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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 공포' 현실화… 에너지 공급망 대안 부재에 세계 경제 '사상 최악'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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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 공포' 현실화… 에너지 공급망 대안 부재에 세계 경제 '사상 최악' 위기

우회 배관망 가동률 높였으나 전체 물동량 25% 불과… '에너지 동맥경화' 심화
국제 유가 100달러 돌파, 산유국 감산 규모 하루 1000만 배럴 육박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 위기에 직면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3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초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 위기에 직면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3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초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 위기에 직면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3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초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중동 분쟁의 여파로 해협을 통과하는 물동량이 기존 대비 10% 미만으로 급감하자, 원유 수급에 차질을 빚은 주요 산유국들은 하루 약 1000만 배럴(전 세계 공급량의 10%) 수준의 강제 감산에 들어갔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인접 산유국들이 구축한 우회 수송로가 전체 물동량의 약 25%만을 소화하고 있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단은 전무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사태는 국제 유가가 4년 만에 배럴당 100달러(약 14만9900원)를 돌파하는 등 인플레이션 공포를 다시 정조준하고 있다.

우회로 확보의 한계… ‘언발에 오줌 누기’식 배관망 가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하자 산유국들은 해협을 우회하는 육상 배관망 가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에너지 기업인 아람코(Aramco)는 홍해로 연결되는 '동서 횡단 배관(East-West Pipeline)'의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아민 나세르(Amin H. Nasser)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 위기에 대응해 즉각 동서 배관 수송을 확대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배관의 수송 능력은 하루 700만 배럴로, 사우디 내수용 200만 배럴을 제외하면 실제 수출 가능량은 하루 500만 배럴 수준이다. 이는 평시 해협을 통과하던 물동량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UAE 역시 아부다비에서 푸자이라 항구로 이어지는 우회 배관을 가동 중이나, 이 역시 이란의 공격 사정권 내에 있어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리서치 업체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는 이라크와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이 이미 하루 수백만 배럴씩 증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적 결속 부재와 지형적 고립… 천연가스 공급망의 ‘아킬레스건’


원유보다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분야는 액화천연가스(LNG)다. 세계 최대 가스 수출국인 카타르는 지형적으로 페르시아만에 갇힌 구조로, 호르무즈 해협 외에는 출구가 없다.

유일한 육상 접경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는 과거 외교 단절 등 정치적 앙금이 남아 있어 공동 배관 건설이 진척되지 못했다.

과거 10년 넘게 논의된 걸프협력회의(GCC) 차원의 통합 철도나 에너지 수송망 구축도 산유국 간의 주도권 다툼과 경제적 이해관계 탓에 무용지물이 됐다.

이로 인해 카타르는 전쟁 초기부터 가스 선적을 전면 중단했으며, 이는 유럽과 아시아의 동절기 에너지 수급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존 브라운(John Browne) 전 BP CEO는 "완벽하게 안전한 에너지 인프라는 존재하지 않으며, 악의를 가진 세력의 공격 앞에 모든 대안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미 군사 패권의 균열과 공급망 재편의 과제


이번 사태는 ‘미국이 해군력을 동원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시장의 오랜 믿음을 무너뜨렸다.

에너지 역사학자인 다니엘 예르긴(Daniel Yergin) S&P 글로벌 부의장은 이를 "소비국이 원유를 보호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진 악몽의 시나리오"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이란의 핵심 석유 허브인 하르그섬(Kharg Island)을 타격하며 직접 교전 당사자가 됨에 따라, 민간 유조선의 안전 통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처지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간에 종료되더라도 세계 에너지 지형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에너지 관련 학계의 한 교수는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이상, 글로벌 기업들은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에너지 공급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시설 파손과 생산 중단 여파로 인해 분쟁 종료 후에도 정상화까지 최소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경고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