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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늄 목줄' 쥔 러시아의 역습… K-원전 수출, 기회인가 족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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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늄 목줄' 쥔 러시아의 역습… K-원전 수출, 기회인가 족쇄인가

로사톰, 건설 시장 90%·우라늄 40% 장악하며 서방 제재 무력화
80년 초장기 계약으로 신흥국 '에너지 종속' 가속화… 한국엔 '3중 덫' 비상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해진 서방의 전방위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분야에서만큼은 압도적인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원전 건설 시장의 90%, 농축 우라늄 시장의 40%를 점유하며 에너지 패권을 공고히 하는 모양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해진 서방의 전방위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분야에서만큼은 압도적인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원전 건설 시장의 90%, 농축 우라늄 시장의 40%를 점유하며 에너지 패권을 공고히 하는 모양새다. 이미지=제미나이3

방글라데시 파드마 강변, 반세기 넘게 이어진 원전 건설의 꿈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400메가와트(MW)급 루푸르(Rooppur) 원자력 발전소가 2027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핵연료 장전을 시작했다. 130억 달러(19조 원)에 달하는 거대 사업의 배후에는 러시아 국영 기업 로사톰(Rosatom)이 있다.

지난 8(현지시각) A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해진 서방의 전방위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분야에서만큼은 압도적인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원전 건설 시장의 90%, 농축 우라늄 시장의 40%를 점유하며 에너지 패권을 공고히 하는 모양새다.

특히 러시아는 단순 건설을 넘어 농축 우라늄 공급부터 운영, 폐기물 처리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수직 계열화로 신흥국을 자국 에너지 생태계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이득을 넘어 수십 년간 해당 국가의 외교 노선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자력 외교의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원스톱 패키지'에 저리 차관까지… 서방, 가격 경쟁서 완패

로사톰이 세계 시장을 장악한 비결은 수직 계열화된 비즈니스 구조와 국가 차원의 막대한 보조금에 있다. 건설비의 90%를 저리 대출로 메워주고 운영 인력까지 통째로 파견하는 원스톱 서비스는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신흥국에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 마르코 시디(Marco Siddi) 연구원은 "러시아는 건설, 소유, 운영을 모두 책임지는 모델을 제시한다""자체 기술력이 부족한 신흥국에 이보다 매력적인 제안은 없다"고 분석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기술 노후화와 가파른 비용 상승으로 인해 이미 러시아와의 가격 경쟁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다. 서방 국가들이 민간 금융의 수익성을 따질 때, 러시아는 국가 전략차원에서 저금리 자금을 살포하며 영향력을 확장한다. 실제로 방글라데시는 원전 건설 대금의 90%117억 달러(171400억 원)를 러시아 차관으로 조달했다. 튀르키예 역시 최근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해 러시아로부터 90억 달러(1318000억 원)를 추가 지원받았다.

'우라늄 목줄' 쥔 러시아… 제재 칼날 비껴간 핵연료 시장


유럽연합(EU)과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금지했지만, 원자력만큼은 예외다. 미국조차 원전 가동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탓에 섣부른 제재는 자국 내 전기료 폭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헝가리는 러시아와의 협력을 지속하며 신규 원전 건설을 강행하고 있으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도 러시아와 협력하려고 줄을 서고 있다. 호주 국립대학교 토니 어윈(Tony Irwin) 교수는 "미국이나 프랑스, 한국도 러시아 같은 파격적 금융 패키지를 제공하지 못한다""이것이 러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원전 수출국이 된 이유"라고 진단했다.

K-원전 수출, '시간의 종속' 넘어설 묘수 찾아야


러시아의 독주는 한국 원전 산업에 양날의 검이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K-원전이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지만, 금융 지원 역량에서 밀릴 경우 수주 경쟁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간의 종속이다. 원전은 단순 건설을 넘어 연료 공급과 폐기물 처리 등 사후 관리까지 최소 60~80년이 소요되는 초장기 프로젝트다. 한번 러시아 기술을 채택하면 국가 에너지 안보의 생사 여탈권을 사실상 러시아에 수십 년간 저당 잡히게 된다.

이는 기술력과 시공 능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 중인 K-원전 수출 전선에 가장 큰 구조적 장벽으로, 단순한 수주 경쟁을 넘어 장기적인 에너지 동맹 파트너로서의 신뢰성과 종합적인 지원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준다.

투자자가 향후 주목해야 할 지표


러시아가 전 세계 원전 시장에 촘촘하게 쌓아 올린 금융·기술·기간3중 덫은 국내 원전 기업에 위기인 동시에 강력한 기회의 영토를 의미한다. 서방의 탈()러시아 움직임이 가속화될수록 K-원전의 몸값은 더욱 뛰어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원전 산업이 실질적인 반사이익을 누리기 위해 투자자가 향후 주목해야 할 지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체코·폴란드 추가 수주 향방이다. 단순히 기술력을 인정받는 수준을 넘어, 유럽 내 탈()러시아 움직임이 한국의 실질적 수주 계약으로 연결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둘째, ·미 원자력 동맹의 실효성이다. 미국과의 핵연료 공급망 협력이 러시아의 우라늄 독점에 맞설 수준까지 올라오느냐가 원전 수출의 선결 과제다. 셋째, 금리 및 정책 금융 지원 규모다. 원전 수출은 기술력 싸움을 넘어 자금력 싸움이다. 정부의 수출금융 지원책이 로사톰의 '저리 대출'과 경쟁 가능한 수준인지 지켜봐야 한다.

러시아 원전 외교는 단순한 에너지 사업을 넘어, 향후 반세기 동안 수입국의 외교 노선을 강제하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안보가 곧 국가 안보인 시대에 특정 국가에 기술적·재정적 과몰입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냉정한 계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