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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 균열…금 보유액, 실질 달러 준비금 사상 첫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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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 균열…금 보유액, 실질 달러 준비금 사상 첫 추월

중앙은행 달러 자산 실질가치 4조 달러로 반토막…금과 역전 이유는
한국 외환보유액 70% 달러 자산…"달러 환류 구조 붕괴 시작" 경고
미국-이란 전쟁이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새로운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란 전쟁이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새로운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외환보유액의 70% 가량이 달러 자산으로 채워진 가운데, 미국-이란 전쟁이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새로운 분기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9일(현지시각) 글로벌 거시전략가 사이먼 화이트의 분석을 통해, 각국 중앙은행이 쌓은 달러 준비금에서 누적 평가이익을 제거한 실질 기준치가 금 보유액에 처음으로 역전됐다고 보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숫자의 함정…공식 7조 5000억 달러 vs 실질 4조 달러


IMF가 공식 집계하는 전 세계 달러 표시 외환보유액은 약 7조 5000억 달러(약 1경 1070조 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수치에는 달러 자산을 보유하면서 수십 년간 누적된 이자 수익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화이트는 블룸버그 미국 국채지수 수익률을 적용해 이 평가이익 요인을 걷어내면 실질 달러 보유액은 약 4조 달러(약 5900조 원) 수준으로 쪼그라든다고 분석했다. 공식치의 절반 남짓이다.

그는 "금은 이자를 낳지 않는다는 점에서, 달러와 금을 대등하게 비교하려면 달러 준비금에서도 누적 이자 효과를 제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조건을 맞추면 중앙은행이 실제 '선택해서 담은' 달러 자산의 무게가 금 보유액보다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수치도 이 흐름을 뒷받침한다. 달러 준비금의 실질 가중치는 2014년 정점 이후 15% 줄었다. 반면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로 매입한 금의 보유 톤수는 같은 기간 15% 늘었다.

스태티스타가 올해 1월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중앙은행 보유액에서 금의 비중이 미국 국채 비중을 처음 앞지르는 전환점이 나타났으며, 이 흐름은 지정학적 불확실성 확대와 자산 분산 수요가 맞물린 결과다.

2022년 러시아 자산 동결이 쏘아 올린 탈달러 신호탄


달러 이탈 가속의 진원지는 이란 전쟁이 아니다. 그보다 4년 앞서 있었다. EBC파이낸셜그룹의 기술분석가 마이클 해리스는 이달 7일 보고서에서 미국과 서방이 2022년 러시아 중앙은행 보유 외환 약 3000억 달러(약 442조 원)를 동결한 사건이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조치는 달러 자산을 타국 금융 시스템에 예치할 경우 몰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고를 전 세계 중앙은행에 동시에 전달했고, 이후 연간 금 매입량은 2022년 이전 약 500t에서 최근 3년 연속 1000t을 웃도는 수준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세계금협회(WGC)가 올해 3월 발표한 중앙은행 금 보유 현황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68%가 올해 금 보유량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응답치 62%보다 높아진 것으로, 금이 위기 시 발휘하는 가치 안정성과 거래 상대방 위험이 없다는 점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BRICS 국가들의 전체 금 보유 비중은 2019년 11.2%에서 현재 17.4%로 높아졌다. 도이체방크는 금 가격이 온스당 6000달러(약 885만 원)에 이르면 금의 준비자산 비중이 달러와 같아진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미 올해 들어 금값은 4800달러(약 708만 원)대를 넘어섰다.

'달러 환류 구조' 균열…한국 외환보유액도 안심할 수 없다


화이트가 가장 주목한 것은 단순한 보유 비중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달러 순환 구조 자체의 침식이다. 석유 수출국이 원유를 팔아 받은 달러를 미국 국채에 재투자하고,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저금리 재원을 조달하면서 안보와 무역 질서를 보장하는 구조가 달러 체제의 뼈대였다.

그는 "미국이 더 이상 믿을 만한 안보 보증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달러로 거래하고 달러에 재투자할 동기가 줄어든다"고 밝혔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이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흐름은 한국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 금융권 안팎에서는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이 달러화 자산과 미국 국채로 채워진 상황에서 달러 가치 하락이나 패권 약화가 국가 자산의 실질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인 동남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이 달러 대신 자국 통화나 위안화 결제를 요구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어 수출 기업들이 새로운 결제 구조에 직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미국-이란 휴전 발표 직후 1480원대로 반등하며 변동성이 커진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란 휴전의 지속 가능성에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어 통화시장이 변동성 재발 위험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올해 2월 경상수지가 231억 9000만 달러의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한 점은 원화 안정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역사적 전례도 있다. 영국 파운드화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금본위제 이탈, 브레튼우즈 체제 출범, 수에즈 위기를 거치며 수십 년에 걸쳐 기축통화 자리를 내줬다.

달러의 퇴조 역시 단발성 사건이 아닌 '구조적 누수'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게 화이트의 시각이다. 그는 "이제 달러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달러 자산을 줄이는 선택이 점점 더 합리적으로 보이게 되면서 달러의 지배력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금이 다시 세계 중앙은행의 핵심 준비자산으로 부상하는 현상은, 달러 체제가 또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를 지나쳤다는 신호로 읽힌다. 달러 의존도가 높은 한국 외환보유액 구조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조용히 재점검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