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인력·디지털화 삼중 실패…다이도·이토엔 연속 적자에 2만 대 철거 선언
2050년 100만 대로 반 토막 전망, 편의점·PB상품에 소비자 완전히 등 돌려
2050년 100만 대로 반 토막 전망, 편의점·PB상품에 소비자 완전히 등 돌려
이미지 확대보기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6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세계 최고 자판기 밀도를 자랑하던 일본에서 1985년 전성기 대비 65만7000대가 줄었고,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50년에는 지금의 절반인 100만 대 수준으로 쪼그라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물가 상승과 만성 인력난, 디지털 전환 실패가 동시에 덮치면서 수십 년간 일본 소비 문화를 상징했던 이 인프라가 수익 모델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
3년 연속 물가상승이 끊어버린 소비자와 자판기의 인연
자판기 산업 붕괴의 첫 번째 방아쇠는 가격 경쟁력 상실이다.
세계은행과 일본 총무성 통계국 자료를 보면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약 2.5%, 2023년 3.3%, 2024년 2.7%로, 일본은행(BOJ) 목표치인 연 2%를 3년 연속 웃돌았다. 2021년까지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을 오가던 나라에서 이 변화는 수십 년간 굳어진 소비 습관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FT에 따르면 유명 브랜드 캔 커피나 페트병 음료를 인근 편의점(콘비니)에서 사면 자판기보다 최대 20% 저렴하다. 여기에 편의점이 직접 내리는 원두커피, 슈퍼와 드럭스토어의 자체 브랜드(PB) 할인 음료까지 가세했다.
도쿄 소재 음료 조사기관 인료소켄(Inryo Souken) 집계에 따르면 자판기 음료 판매량은 1997년 연간 7200만 상자에서 2024년 4200만 상자로 추락했다. 27년 사이 42%가 증발한 셈이다.
업계 실적도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3위 자판기 운영업체 다이도(DyDo)는 역대 최대 연간 손실을 기록한 뒤 전체 27만 대 가운데 약 7.5%인 2만 대를 철거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카마쓰 도미야 다이도 회장은 "사업 환경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며 "손실 확대를 막는 것이 지금 가장 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 최대 녹차 음료 기업 이토엔(Itoen)도 136억 엔(약 1280억 원) 규모의 자산 손상 처리를 받아들였다.
'자동화의 역설'…60%는 아직도 현금만 받는다
가격 문제보다 더 구조적인 균열이 있다. '자동' 판매기가 실제로는 사람에게 깊이 기대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자판기는 정기적으로 음료를 채울 인력이 반드시 필요한데, 일본은 현재 만성적인 트럭 운전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음료 보충 담당자는 하루 평균 30대가량을 맡아 무거운 상자를 계단이나 오르막길로 직접 날라야 한다. 일본트럭협회에 따르면 인력난 여파로 2024년 운전사 임금은 전년 대비 7.1% 올랐다. 갈수록 얇아지는 운영 마진을 다시 한번 갉아먹는 구조다.
독립 유통 애널리스트 나카이 아키히토는 "자동화된 것은 판매 단계뿐이고, 어떤 상품이 팔렸는지 직원이 직접 확인하러 가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판매 정보와 재고 관리가 제대로 디지털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FT도 "자판기는 일본이 노동력 부족을 기술로 해결하는 속도가 얼마나 더딘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일본음료종합연구소는 2024년 자판기 한 대당 판매량이 2013년 대비 13% 줄었다고 밝혔다. 자판기의 약 60%가 여전히 현금 결제만 지원하고 있어, 간편결제(QR코드·IC카드) 확산이라는 시대 흐름과도 역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심 오피스에서 마지막 불씨, 지방은 퇴출 수순
궁지에 몰린 업계도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다. 산토리(Suntory)와 아사히소프트드링크스(Asahi Soft Drinks) 등은 기계 수 확장 대신, 수익성 높은 도심 거점에 대형기기를 집중 배치해 보충 횟수를 줄이고 운영비를 낮추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일부 기업들은 오피스 빌딩 자판기에 디지털 관리 시스템을 얹어 수익 개선을 꾀하고 있다.
틈새시장에서는 새로운 가능성도 감지된다. 산덴리테일시스템(Sanden Retail System)이 영하 25도까지 냉각 가능한 냉동식품 자판기를 선보여 와규·교자·아이스크림 판매에 나섰고, 일본자동판매시스템공업회에 따르면 식품 자판기는 2024년 말 기준 8만1200대로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무인 판매 플랫폼으로서의 진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카이 애널리스트는 "판매가 이미 줄어드는 상황에서 추가 투자를 단행할 수 있겠느냐가 업계의 핵심 갈림길"이라고 말했다. 생존 공간은 고소득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 거점으로 좁아지고, 외곽과 농촌에서의 철수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일본 자판기 산업의 퇴조는 한 나라 유통 채널의 쇠락으로만 볼 수 없다. 편의점·배달 앱·대형 마트가 소비자 가격 주도권을 쥐어가는 흐름은 아시아 유통 시장 전반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다.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인프라를 얼마나 빨리 알아채느냐가 다음 시장 승자를 가를 것이라는 경고음으로 읽힌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