까지 치솟았다.

둘째는 200(295100억 원)이다. DFC가 투입하기로 한 재보험 자금이다. 그러나 JP모건이 추산한 보험 공백인 3520억 달러의 6%에도 미치지 못한다.

셋째는 0이다. 현재 글로벌 보험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무제한 오염 배상 보험' 상품의 수다. 돈을 아무리 내도 살 수 없다. 사안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한국 에너지 안보에 울리는 경고음


이 문제가 태평양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까닭은 한국의 에너지 수입 구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서 들여오며, 이 가운데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LNG 역시 카타르·오만 물량을 합치면 전체 도입량의 약 30%가 이 해협을 경유한다. 에너지 분석 기관 제로 카본 애널리틱스는 에너지 안보 취약도 평가에서 일본(6.4)에 이어 한국(5.3)을 아시아 2위 고위험군으로 분류했다.

보험 시장의 마비가 장기화하면 유조선 운항 재개는 군사적 위협이 해소된 이후에도 추가 지연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비축유 208일치를 내세워 진화에 나섰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와 호주·동남아 LNG 대체 공급선 확보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글로벌 현물 시장에서 대체 물량 확보 경쟁이 격화하면 수입 단가가 평시의 수 배로 뛸 수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경고다.

미사일보다 무서운 배상 청구서


페르시아만의 유조선 운항을 멈춘 것은 결국 무기가 아니라 '종이 한 장', 즉 보험 인수 거부 통지서였다. gCaptain의 분석대로 72시간 만에 세계 최대 해상보험 상호조합(P&I Club)들이 줄줄이 전쟁 위험 보장 연장을 취소하면서 해협 통과 물동량이 80% 넘게 붕괴했다. 미사일은 선박 한 척을 파괴하지만, 오염 배상 불능은 수백 척의 발을 동시에 묶는다.

궁극적으로 정부가 환경 재앙에 대한 최종 보증인 노릇을 하지 않는 한,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불안정은 해소되기 어렵다.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이번 위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비축유와 대체 공급선 확보는 단기 완충재일 뿐, 장기적으로는 에너지원 다변화와 함께 해상 보험 인프라의 구조적 취약성까지 국가 리스크 관리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호르무즈의 교훈은 '전쟁이 끝나도 보험이 돌아오지 않으면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