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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수출 114억 달러…세계 2위 도약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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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수출 114억 달러…세계 2위 도약한 이유

한류 문화가 화장품 수요 창출…미국 수출 1위·프랑스 추월
이재명 정부 '소프트파워 5대 강국' 선언…관세 협상이 변수
화장품 한 통이 첨단 반도체나 완성차보다 더 강력한 '국가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어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화장품 한 통이 첨단 반도체나 완성차보다 더 강력한 '국가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어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발(發) 관세 충격파가 한국 수출 전선을 흔드는 가운데 전혀 다른 전선에서는 조용히 외교적 성과가 쌓이고 있다. 화장품 한 통이 첨단 반도체나 완성차보다 더 강력한 '국가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어주고 있어서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지난 4일(현지 시각) 'K-뷰티 성공 이면엔 소프트파워 전략이 있다'는 심층 분석 기사를 보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 규모는 전년 대비 12.3% 늘어난 114억 달러(약 17조1540억 원), 연간 기준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K-뷰티 삼각 편대'…문화가 소비를 끌고, 소비가 외교를 만든다


한국 화장품 수출의 급등을 단순히 '좋은 제품이 잘 팔린 것'으로 읽으면 반만 맞다. 업계에서는 K-뷰티의 팽창 뒤에 '문화→소비→국가 브랜딩'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흐름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두이스부르크-에센 대학교의 한국학 전문가 하네스 모슬러 교수는 DW 인터뷰에서 "한류는 정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한 산물은 아니지만, 초기부터 정치적 뒷받침을 받았다"면서 "드라마·음악·디지털 플랫폼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한국 제품의 가시성을 키우는 문화 인프라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K-뷰티를 "한국의 전체 이미지 안에 녹아있는 요소"로 규정했다.

이 구조가 현실에서 가장 또렷이 드러난 장면은 지난해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현장이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서울 올리브영에서 구매한 화장품 사진을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이 한 장의 이미지가 미국 뷰티 커뮤니티 전체로 퍼졌다. 업계에서는 이를 "수십억 원짜리 광고보다 강한 한 컷"이라고 평가한다.

한국 화장품 전문 수입·유통사 켄카나(Kencana)의 슈테판 토벨 대표는 "K-팝이 한국을 세계 무대에 올리자 소비 흐름이 따라왔다"면서 "이제 K-팝 스타나 드라마 주인공은 제품 하나를 들고만 있어도 전 세계 수요를 만들어내는 문화 승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수출구조의 질적 변화…중국 의존 벗고 미국·중동·유럽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수출 총액만이 아니다. 수출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2025년 주요 국가별 수출액은 미국이 22억 달러로 1위에 올랐고, 중국(20억 달러)·일본(11억 달러)이 뒤를 이었다.

아랍에미리트와 폴란드는 수출 증가세를 이어가며 각각 8위와 9위를 기록했다.

대미 화장품 수출은 최근 5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었고, 일본 내에서도 한국은 프랑스를 제치고 주요 수입국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한때 전체 수출의 절반을 웃돌던 중국 비중이 낮아진 자리를, 미국·유럽·중동이 빠르게 채우고 있는 것이다.

2025년 상반기 한국 화장품 수출은 약 55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14.8% 늘었고, 세계 화장품 수출 순위에서 미국을 따돌리고 프랑스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시장 다변화의 배경에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위력이 있다. 토벨 대표는 "틱톡(TikTok)과 인스타그램은 트렌드를 전 세계로 동시에 퍼뜨리는 가속장치"라면서 "K-뷰티는 이 구조를 경쟁자 어느 나라보다 잘 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도 K-팝과 K-드라마의 확산이 K-뷰티 수요 창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재명 정부 '소프트파워 5대 강국' 선언…관세 변수가 시험대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국 문화가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 문화가 곧 경제이고 국제 경쟁력"이라면서 "2030년까지 글로벌 소프트파워 5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K-뷰티는 이 비전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K-뷰티를 포함한 K-콘텐츠 전반에 대한 수출 지원을 강화하고, 오는 2030년까지 문화 수출 50조 원 시대를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나 낙관만 하기에는 이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은 화장품 업계에도 예외가 없다. 미국은 한국 화장품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올라선 터라 관세 협상의 향방이 산업 전체 성장 곡선에 직접 영향을 준다.

업계에서는 "관세 충격 자체보다 협상 불확실성이 미국 유통 파트너들의 발주를 주저하게 만드는 게 더 큰 걱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글로벌 K-뷰티 시장은 2025년 110억6000만 달러에서 2035년 194억4000만 달러로 연평균 5.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장품 하나로 국가 이미지를 바꾸어온 한국이,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는 지정학적 격변기에도 '매력 외교'의 공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가 K-뷰티 2.0 시대의 진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