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에너지 충격에 따른 유럽 경제의 복합 위기 노출
역대급 부채와 고금리로 인한 정부 재정 방어력 고갈
고유가 지속 시 주요국 경기 침체 및 산업 공동화 가속
역대급 부채와 고금리로 인한 정부 재정 방어력 고갈
고유가 지속 시 주요국 경기 침체 및 산업 공동화 가속
이미지 확대보기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물가·고금리·고부채'라는 삼중고에 신음하던 유럽 경제의 급소를 정조준하고 있다.
가뜩이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늪에서 허덕이던 유럽 대륙에 이란 전쟁발 에너지 쇼크가 덮치면서, 과거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인 경제적 후폭풍이 예견된다.
이번 위기는 단순히 에너지 가격의 상승을 넘어 유럽 주요국의 재정적 가용 수단이 완전히 고갈된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특히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François Villeroy de Galhau)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1일(현지시각)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차원의 구제책을 내놓고 싶어도 이제는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없다"라고 토로하며 유럽 경제의 민낯을 드러냈다.
'실탄' 고갈된 유럽 재정… 150달러 유가 시 글로벌 대공황 재연 우려
현재 유럽 경제를 압박하는 가장 큰 하방 요인은 '방어벽 부재'다. 4년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만 해도 유럽은 팬데믹 부양책으로 축적된 여유 자금과 낮은 대출 금리를 토대로 보조금을 쏟아부어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프랑스와 영국의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경신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권의 데이터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부채비율은 GDP 대비 134.9%에 달하며, 프랑스 역시 113.2%라는 전례 없는 수치를 기록 중이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5달러에서 150달러까지 치솟는 극단적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전 세계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능가하는 '글로벌 리세션(경기 침체)'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경우, 유가 급등 시 내년 경제 성장률이 0.5%포인트 이상 급락하며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 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분석된다.
제조업 붕괴 가시화… 에너지 원가 폭등에 '탈유럽' 행렬 가속
에너지 비용의 수직 상승은 유럽 제조업의 근간인 화학과 기계 산업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각) "전쟁 발발 후 불과 열흘 만에 유럽이 지불한 화석 연료 수입 추가 비용만 30억 유로(약 5조 1300억 원)에 달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고스란히 기업들의 생산 원가 부담으로 전이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대표적 비료 제조사인 SKW 피스테리츠와 농기계 업체 클라스(Claas) 등은 원료인 천연가스와 물류비 폭등으로 인해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얀 헨드릭 모르 클라스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와 비료 값 상승은 결국 농가 수익성을 악화시켜 식탁 물가 폭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가 경쟁력을 잃은 에너지 집약 기업들이 공장을 닫고 미국이나 중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는 '산업 공동화'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유럽의 고용 시장마저 위태로운 처지다.
금리 인하 꿈버린 중앙은행… 한국 수출 전선에도 '경고등’
유가 폭등이 촉발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은행(BOE)의 금리 인하 경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앤드루 위샤트 베렌버그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감은 이미 자취를 감췄으며, 오히려 에너지발 임금 상승이 가시화될 경우 추가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할 처지"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유럽의 경기 침체는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악재다. 유럽은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 중 하나로, 유럽 내 소비 위축과 제조업 가동률 저하는 자동차, 가전 등 우리 주력 품목의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유럽의 경기 하강과 고유가가 맞물릴 경우 한국의 무역수지 악화와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동시에 거세질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기민한 에너지 수급 대책과 수출 다변화 전략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럽은 재정적 실탄이 떨어진 상태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 쇼크를 맞이했다. 자력 갱생이 불가능한 구조적 모순에 빠진 유럽 경제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경제 전체의 장기 저성장을 초래하는 '약한 고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