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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호르무즈 ‘통행세 29억’ 공식화… 3200척 고립에 물류대란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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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호르무즈 ‘통행세 29억’ 공식화… 3200척 고립에 물류대란 비상

FT "비적대 선박만 통행 허용" IMO 통보… 사실상 해협 봉쇄로 ‘에너지 안보’ 정조준
‘포스트 달러’ 노린 해상 질서 재편 시도… 원유 수송 20% 묶여 글로벌 공급망 ‘초비상’
이란 외무부는 최근 국제해사기구(IMO) 회원국에 서한을 보내 비적대적 선박에 한해 이란 당국과 사전에 협조할 경우에만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겠다라고 공식 통보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이란 외무부는 최근 국제해사기구(IMO) 회원국에 서한을 보내 "비적대적 선박에 한해 이란 당국과 사전에 협조할 경우에만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겠다"라고 공식 통보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페르시아만 입구에서 보름째 대기 중인 30만 톤급 유조선 A호의 선장은 매일 아침 이란 당국의 통과 허가신호만을 기다린다. 인근 해상에는 A호와 처지가 비슷한 선박 3200여 척이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하며 멈춰 서 있다. 단순히 전쟁의 공포 때문이 아니다. 이란이 세계 에너지의 젖줄인 호르무즈 해협에 자국 승인제라는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국제 물류 질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마비 상태에 빠졌다.

25(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를 보면, 이란 외무부는 최근 국제해사기구(IMO) 회원국에 서한을 보내 "비적대적 선박에 한해 이란 당국과 사전에 협조할 경우에만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겠다"라고 공식 통보했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란이 이 요충지의 통제권을 국제법적 무기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노골화한 것이다.

해협 폭 39km초크포인트정조준… 22척 피격에 물류비 폭등


이란이 IMO에 전달한 서한의 핵심은 '차별적 통행권'이다. 이란은 "침략자와 그 조력자들이 해협을 이용해 이란에 적대적인 작전을 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비례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 관련 선박은 국제 해상법상 보장되는 '무해통항(Innocent Passage, 선박이 연안국의 평화와 안전을 해치지 않고 자유롭게 지나는 권리)'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현재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 폭은 약 39km에 불과해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사정권 내에 완전히 들어와 있다. 분쟁 이후 이미 22척의 선박이 이란의 공격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약 3200척의 선박이 페르시아만 내부에 고립됐다. UN 산하 IMO는 지난주 긴급회의를 열고 보급품이 바닥난 선박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통로' 개설을 논의 중이지만, 이란의 협조 없이는 실현이 불확실하다.

안전 보장 명목 ‘26억 원요구… 달러 패권흔드는 이란의 노림수


이란은 통행 허가를 빌미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도 챙기고 있다.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Lloyd’s List Intelligence)와 해운업계에 따르면, 일부 선박은 안전한 통행을 보장받는 대가로 이란 측에 최대 200만 달러(299500만 원)에 이르는 거액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의 해상 통행세를 징수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 우려되는 대목은 이란이 이번 사태를 해상 질서 재편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란 의회의 만수르 알리마르다니(Mansour Alimardani) 의원은 메흐르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규제하는 새로운 법안을 준비 중"이라며 "전쟁이 끝나더라도 과거와 같은 자유로운 통행 상황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란의 이러한 움직임이 해상 운송 결제 대금을 달러 대신 대안 화폐로 전환하려는 '달러 패권 흔들기'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란이 에너지 공급망의 주도권을 쥐고 서방의 경제 제재를 무력화하려는 장기 포석을 두고 있다"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물류 덮친 호르무즈 쇼크…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속화


전문가들은 이번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석유 수송량의 20%가 이 좁은 해협을 지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이 상시화될 경우 국제 유가의 하방 경직성이 강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전 세계 제조 원가 상승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한다. 또한,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선박들이 희망봉으로 우회할 경우 운송 기간이 2주 이상 늘어나고 유류비 부담이 가중되어 결국 최종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전이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란의 해협 통제권 공식화는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에도 이란이 '기뢰 매설''통행료 징수'라는 강경책을 고수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은 역대 최고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가 인도주의적 통로 확보를 넘어 해상 통행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외교적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호르무즈발 경제 충격'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