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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 주재원 연금 내고도 혜택 없다"…LG전자, 대법원 위헌 심판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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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 주재원 연금 내고도 혜택 없다"…LG전자, 대법원 위헌 심판 이끌어냈다

17년간 묶인 EPFO 의무 기여금, 헌법상 평등권 침해 여부 대법원 첫 본심리
삼성·현대차도 촉각 곤두세워…3월 20일 2차 변론, 인도 외국인 투자환경 분수령
인도에서 일하는 한국인 주재원은 현지 근로자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내고도 정작 노후 보장 혜택은 제대로 받지 못한다. 2008년에 생긴 규정 하나가 17년째 이 불균형을 고착시켜 왔다. 그 규정이 마침내 인도 사법부의 최고 심급에 올라섰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인도에서 일하는 한국인 주재원은 현지 근로자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내고도 정작 노후 보장 혜택은 제대로 받지 못한다. 2008년에 생긴 규정 하나가 17년째 이 불균형을 고착시켜 왔다. 그 규정이 마침내 인도 사법부의 최고 심급에 올라섰다. 이미지=제미나이3
인도에서 일하는 한국인 주재원은 현지 근로자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내고도 정작 노후 보장 혜택은 제대로 받지 못한다. 2008년에 생긴 규정 하나가 17년째 이 불균형을 고착시켜 왔다. 그 규정이 마침내 인도 사법부의 최고 심급에 올라섰다. 인도 대법원이 LG전자의 상고를 받아들이면서, 인도 진출 글로벌 기업들을 옥죄어 온 외국인 퇴직연금 의무 부담 문제가 헌법 재판의 무대에 서게 됐다.

LG전자, 델리 고법의 벽을 넘다…대법원 문 열렸다


인도 대법원은 지난 12(현지시간) LG전자 인도법인이 제기한 외국인 파견 근로자(Expatriates) 퇴직연금기구(EPFO) 의무 가입 규정 위헌 소송의 상고를 공식 수리하고 본심리에 착수했다고 인도 경제매체 이코노믹타임스(Economic Times)를 비롯한 현지 언론이 이 사실을 13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단순하다. 동일한 사업장에서 일하면서도 국적에 따라 연금 부담이 달라지는 것이 인도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위반하는가 하는 점이다.

현행 인도법에 따르면, 인도와 사회보장협정(SS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 출신의 외국인 근로자는 급여 수준에 관계없이 전체 임금의 일정 비율을 퇴직연금(EPF) 기여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반면 인도 현지 근로자는 월 급여가 15000루피(24만 원)를 넘으면 의무가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같은 회사 안에서 고소득 현지 직원은 연금 납부를 면제받지만, 외국인은 연봉 수준과 무관하게 기여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LG전자 측은 이 규정이 합리적 근거 없이 과도한 재정 부담을 지우는 차별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수년에 걸쳐 법적 대응을 이어왔다. 앞서 델리 고등법원은 "외국인 근로자의 사회적 보호 확보라는 공익 목적과 국가 간 상호주의 원칙에 비춰 적법한 조치"라는 논리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사건을 직접 들여다보기로 결정하면서, 이 사안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차 변론…정부·EPFO는 어떤 논리를 펼칠까


대법원은 규정의 헌법적 타당성을 따지기 위해 인도 정부와 EPFO에 공식 답변 제출을 요구하는 통지서(Notice)를 발송했다. 오는 20일 열리는 2차 심리에서는 양측의 논거가 본격적으로 맞부딪힐 전망이다.

인도 정부는 그동안 이 제도가 인도 근로자가 해외에서 받는 처우와 연동된 상호주의 장치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즉 상대국이 인도인 근로자에게 연금 혜택을 제공하는 만큼 그 국가 출신 외국인도 인도에서 연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업계의 오랜 주장이다. 인도 연금제도의 연간 수익률은 주요국 공적연금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귀국 후 적립금을 돌려받으려면 지나치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인도 현지 법무법인과 글로벌 인사관리(HR) 컨설팅 업계에서는 "외국인 기여금 환급률이 기대치를 크게 밑돌아 사실상 회수 불가능한 비용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해 왔다. 인도에 주재원을 파견한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이 항목이 '사실상 명목 없는 추가 세금'으로 인식돼 온 이유다.

韓기업에 번지는 파장…삼성·현대차도 이 판결을 기다린다


이번 소송은 LG전자 한 곳의 법정 다툼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인도에 생산기지나 현지법인을 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기아, 포스코 등 한국 주요 대기업은 물론 수천 곳의 다국적 기업 전체가 이 판결의 수혜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한국과 인도는 이미 사회보장협정을 맺고 있지만, 파견 기간이 협정에서 정한 기간을 초과하거나 특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기여금 납부 의무가 다시 발생한다. 장기 주재원을 운용하는 제조업 및 IT 서비스 기업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구조다.

인도 현지 투자 컨설팅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인도의 외국인 투자 유치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정부가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앞세워 글로벌 제조업체 유치에 공을 들이는 상황에서, 정작 현장의 비용 구조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외국인 투자가(FDI)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법원이 LG전자의 손을 들어줄 경우, 기업들은 연간 수억 루피에 달하는 기여금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대로 현행 규정이 합헌으로 확정되면, 외국인 인력 운용 비용은 구조적으로 고착되고 인도 주재원 파견을 재검토하는 흐름도 나타날 수 있다.

헌법적 가치 대 정책 재량, 대법원의 선택은


인도 대법원이 평등권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사회보장 정책에 대한 입법 재량권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느냐는 단순한 노동법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이 결정은 인도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투자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2008년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보였을 이 규정이, 다국적 기업의 인도 상주 인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재의 시각에서 여전히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이번 심리의 본질이다. 오는 202차 변론이 그 답을 향한 첫 번째 분수령이 될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