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대란에 원화 가치 급락, 코스피 시총 하루 만에 ○○조 증발
구글 ‘터보퀀트’ 공습, HBM ‘다다익선’ 믿음 깨나… 삼성·SK ‘비상’
밸류업 정책 기대감 속 유가·환율·기술 검증 ‘3대 변수’가 반등 관건
구글 ‘터보퀀트’ 공습, HBM ‘다다익선’ 믿음 깨나… 삼성·SK ‘비상’
밸류업 정책 기대감 속 유가·환율·기술 검증 ‘3대 변수’가 반등 관건
이미지 확대보기최근 배런스를 보면, 지난 2월 27일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아파트 매각 대금을 증시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며 분위기를 띄웠으나, 바로 다음 날 단행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찬물을 끼얹었다. 실제로 iShares MSCI 한국 상장지수펀드(ETF)는 단 하루 만에 17% 폭락하며 지난 1년간의 상승분을 대거 반납했다.
에너지·환율 ‘이중고’… 국채 수익률 상승에 재정 부담 가중
이란 전쟁 발발로 페르시아만의 긴장이 고조되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교역 조건’은 급격히 악화했다. 제이슨 루이 BNP 파리바 아시아 태평양 주식 전략 책임자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선 것은 합리적 조치"라며, 특히 달러 대비 유로화가 6% 폭락하는 등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의 지난해 석유 및 가스 수입액은 국내총생산(GDP)의 5%를 상회한다. 정부는 충격 완화를 위해 GDP의 1% 수준인 170억 달러(약 25조 6000억 원) 규모의 긴급 예산을 편성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제임스 림 달튼 인베스트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재정 지출 확대 우려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지난 2월 28일 이후 0.31%포인트 상승했다"며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음을 시사했다.
구글 ‘터보퀀트’의 역습… HBM ‘용량 경쟁’에서 ‘효율 경쟁’으로
더 큰 충격은 서학 개미와 동학 개미 모두가 신봉하던 ‘AI 메모리 불패론’에서 터졌다. 구글 자회사 연구진이 발표한 ‘터보퀀트(TurboQuant)’ 기술은 AI 연산에 필요한 메모리 사용량을 기존의 6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더 많은 HBM을 쌓아야 한다’는 기존 패러다임을 ‘적은 메모리로 효율적 연산을 구현하는 구조’로 바꿀 수 있는 파괴적 변수다. 이는 단순한 메모리 수요 감소가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투자 구조 자체를 ‘고용량 메모리 중심’에서 ‘연산 효율 중심’으로 바꿀 수 있는 변수로 평가된다.
이 소식에 미국 마이크론 주가는 3월 중순 고점 대비 20% 하락했고, 한국 시총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직격탄을 맞았다. 다만, 길 루리아 DA 데이비슨 기술 연구 책임자는 "구글의 논문이 타당성은 있으나 실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향후 3년간은 생산되는 모든 메모리가 필요할 만큼 수요가 탄탄하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HBM 피크아웃(정점 통과)’ 가능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밸류업’만으론 부족…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3대 체크포인트
한국 정부는 배당세 인하와 부실기업 가치 제고 계획 강제 등 ‘기업 밸류업’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임스 림 매니저는 상장 기업의 60%가 장부가치 이하로 거래되는 저평가 상황을 기회로 보면서도, "추가 투자를 서두르지 않고 10% 정도 더 하락하면 매수 의향이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향후 한국 증시의 회복 향방을 결정지을 핵심 요소로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부터 기술적 변수, 정책적 실효성까지 얽힌 복합적인 과제들이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유가와 환율의 안정이 최우선 과제다. 이란 전쟁의 향방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부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변수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가 급등이 달러 인덱스 상승과 맞물릴 경우 원화 가치의 하방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이로 인한 외국인 자금 유출을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분석한다. 파급력이 가장 큰 만큼 실시간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시장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중기적으로는 구글이 쏘아 올린 '터보퀀트' 기술의 실질적인 상용화 여부가 관건이다. AI 메모리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이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될 경우, 그동안 '다다익선'으로 통용되던 고대역폭 메모리(HBM) 주문량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HBM이 용량 경쟁에서 효율 경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차세대 HBM4 시장에서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증명하며 주가 재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 즉 '밸류업' 정책의 실효성이 증시의 기초 체력을 결정할 전망이다. 단순히 배당 소득세 인하 등 세제 혜택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기업 가치 제고가 외국인의 지속적인 순매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정부 정책이 단기 부양책을 넘어 장기적인 투자 매력을 확보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분수령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K-증시는 이러한 삼중 변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기세 회복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하락이 단순한 조정인지, 아니면 구조적 하락의 시작인지 확인하기 위해선 ① 엔비디아 등 빅테크의 설비투자(CAPEX) 유지 여부, ② 원/달러 환율 1400원선 사수, ③ HBM4 시장 주도권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고르 티신 IBT 캐피털 CEO는 특히 "SK하이닉스가 HBM4 시장의 지배적 위치를 수성할지가 주가 재평가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시장은 이 세 가지 변수의 교차점 위에 있다. 중동의 포성과 구글의 기술적 공습이 잦아들 때까지 K-증시는 변동성 장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