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독일 '20조 증액' 쇼크… 라인메탈 요구에 흔들리는 '제조 신화'

글로벌이코노믹

독일 '20조 증액' 쇼크… 라인메탈 요구에 흔들리는 '제조 신화'

납기 4년 지연·인플레 조항 초강수… '온 타임' K-방산 역전 기회 왔나
독일 방위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라인메탈(Rheinmetall)이 자국 해군의 차기 호위함 사업을 놓고 독일 정부에 '20조 원 규모'의 천문학적 추가 비용을 요구하며 배수진을 쳤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독일 방위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라인메탈(Rheinmetall)이 자국 해군의 차기 호위함 사업을 놓고 독일 정부에 '20조 원 규모'의 천문학적 추가 비용을 요구하며 배수진을 쳤다. 이미지=제미나이3
독일 방위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라인메탈(Rheinmetall)이 자국 해군의 차기 호위함 사업을 놓고 독일 정부에 '20조 원 규모'의 천문학적 추가 비용을 요구하며 배수진을 쳤다.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정부가 전액 부담하라는 초강수까지 더해지면서, 당초 2028년으로 예정됐던 함정 인도는 2032년으로 밀려나게 됐다.

유럽 최강국 독일의 방산 공급망이 마비 조짐을 보이면서, 정해진 예산과 납기를 칼같이 지키는 한국 방산(K-Defense)'시스템 통합' 역량이 서유럽 시장을 파고들 결정적 분수령을 맞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라인메탈의 '폭탄선언'"120억 유로 더 내놔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로이터통신은 6(현지시간) 라인메탈이 난항을 겪고 있는 'F126 호위함' 건조 사업 인수를 조건으로 독일 정부에 약 120억 유로(204300억 원)의 추가 자금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 제안이 수용될 경우, 6척의 함정을 건조하는 전체 사업 규모는 당초 계획을 훌쩍 뛰어넘는 140억 유로(238400억 원)에 달하게 된다.

이번 요구는 라인메탈이 지난 3월 루르센(NVL) 해군 사업부를 인수한 이후 6개월간 진행한 정밀 실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독일 국방부 대변인은 "현재 두 대형 기업과 폭넓은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협상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인플레이션 조항' 초강수… 흔들리는 독일 제조 신화


라인메탈이 제시한 인수 조건 중 가장 파격적인 대목은 '인플레이션 연동 조항(Inflation Clause)'이다. 이는 향후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정부가 전적으로 부담하라는 의미다. 기존 주계약자였던 네덜란드 조선사 다멘(Damen)이 납기를 맞추지 못해 사업이 공전하자, 라인메탈이 구원투수로 나서는 대신 실익을 철저히 챙기겠다는 전략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라인메탈의 제안대로라면 첫 함정 인도는 2032년에야 가능하다""당초 목표보다 4년이나 늦어지며 독일 해군의 전력 공백이 불가피해졌다"고 진단했다. 척당 건조 비용이 폭등하면서 독일 내부에서도 "이 비용이면 기성품을 사는 게 낫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독일 국방부의 '플랜 B'"가성비 메코(MECO)로 압박"


독일 국방부는 라인메탈의 고가 전략에 대응해 '기성품(Off-the-shelf)' 도입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가 제작하는 '메코(MECO) A-200' 호위함이다.

메코급은 척당 약 10억 유로(17000억 원) 수준으로, 라인메탈이 요구하는 F126 예상가보다 현저히 낮다. TKMS는 최근 독일 군당국과 첫 번째 함정을 2029년까지 인도하는 예비 계약을 체결하며 라인메탈을 압박하고 있다.

현지 군사 전문가는 "독일 정부가 첨단 사양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납기와 가격을 맞출 수 있는 실용적 노선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K-방산, '납기'가 곧 '안보'


독일 방산의 이번 위기는 역설적으로 한국 방산업계에 거대한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유럽 최강국 독일조차 예산 부족과 납기 지연이라는 구조적 결함에 빠진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폴란드 등에서 보여준 '정해진 시간, 정해진 예산 내 납품은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특히 라인메탈이 보여준 '대형사 주도형 구조조정' 모델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나 현대로템 등 국내 기업들이 참고해야 할 지배구조 사례로 꼽힌다. 단순 제조업을 넘어 엔지니어링과 금융 리스크 관리 능력을 결합한 '시스템 통합업자(System Integrator)'로서의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 3가지


첫째, 독일 국방예산의 한계다. 1000억 유로(170조 원) 규모의 방위비 특별기금이 소진된 이후, 독일이 라인메탈의 요구액을 감당할 추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독일은 '시대전환(Zeitenwende)'을 선언하며 1000억 유로 규모의 방위비 특별기금을 조성했다. 하지만 만성적인 예산 부족과 라인메탈의 이번 20조 원 증액 요구가 맞물리며 이 기금은 조기 소진될 위기에 처했다. 결국 자금이 바닥나면 독일은 일반 예산에서 막대한 방위비를 추가 조달해야 하며, 이는 독일 국방부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K-방산에는 거대한 시장 진입의 틈새가 된다.

둘째, K-함정의 서유럽 진출이다. 폴란드 등 동유럽을 넘어 서유럽 함정 사업에서도 한국의 가격·납기 경쟁력이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계약 표준의 변화다. 라인메탈발 원가 연동 계약 방식이 글로벌 방산 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경우, 국내 기업들도 수출 계약 시 수익성 보호를 위한 정교한 조항 설계가 필요하다.

독일의 차세대 함정 사업 잔혹사는 방산 경쟁력이 단순히 기술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공급망''재정적 안정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가성비''신뢰'를 앞세운 한국 방산이 유럽의 빈틈을 파고들 최적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