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양자 수요 폭증에 성장 가속… 2025년 7917억 달러 기록 후 올해 1조 달러 돌파 전망
동남아 공급망 재편 가속화… 'AFISS' 결집에 K-반도체 공급망 비상
동남아 공급망 재편 가속화… 'AFISS' 결집에 K-반도체 공급망 비상
이미지 확대보기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5일(현지 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세미콘 SEA 2026'에서 이 같은 전망을 발표했다. 아지트 마노차 SEMI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산업은 현재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면서 "2025년 7750억 달러(약 1142조 원)를 기록한 글로벌 반도체 매출이 올해 1조 달러를 돌파하고, 2035년에는 2조 달러(약 2949조 원)를 넘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역시 2025년 연간 반도체 매출이 7917억 달러(약 1167조 원)로 전년 대비 25.6%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26년 반도체 매출이 1조3000억 달러(약 1916조 원)를 초과할 것으로 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1조 달러 시대 진입한 AI…'반도체 배급' 우려 속 초고속 성장
반도체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는 AI와 사물인터넷(IoT), 양자 컴퓨팅 기술의 상용화가 이끌고 있다. 마노차 CEO는 현재 시장 흐름이 보수적인 전문가들의 예상조차 뛰어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데이터센터 확충에 따른 전력 부족과 반도체 수급난이 겹치며 'AI 배급제'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성장세가 단순히 수치상의 확대를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성장의 핵심 동력은 생성형 AI 가속기, 양자 컴퓨팅, 차세대 에너지 인프라로 정리된다. 마노차 CEO는 별도 행사에서 "2030년에는 최대 1조8000억 달러(약 2653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트 차이나' 꿈꾸는 동남아…'AFISS'로 글로벌 허브 조준
이번 행사에서 주목할 점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결집이다. 2025년 아세안(ASEAN) 의장국인 말레이시아 주도로 출범한 '아세안 통합 반도체 공급망 프레임워크(AFISS)'는 단순한 후공정(패키징·테스트) 기지를 넘어 설계와 전공정까지 아우르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반도체 허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국가 반도체 전략(NSS)을 통해 2030년까지 반도체 전문 엔지니어 6만 명 양성을 목표로 내세우고, 미·중 갈등 속에서 동남아의 지정학적 중립성과 숙련된 노동력을 강점으로 부각하고 있다. 실제로 아세안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수출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단독으로 글로벌 반도체 후공정(조립·테스트·패키징) 생산량의 13%를 담당한다.
에너지·인재·지정학…'쿼드러플 헬릭스' 모델로 돌파
급격한 성장의 이면에는 인력 부족과 에너지 제약, 지정학 리스크라는 '3대 난제'가 버티고 있다. SEMI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산업계·학계·시민사회가 결합한 '쿼드러플 헬릭스(Quadruple Helix)'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이는 반도체 인력 양성과 에너지 인프라 확충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합의와 지정학 리스크 대응력을 극대화해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모델이다.
특히 과불화화합물(PFAS) 사용 금지 규제와 같은 환경 이슈는 당장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는 요소다. 린다 탄 SEMI 동남아시아 사장은 "인재 양성과 에너지 지속가능성은 단일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과제"라면서 "역내 협력을 통한 공급망 탄력성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K-반도체, 'AFISS' 파고 속 초격차 전략 재정립 사활
반도체 1조 달러 시대가 현실화되며 K-반도체는 유례없는 변곡점에 섰다. 말레이시아 주도의 AFISS 출범은 한국에 강력한 위협이자 기회다. 그간 후공정 기지에 머물던 동남아가 전공정까지 영역을 확장함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단순 비용 절감을 넘어선 고도의 기술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AI 가속기와 양자 컴퓨팅 수요 폭증에 대응하기 위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저전력 LPDDR5X 등 차세대 메모리 주도권을 지키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강화되는 PFAS 환경 규제와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쿼드러플 헬릭스' 모델 도입 등 민관학 협력이 필수적이다. 지정학 중립 지대인 아세안을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해 공급망 탄력성을 확보한다면 K-반도체는 초성장기에서 독보적 영토를 점유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 참여자, 반도체 2.0 시대에 무엇을 봐야 하나
반도체 시장이 1조 달러 시대를 맞이하면서 투자자와 산업 종사자들이 주목해야 할 지표는 명확해졌다.
첫째, 동남아시아의 공정 고도화 속도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이 후공정을 넘어 전공정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글로벌 공급망 지도를 바꿀 변수다.
둘째, AI 데이터센터용 전력 설루션이다. 전력 부족이 반도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만큼 저전력 반도체(LPDDR5X 등)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에너지 관련 기술의 결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셋째, AFISS 구속력 강화 여부다. 현재 AFISS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틀(비구속적 합의)인 만큼 실제 이행 속도와 미국 주도 공급망 재편과의 충돌 지점을 냉정히 분석해야 한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부의 척도가 됐다. 1조 달러라는 숫자에 매몰되기보다 그 숫자가 만들어낼 산업 생태계의 대이동 속에서 한국 반도체가 점유할 '영토'가 어디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