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지옥에 갇힌 미국… 국방·AI 주도권 위협
"공장 짓다 세월 다 간다"… 진출 한국 기업, 인허가 리스크 관리 사활
"공장 짓다 세월 다 간다"… 진출 한국 기업, 인허가 리스크 관리 사활
이미지 확대보기1933년 착공한 금문교는 단 4년 만에 미국 엔지니어링의 정점을 찍었다. 거대한 강철 다리가 샌프란시스코만을 가로지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 같은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완공까지 10년, 혹은 그 이상을 예상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의 복잡한 인허가 시스템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규제에 의한 패배'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1조 5000억 달러 잠긴 '인프라의 늪'
미국 인프라 산업은 사실상 정지 상태다. 맥킨지 컨설팅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연방 정부의 인허가를 기다리며 발이 묶인 투자액만 1조 5000억 달러(약 2209조 원)에 달한다. 만약 이들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승인된다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1조 7000억~2조 4000억 달러(약 2503조~3534조 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장의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남서부 전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선지아(SunZia) 송전선' 프로젝트는 건설 자체는 2년이면 끝날 사업이었으나, 인허가를 받는 데만 무려 17년이 걸렸다. 버지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를 잇는 '마운틴 밸리 파이프라인' 사례는 극적이다. 2017년부터 이어진 환경단체의 소송전으로 건설이 6년간 중단됐고, 결국 미 의회가 직접 개입해 공사를 강제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AI·국방·에너지… 국가 미래 먹거리의 발목
인프라의 경직성은 단순한 경제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미국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문제다. 발전소를 짓지 못하는 국가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주도권을 쥘 수 없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 센터를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급도 마찬가지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터미널을 신속하게 건설하지 못하면 해외 주둔군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량도 흔들린다. 배터리나 드론, 첨단 정밀 무기에 필요한 광물 처리 시설도 인허가 장벽에 막혀 있다. 미국이 스스로 구축한 규제의 미로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1956년 시작해 1992년 완성된 주간 고속도로 시스템 같은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지금 추진한다면, 완공을 보는 미국인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진출 한국 기업, '인허가 리스크' 관리가 승부처
이런 환경에서 미국 내 생산 거점을 구축 중인 한국 기업들에 현지의 '인허가 장벽'은 최대 비용 리스크다. 규제 시스템 탓에 공장 준공이 늦어지면 막대한 기회비용과 시장 선점 기회 상실로 이어진다. 단순히 연방 보조금에 의존하기보다, 진출 초기부터 해당 지역의 환경 규제와 소송 가능성을 면밀히 파악하는 '리스크 관리' 전략이 필수적이다.
향후 미국 내 인허가 간소화 압력은 거세지겠으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지연은 계속될 전망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프로젝트 타임라인에 '규제 완충 지대'를 설정하고, 현지 법적 대응력을 강화하는 등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규제 개혁이 곧 안보 전략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패권 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세 가지 시급한 인허가 개혁을 주문했다. 첫째, 환경법(청정수자원법, 국가환경정책법 등)을 시대에 맞게 간소화해야 한다. 둘째, 다수의 기관에 분산된 인허가권을 단일 기관으로 통합해 명확한 데드라인과 결정권을 부여해야 한다. 셋째, 승인된 프로젝트를 상대로 한 소모적인 소송을 제한하고 공소시효를 단축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보조금이나 제재만으로는 근본적인 병목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1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기 중인 투자를 현장으로 끌어내려면, 결국 '건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항공모함과 미사일뿐만이 아니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지표는 연방 인허가 통과 속도와 신규 인프라 착공 건수다. 미국이 규제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건설하는 국가'로 복귀할 수 있을지, 차기 정책 변화가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