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대 원유 공급 충격"… 글로벌 에너지 시장 초긴장
트럼프 “협상 서두리지 않겠다”… 레바논 휴전 3주 연장, 이란과 담판은 안갯속
트럼프 “협상 서두리지 않겠다”… 레바논 휴전 3주 연장, 이란과 담판은 안갯속
이미지 확대보기브렌트유는 전쟁 전 배럴당 72달러에서 120달러 가까이 치솟았고, 전 세계 원유 거래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해협이 사실상 봉쇄 상태를 유지하면서 글로벌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로이터ㆍ뉴욕타임스ㆍBBCㆍ알자지라 등 주요 외신은 24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레바논-이스라엘 휴전을 3주 연장하며 외교적 숨 고르기에 나섰지만, 이란과의 본협상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고 보도했다.
3개월 만에 원유 55% 급등…“역사상 최대 공급 충격”
지난 2월 28일(현지시각)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공습('라이언스 로어' 작전)을 감행한 후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3월 4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했다.
세계 원유 해상운송의 약 27%, 액화천연가스(LNG)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이 해협이 막히자 브렌트유는 3월 한 달에 만 51% 폭등하며 사상 최대 월간 상승 폭을 기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 4개국의 원유 생산은 3월 12일 기준 하루 1000만 배럴 이상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를 '역사상 최대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업체 비톨(Vitol)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1일(현지시각) "이번 전쟁으로 총 10억 배럴의 원유 생산 손실이 발생할 것이며, 현재까지의 누적 손실은 6억~7억 배럴에 이른다"고 밝혔다.
IEA는 이달 초 새 보고서를 통해 2026~2030년까지 LNG 공급 손실이 누적 1200억 입방미터(㎥)에 달할 것이며 타이트한 LNG 시장 상황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이상 급등락도 잇따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관련 발언이 나오기 전 수억 달러 규모의 유가 하락 베팅이 선물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내부자 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3월 23일(현지시각)에는 트럼프의 이란 공격 유예 발표 15분 전 5억 8000만 달러(약 8600억 원) 규모의 매도 포지션이 잡혔고, 4월 7일에도 휴전 발표 직전 9억 5000만 달러(약 1조 4090억 원) 규모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트럼프 “서두르지 않는다”…레바논 휴전 연장, 이란 협상은 평행선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스라엘·레바논 외교관들과 회동한 뒤 레바논-이스라엘 휴전을 3주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란과의 협상에 대해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가장 좋은 협상을 원하며 영원히 지속될 합의를 원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에게는 시간이 있지만 이란에는 없다. 시계는 째깍거리고 있다"고 압박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의 핵 시설 3곳을 비롯해 13,000개 이상의 표적을 타격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은 장거리 스텔스 순항미사일'JASSM-ER' 약 1100발(개당 약 110만 달러, 약 16억 원), 토마호크 미사일 1000여 발(개당 약 360만 달러, 약 53억 원),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1200발 이상(개당 약 400만 달러, 약 59억 원)을 소모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미국기업연구소(AEI)는 이번 전쟁의 총 비용을 2800억~3500억 달러(약 415조~519조 원), 즉 하루 약 10억 달러(약 1조 4837억 원)로 추산했다.
한편 이란은 자국 내 지도부가 결속을 과시했다. 테헤란 현지에서 24일 새벽 이란 대통령·국회의장·사법부 수장 등 고위 인사들은 국내 모든 이동통신망을 통해 " 이란에는 강경파도 온건파도 없다. 우리는 모두 이란인이며 혁명의 일원"이라는 공동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BBC 수석 국제 특파원 라이즈 두셋은 테헤란 현지 취재에서 "주요 사안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 이란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라고 전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도 강화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최근 화물선 'MSC 프란체스카'와'에파미논다스' 호를 나포하며 해협 통제 의지를 재확인했다.
미 해군은 이에 맞서 핵 추진 항공모함3척(제럴드 포드함·에이브러햄 링컨함·조지 H.W. 부시함)을 중동에 배치하며 대규모 해상 전력을 집결했고,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기뢰를 부설하는 이란 선박을 향해 "격침 명령" 을 내렸다.
한국, 원유수입 90% 호르무즈 의존 …스태그플래이션 기로
이번 위기는 한국에 특히 치명적인 구조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 LNG의 20% 안팎을 중동에서 조달하며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블룸버그 통계 기준으로 호르무즈 경유 원유 중 한국 비중은 12%로, 중국·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3월16일 보고서에서 개전 이전 배럴당 약 72달러 수준이던 두바이유가 최고 103달러를 넘어서며 40% 이상 급등했다고 밝혔다.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때마다 국내 제조업 전체의 평균 생산비용이 약 0.71%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으며, 에너지 투입 비중이 높은 석유제품 산업은 6.30%의 비용 충격을 받는다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산업연구원은 호르무즈 봉쇄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한국 제조업 생산비용이 최대 11.8%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이미 3가지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가장 낙관적인 조기 종전 시나리오에서도 유가가 전쟁 전 보다 43% 높은 배럴당 90달러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정부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처음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해 단기 충격을 억제하고 있으나, 경제전문가는 "가격 통제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대증요법일 뿐" 이라며 "휴전이나 종전이라는 정치적 선언이 걸프 지역의 생산 시설을 하루아침에 복구할 수는 없다" 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이란전쟁 발생 후 국내 원유 비축량이 약 7개월 치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오는 5월까지 확보한 원유 도입량이 7462만 배럴로 전년 월평균 대비 약 87% 수준이라고 공개했다. 중동산 비중도 기존 69%에서 56%로 낮추며 조달처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의존도 93.7%라는 구조적 취약성은 50년째 변화가 없어 근본적 에너지 안보 재편 없이는 위기 반복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NATO 갈등에 식량ㆍ항공도 직격 … 경제 충격 전방위 확산
이번 전쟁의 충격은 에너지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위기 확산의 또 다른 진원지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내부 균열이다. 로이터 통신은 24일(현지시각) 미 국방부 내부 이메일에 이란전에서 협력을 거부한 동맹국을 응징하는 방안이 거론됐다고 보도했다.
이 이메일에는 스페인을 NATO에서 정지시키거나,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영국의 입장을 재검토하는 방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메일은 이를 두고 유럽 동맹국들의 '특권의식(sense of entitlement)'을 낮추기 위한 조치라고 서술했다.
식량과 항공 분야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 세계 요소비료의 30% 이상이 걸프 국가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출되는데, 해협 봉쇄로 비료·황(유황) 공급망이 막히면서 옥수수·밀 등 곡물 생산비용이 급등하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식품정책연구소(Food Policy Institute)는 에너지·비료 가격 상승으로 식품 가격이 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란 영공 폐쇄와 중동 주요 공항 마비로 아프리카-아시아-유럽 간 주요 항공 노선이 우회 운항을 강요받으며, 전 세계 항공 물동량의 약 15%를 처리하는 중동 공항들이 사실상 운영을 멈춘 상태다.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 카야 칼라스는 24일(현지시각) 키프로스에서 열린 EU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이란 협상에 핵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2015년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란 핵합의)보다 더 약한 합의에 이를 수 있다" 며 "미사일 프로그램과 대리 세력 지원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더 위험한 이란이 남을 것" 이라고 밝혔다.
향후 전망 : ‘종전 합의’ 까지 에너지 쇼크 지속
에너지 시장에서는 호르무즈 봉쇄가 풀리더라도 원유 가격의 단기 급락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원자재 시장 분석 업체 코모디티 컨텍스트(Commodity Context)의 로리 존스턴 창업자는"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면 투기 포지션 청산으로 배럴당 10~20달러 하락이 나타날 수 있지만, 공급망 병목과 인프라 피해, 생산 차질이 누적돼 브렌트유는80~90달러 수준에 안착할 것"이라면서"이번 사태는 여전히 석유 시장 역사상 최대의 공급 충격"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변수도 산적해 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전략을 둘러싼 이견이 불거지고 있으며, 이는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연이은 고위 인사 경질로 표면화되고 있다.
로마 아메리칸대학교 안드레아 드레시 국제관계학 조교수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전략을 수시로 바꾸고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 전쟁에 대한 심각한 오판이 있었음을 반영한다" 며 "트럼프 행정부는 출구 전략을 찾고 있는 상황" 이라고 분석했다.
미-이란 본격 담판이 언제 재개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란 측은 미국의 해군 봉쇄가 해제되지 않는 한 협상 테이블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레바논-이스라엘 휴전을 발판 삼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아운 레바논 대통령을 조만간 백악관에 초청하겠다고 예고했다.
국제 에너지 시장은 이란-미국 담판 재개 시점을 향후 글로벌 유가 정상화의 결정적 변곡점으로 주목하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