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연구팀, DNA로 만든 초소형 로봇으로 암세포만 정조준하는 설계 전략 공개
브라운 운동·인프라 부족 등 상용화 과제 산적…중국·미국 원천기술 선점 경쟁 가열
브라운 운동·인프라 부족 등 상용화 과제 산적…중국·미국 원천기술 선점 경쟁 가열
이미지 확대보기DNA를 건축 소재 삼아 혈관 속을 이동하며 암세포만 골라 약물을 투여하는 나노로봇 기술이 구체적인 설계 청사진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시장은 2031년 126억 달러(약 19조 원) 규모로 불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중국과 미국이 원천기술 선점 경쟁을 가속하고 있다.
폴란드 기술·과학 매체 'WP 테크(WP Tech·tech.wp.pl)'는 지난 25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중국 베이징대 연구팀이 DNA로 제작한 나노로봇의 설계 원리와 의료 응용 가능성을 담은 논문이 국제 학술지 '스마트봇(SmartBot)'에 게재됐다고 전했다.
DNA가 '건축 소재'로…종이접기 기법으로 혈관 누빈다
연구팀이 정조준한 핵심 발상은 DNA를 유전정보 저장 매체가 아닌 구조물 재료로 쓰는 것이다. DNA 가닥은 특정 염기 서열에 따라 정해진 상대와만 결합하는 성질을 갖는다. 연구팀은 이 성질을 이용해 원하는 모양으로 접히고, 구부러지고, 움직이는 초소형 기계를 설계했다.
구조 설계에는 대형 로봇공학에서 쓰는 원리가 그대로 적용됐다. 일부 나노로봇은 뼈대 안정성을 위해 딱딱한 관절 구조를 택하고, 다른 것들은 종이접기(오리가미)에서 착안한 접이식 설계로 좁은 혈관 안에서도 형태를 바꾸며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로봇의 움직임은 'DNA 가닥 치환(strand displacement)'이라는 생화학 기법으로 제어한다. 미리 설계된 DNA 가닥이 '연료'와 '구조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맡아 순서대로 반응하면서 특정 동작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전기장·자기장·빛 같은 외부 자극도 보조 제어 수단으로 활용된다.
연구팀은 SARS-CoV-2 바이러스를 포획하는 DNA 장치도 탐구했다고 밝혔다. 의학 이외에도 나노미터 이하의 정밀도로 나노입자를 배치해 분자 컴퓨터나 광학 장치 제조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19조 원 시장' 놓고 글로벌 각축…한국은 어디에
에스엔에스 인사이더(SNS Insider)는 나노로봇 전체 시장이 2022년 74억 6000만 달러(약 11조 원)에서 2030년 175억 6000만 달러(약 26조 원)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치고 나오고 있다. 이번 논문을 낸 베이징대 팀 외에도, 2023년에는 뉴욕대와 중국 닝보대 공동 연구팀이 자기 복제 기능을 갖춘 DNA 기반 나노로봇을 선보였다.
미국도 맞불을 놓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와 중국과학원 국립나노과학기술센터 연구진은 암에 걸린 생쥐 혈관에 나노로봇을 투입해 종양 크기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가 소개했다.
한국도 개별 성과를 내고 있다. 성균관대 박재형 교수 연구팀은 초음파 원격제어로 나노로봇을 조종해 종양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해 국제 학술지 '나노 레터스(Nano Letters)'에 게재했다.
박 교수는 "이 연구는 외과적 수술이나 항암제 없이 인체에 무해한 초음파로 나노로봇을 원격제어해 암을 치료하는 기술로 종양 치료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라며 "동물실험에도 성공해 나노로봇의 체내 독성에 대한 후속 연구가 이뤄진다면 임상에도 곧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DNA 나노로봇 원천기술 분야에서는 중국·미국과의 규모 격차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브라운 운동이라는 벽…"AI 시뮬레이션·표준 부품 라이브러리 갖춰야“
기술적 장벽도 만만치 않다. 나노 세계를 지배하는 브라운 운동, 즉 액체나 기체 속에 떠 있는 작은 입자가 주변 분자들에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현상이 정밀 제어를 어렵게 만든다.
현재 대부분의 DNA 로봇은 기능이 제한된 개념 증명 수준에 머물러 있고, DNA 기계 특성 데이터베이스나 정밀 시뮬레이션 도구 같은 인프라도 부족한 실정이다.
연구팀은 돌파구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DNA 표준 부품 라이브러리 구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고도화, 그리고 생산 공정 개선이다. 논문에서 연구팀은 "미래의 로봇은 금속과 플라스틱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래밍 가능하고 지능을 갖춘 도구로 분자 세계를 마침내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노로봇이 실험실 밖으로 나오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 연구 현장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중국·미국·유럽이 이 분야에 쏟아붓는 투자 규모를 고려하면, 상용화 시점보다 원천기술 선점 경쟁이 더 먼저 결판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