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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스피드'에 허 찔린 혼다, 전동화 전략 전면 수정… '트리플 하프'로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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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스피드'에 허 찔린 혼다, 전동화 전략 전면 수정… '트리플 하프'로 반격

"EV 실패가 아닌 속도의 문제"… 개발 기간·비용·공수 '절반' 줄이는 '트리플 하프' 선언
"5번 도면 그리는 혼다 vs 1번에 출시하는 중국"… 기존 '장인정신' 개발 문화 한계 인정
2027년 차세대 하이브리드 투입해 캐시카우 확보… '순혈주의' 버리고 외부 자원 적극 활용
혼다 미부 토시히로 사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혼다 미부 토시히로 사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혼다가 전기차(EV) 전환 전략의 속도를 조절하고 하이브리드(HEV) 차량 라인업을 다시 강화하기로 했다. 겉보기에는 글로벌 시장의 'EV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인 타협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 신흥 완성차 업체(OEM)들의 압도적인 '개발 속도'에 대한 혼다 경영진의 뼈저린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팬에 따르면, 혼다는 최근 2026년 3월기 결산 설명회 및 비즈니스 업데이트를 통해 북미 EV 계획 재검토와 차세대 하이브리드 사업 강화를 공식화했다.

"EV 전략이 틀린 게 아니다, 미래를 너무 낙관했다"


혼다는 당초 '2040년까지 글로벌 신차 판매의 100%를 EV와 수소연료전지차(FCV)로 채우겠다'는 공격적인 전동화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번 발표를 통해 북미 시장용 EV 3종의 투입을 취소하고, 캐나다에서 추진하던 포괄적 EV 밸류체인 구축 프로젝트도 무기한 동결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미베 토시히로 혼다 사장은 "혼다가 EV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2021년 당시 예상했던 북미 EV 시장 확대 예측과 현재 실적 간의 갭이 크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종료 및 관세 도입 등 정책적 전제가 크게 바뀌었다"며 시장 상황에 맞춘 유연한 전략 수정임을 강조했다.

중국발(發) 충격… "혼다가 5번 도면 그릴 때, 중국은 시장에 차를 내놓는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스피드'였다. 미베 사장은 "혼다는 세부적인 부분까지 5번이나 도면을 다시 그리며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을 고수해 왔지만, 중국 업체들은 표준화된 부품과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단 1번 만에 차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며 기존 개발 방식의 한계를 직설적으로 인정했다.

과거 혼다의 강점이었던 이른바 '갈고닦기(장인정신)' 식의 개발 문화로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속도, 부품 표준화, 의사결정 구조 등에서 중국 업체들의 압도적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이에 혼다는 반격 카드로 '트리플 하프(Triple Half)' 전략을 꺼내 들었다. ▲개발 비용 절반 ▲개발 기간 절반 ▲개발 공수 절반을 목표로 기획 단계부터 개발 매니지먼트 전반을 뜯어고쳐 중국과 맞먹는 수준의 속도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포부다.

'생존' 위한 하이브리드 회귀… "모두 다 직접 만든다"는 순혈주의도 타파


EV 전환의 징검다리로 여겨지던 하이브리드 기술은 2030년까지 혼다의 핵심 수익원(캐시카우)으로 격상됐다. 혼다는 2027년부터 차세대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고, 2029년까지 글로벌 시장에 총 15종을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북미 시장을 겨냥해 신형 V6 엔진과 새로운 드라이브 유닛을 결합한 대형 하이브리드 모델도 준비 중이다.

차세대 하이브리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바탕으로 기존 대비 연비를 10% 이상 높이고, 생산 비용은 30% 이상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혼다는 '자체 개발(순혈주의)'이라는 오랜 껍질을 깨고 외부 자원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중국과 인도의 비용 경쟁력을 활용해 부품 표준화를 추진하고, 현지 파트너사의 플랫폼까지 공유한다는 방침이다. '경쟁력의 핵심은 자체적으로 연마하되, 속도와 유연성이 필요한 영역은 외부 자원을 쓴다'는 실용주의적 접근이다.

효율성과 표준화를 추구하면서도 혼다 고유의 '조종하는 즐거움(Enjoy the Drive)'이라는 DNA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는 혼다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로 남았다. 모터팬은 "이번 전동화 전략 수정은 단순한 노선 변경을 넘어, '혼다란 무엇인가'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다시 묻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