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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서방 제재로 4년 동안 1300억 달러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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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서방 제재로 4년 동안 1300억 달러 손실

라트비아 정보기관, 러 내부 기밀 추산 공개... EU 전면 에너지 금수·우호국 동반 감축 시 2165억 달러 손실
한국 정유사, 러 원유 재수입 타진... 제재 완화 딜레마 심화
튀르키예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유조선.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튀르키예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제재는 효과가 없다고 공언하는 러시아가, 자국 내부 문서에서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조용히 인정하고 있다는 기밀 평가가 공개됐다.

중동 호르무즈 해협 위기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며 러시아에 일시적인 숨통이 트이는 지금, 이 역설적인 진실은 서방의 제재 전선을 어디에서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지고 있다.

라트비아 국가정보보안기관인 헌법보호국(SAB)은 지난 13일(현지시각) 러시아 국가기관의 내부 추산을 담은 보고서 '서방 제재로 인한 러시아의 손실'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영문 매체 키예프포스트(Kyiv Post)가 지난 15일(현지시각)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SAB 국장 에길스 즈비에드리스(Egils Zviedris)는 "이 정보는 정보 수집 활동을 통해 입수했다"고 밝혔다.

러 내부 숫자가 말하는 진실: 2030년까지 대외무역 손실 최소 1755억 달러


SAB가 공개한 러시아 자체 추산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간 서방의 수출통제를 우회하고 금지 품목을 조달하는 데 1300억 달러(약 192조 원), 연간 평균 325억 달러를 추가 지출했다. SAB는 이 수치가 러시아가 특정 서방 제품을 끝내 대체하지 못한 사례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라고 밝혔다.

러시아 기관의 중기 전망에 따르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서방 제재의 직접 영향, 이차제재, 무역 금수, 미국 관세 인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러시아 대외 무역 손실이 총 1755억 달러(약 262조 원)에 달할 것으로 러시아 경제기획자들 스스로 추산했다. SAB는 실제 손실은 이를 훨씬 웃돌 것이라고 평가했다.

에너지 부문의 잠재적 충격은 그 수준을 압도한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에너지에 전면 금수 조치를 단행하고 중국·인도·튀르키예마저 수입을 줄인다면, 에너지 부문에서만 5년간 2165억 달러(약 320조 원), 연간 433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러시아 내부 추산을 SAB가 인용했다.

에너지 수치 단독으로도 전체 대외무역 손실 전망치를 웃돈다는 사실은 전체 추산이 보수적으로 잡혔음을 시사한다고 SAB는 분석했다.

주요 수출 품목의 급감은 이미 통계로 확인됐다. 2021년 대비 2025년 기준 철광석 수출이 40%, 철강·비철금속이 20%, 화학제품이 35%, 목재·펄프가 약 50% 각각 줄었다.

러시아는 잃어버린 서방 시장을 대체할 판로를 2026년 현재까지도 찾지 못했다. 러시아의 2026년 1분기 석유·가스 예산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에너지 시설 타격이 수출 역량을 추가로 잠식하고 있다.

푸틴에겐 '성공 보고서'만... 정보 왜곡이 전쟁을 길게 만든다


SAB는 러시아 최고 지도부에 보고되는 내부 문서에서 경제 보고서가 통상 "러시아 경제가 제재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서술로 문을 열고, 실제 손실 수치는 뒤로 밀린다고 밝혔다.

SAB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받는 보고서에는 이러한 왜곡이 더욱 심화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 이 구조적 정보 차단이 경제 위기가 깊어지더라도 푸틴이 대우크라이나 침략 노선을 바꾸지 않을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SAB 국장 즈비에드리스는 "제재는 효과가 있으며 앞으로도 러시아 경제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즈비에드리스 국장은 "제재만으로 러시아의 공격적 태도를 신속하게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러시아의 경제 역량을 약화시켜 서방에 가하는 위협을 줄이는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지난달 14일(현지시각) 만장일치로 대러시아 제재를 오는 9월 15일까지 6개월 추가 연장했다. 이번 연장으로 제재 대상 기관·개인은 2700곳 이상을 유지하게 됐다.

한국 정유사도 흔들린다... 제재 완화 결정의 국내 파장


이번 보고서의 파장은 한국과도 직결된다. 산업통상부는 미국 정부가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해 대러시아 원유 제재를 일시 해제하자 SK에너지·GS칼텍스 등 국내 정유 4사와 회의를 열고 러시아산 원유 및 나프타 수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한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한 것은 지난 2022년 4월이 마지막이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의 4월 석유 광물채굴세 수입은 3월 3270억 루블에서 약 7000억 루블(약 91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공급 불안이 커지는 국면에서 러시아가 단기적인 재정 이득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SAB의 경고는 명확하다. 제재를 부분적으로라도 완화하는 순간 러시아는 그 재원을 군사 재무장 속도를 높이고 세계 각지에서 반서방 영향력 공작에 투입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SAB는 단기적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한 제재 완화가 중장기적으로 러시아의 전쟁 지속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4년에 걸쳐 누적된 1300억 달러의 손실, 그리고 2030년까지 예상되는 2000억 달러에 가까운 추가 피해. 러시아가 내부적으로 인정한 이 수치들은, 지금 서방이 제재를 완화할 시점인지 아니면 강화할 시점인지를 가르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한국도 에너지 수급과 외교 안보 사이에서 그 선택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됐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