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IP 강자 ARM, 'AGI CPU' 출시로 칩 제조 시장 전격 진입
메타 첫 고객 확보·TSMC 위탁생산… SK하이닉스·삼성 HBM 수요 폭증 예고
메타 첫 고객 확보·TSMC 위탁생산… SK하이닉스·삼성 HBM 수요 폭증 예고
이미지 확대보기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 홀딩스가 그동안의 기술 라이선스 판매 모델을 넘어 자체 AI 중앙처리장치(CPU)를 직접 제조·판매하는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 블룸버그는 24일(현지시각) ARM이 'AGI CPU'라는 이름의 자체 칩 판매에 나서며 AI 인프라 시장의 폭발적 지출을 선점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이미지 확대보기136코어·300W… 'AGI CPU' 스펙 공개
ARM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최대 136개 코어를 탑재하고 300와트(W)의 전력을 소모하는 'AGI CPU'를 공개했다. 첫 번째 주요 고객은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Meta Platforms)로 확정됐으며, 위탁생산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가 맡는다.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는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매력적일 뿐 아니라, 실제 구매를 위해 줄을 서는 고객들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오픈AI(OpenAI), 세레브라스(Cerebras), SK텔레콤도 해당 칩을 인프라에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버 업체 콴타컴퓨터와 슈퍼마이크로컴퓨터를 통해 2026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장 공급이 이뤄질 예정이다.
"전력 효율이 승부처"… x86 진영에 선전포고
ARM의 이번 행보는 인텔과 AMD가 수십 년간 장악해온 x86 아키텍처 기반 데이터센터 시장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하스 CEO는 자사 설계가 인텔·AMD 제품 대비 전력 효율성에서 확연한 우위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의 30~40%가 전기료인 현실에서, 같은 전력 예산으로 더 높은 연산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은 결정적 차별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추론(인퍼런스) 워크로드가 급증하면서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 와트당 성능 지표를 핵심 구매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면서 "ARM 아키텍처의 저전력 강점이 모바일에서 서버로 이식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ARM이 기존 고객사들과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메타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이미 ARM 기술을 라이선스해 자체 칩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의 산토시 자나르단 인프라 담당 부사장은 "ARM과 협력해 데이터센터 성능 밀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컴퓨팅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밝혀, 자체 개발 프로그램과 ARM 칩 도입을 병행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이익률 98%… 수익 구조의 질적 도약 노린다
ARM의 지난 분기 매출총이익률은 98%에 달한다. AI 가속기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Nvidia)의 이익률이 70%대 중반인 점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그러나 전체 매출 규모는 엔비디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용 칩 라이선스는 개당 수십 달러 수준인 반면,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반도체는 개당 수만 달러에 거래된다. 업계에서는 ARM의 칩 직판 전략이 압도적 이익률을 유지하면서도 절대 매출 규모를 키우는 '두 마리 토끼 잡기'라고 평가한다.
삼성·SK하이닉스, HBM 수주전 불 붙는다
'AGI CPU' 시장 진입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도 직접 파장을 미친다. 136코어 CPU가 풀 성능을 발휘하려면 대용량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필수다. ARM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가운데 어느 쪽 HBM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양사의 하반기 실적 향방이 갈릴 수 있다.
반도체 시장 조사기관에 따르면, AI 서버용 HBM 수요는 2025년 대비 2026년에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H100 시리즈에 HBM3E를 독점 공급하며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고, 삼성전자는 HBM3E 8단 및 12단 제품에 대한 엔비디아 품질 검증(Qual Test)을 통과하여 납품을 시작했다. 현재는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AMD 등 주요 빅테크 기업으로의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빅픽처'… AI 생태계 수직 통합 포석
ARM의 대주주인 소프트뱅크 그룹이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과 맞물려, 이번 칩 직판 전략은 소프트뱅크 주도의 AI 생태계 수직 통합 구상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설계(ARM) → 생산(TSMC) → 운영(소프트뱅크 계열 데이터센터)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전문가는 "과거 인텔이 설계와 제조를 모두 장악하며 PC 시대를 지배했다면, ARM은 설계 역량과 파운드리 협력을 통해 AI 서버 시대의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것"이라며 "x86 중심의 데이터센터 패러다임이 ARM 기반 고효율 AI 서버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30년간 설계도만 팔아온 ARM이 직접 총을 든 것은 단순한 전략 변화가 아니다. AI 인프라에 쏟아지는 천문학적 투자를 더 이상 라이선스료라는 간접 수혜에만 맡겨두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인텔과 AMD가 지켜온 데이터센터 왕좌에 도전장이 던져진 이상, 반도체 지형도는 돌이킬 수 없는 변곡점을 맞았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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