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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I, '피지컬 AI'로 140년 조선소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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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I, '피지컬 AI'로 140년 조선소 바꾼다

'1만 가지 작업을 한 번씩'…AI가 군함 조선의 불가능을 푸는 방식
트럼프 MAP 연계 건조량 14% 급증…2026년 15% 추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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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군함 건조사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즈(HII)가 피지컬 AI(Physical AI)와 자동화를 앞세워 140년 역사의 조선소 혁신 청사진을 내놨다.

HII 에릭 추잉(Eric Chewning) 해양시스템 겸 기업전략 담당 부사장은 24일(현지 시각) 워 온 더 록스(War on the Rocks)와의 심층 인터뷰에서 "2025년 조선소 생산처리량이 14% 증가했으며, 2026년에는 추가로 15%를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수치는 HII의 공식 발표와 교차 확인됐다. 추잉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해양 행동계획(MAP·Maritime Action Plan)이 자사의 재산업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같은 작업 1만 번"이 아니라 "다른 작업 1만 번"…조선 AI의 딜레마


추잉은 조선업이 다른 제조업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자동차 공장에서는 로봇 한 대가 같은 작업을 1만 번 한다. 조선소에서는 다른 작업을 1만 번 해야 한다."

자동차·항공기처럼 수천~수십만 대 단위로 표준화된 산업에서는 AI와 자동화가 폭발적인 효과를 냈다. 그러나 군함 건조는 버지니아급 잠수함 한 척마다 설계 변경이 수반되고, 구조물 형상과 용접 조건이 매 작업마다 달라 기존 반복 학습형 AI로는 효과를 내기 어려웠다.

HII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패스 로보틱스(Path Robotics)와 손잡았다.

HII 공식 발표에 따르면 두 회사는 지난 2월 17일 피지컬 AI 기반 용접 자동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패스 로보틱스의 '오브시디언™(Obsidian™)' 모델은 산업용 로봇 팔에 실시간 인지·판단 능력을 부여해, 용접 환경이 매번 달라져도 즉각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패스 로보틱스 앤디 론스버리(Andy Lonsberry) CEO는 "용접은 모든 산업 중 자동화가 가장 어려운 공정이며, 조선업에서는 그 난도가 더 높다. 피지컬 AI는 정확히 이 도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C3 AI와의 협력은 더 높은 수준에서 진행 중이다.

추잉은 머신숍 일정 최적화 파일럿 프로젝트에서 하향식 지시 대신 '자발적 채택(voluntary adoption)' 모델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팀에 C3 AI의 일정 최적화 도구를 "써보라"는 제안만 한 뒤 수 주를 기다렸더니, 실험 팀의 성과가 나타나자 다른 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치를 증명하고 조직 내부에서 수요를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HII의 로뮬루스(ROMULUS) 무인수상함(USV)에는 쉴드 AI(Shield AI), 어플라이드 인튜이션(Applied Intuition), C3 AI가 공동 참여하고 있으며, 쉴드 AI의 '하이브마인드(Hivemind)' 자율 소프트웨어와 HII의 '오디세이(Odyssey)' 시스템 통합도 추진 중이다.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즈의 생산처리량 증대 5대 전략. 인포그래픽=글로벌이코노믹/구글 제미나이이미지 확대보기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즈의 생산처리량 증대 5대 전략. 인포그래픽=글로벌이코노믹/구글 제미나이


MAP·중국 경쟁·숙련 노동 위기…정책이 뒷받침해야 할 이유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4월 9일 행정명령 14269호 '미국 해양 패권 회복(Restoring America’s Maritime Dominance)'을 서명했고, 2026년 2월 13일 이를 구체화한 해양 행동계획(MAP)을 발표했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MAP는 미국 내 400피트(약 122m) 이상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단 8곳뿐이며, 신규 상선의 1% 미만이 미국에서 건조된다는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홀랜드앤드나이트(Holland & Knight) 분석에 따르면 MAP는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구상하며, 해양 안보 신탁기금 조성, 부두 현대화, 자율선박 기술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추잉이 지적한 시스템 단절 문제도 MAP의 해결 대상이다. HII의 머신숍 하나만 봐도 부품 데이터, 품질 기록, 공급망 시스템이 제각각 다른 언어로 작동한다.

AI가 부품 지연이 중요 경로(critical path)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려면 이 시스템 간 연결이 필요하다.

HII는 C3 AI와 함께 '디지털 실(digital thread)'을 구축하고 있으며, MAP도 디지털 조선소 전환과 정보 공유를 주요 지원 대상으로 포함했다.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MAP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지만, 수십 년간 누적된 투자 공백을 메우려면 지속적인 정치·산업 의지가 필수"라고 평가했다.

추잉은 인터뷰 말미에서 공직과 컨설팅 시절에는 깨닫지 못했던 현실을 회고했다. "숙련 기능 인력에 대한 저투자 문제를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제조 현장에 와서야 몸으로 느꼈다."

HII는 뉴포트뉴스(Newport News)와 파스카굴라(Pascagoula)의 두 핵심 조선소에서, 1919년 이후 이어진 견습학교(Apprentice School)를 통해 19개 조선 직종에서 4~5년 과정을 운영 중이다.

2025년에 6600명을 신규 채용했으며, 2026년에도 동일 규모 이상을 채용할 계획이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더라도, 용접공·배관공·기계공 같은 숙련 기능인은 대체 불가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