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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식량 대신 ‘연료’… 중동 분쟁발 바이오디젤 대란에 밥상·수출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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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식량 대신 ‘연료’… 중동 분쟁발 바이오디젤 대란에 밥상·수출 직격탄

인도네시아 B50·말레이시아 B15 기습 의무화…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식물성 연료 ‘올인’
태국선 식용유 ‘구매 제한령’ 발령… 원유 팜유 싹쓸이로 연 500만 톤 수출 물량 증발 위기
차량·선박 엔진 고장 및 유지비 18% 폭증 비상… 식량 안보 붕괴와 지독한 인플레 서막
3월 9일 케손시티에서 필리핀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휘발유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정부는 설탕 산업의 바이오디젤 의무화도 B3에서 B5로 상향 조정해 달라는 요청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3월 9일 케손시티에서 필리핀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휘발유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정부는 설탕 산업의 바이오디젤 의무화도 B3에서 B5로 상향 조정해 달라는 요청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로이터
중동 전쟁 여파로 글로벌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폐쇄되자, 동남아시아 주요국들이 에너지 주권을 지키기 위해 팜유, 코코넛, 사탕수수 등 핵심 농작물을 바이오 연료로 대거 전용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공급망이 급격히 왜곡되면서 내수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고 수출 물량이 급감하는 등, 에너지 안보를 위해 식량 안보와 국가 재정을 희생하는 치명적인 정책적 딜레마에 직면했다.

23일(현지시각) 닛케이 아시아와 자카르타·쿠알라룸푸르 금융 업계에 따르면,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주요국은 중동발 석유 공급 중단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국내 디젤 및 휘발유에 식물성 바이오연료 혼합 비율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초강수 규제를 일제히 단행했다.

식용유 사재기 유도한 바이오연료 의무화… 인니·말레이 ‘팜유 싹쓸이’


태국 상무부가 디젤 내 팜유 혼합 표준을 B7으로 올리고 대형차용 B20 공급 확대를 추진하자, 내수 팜유 고갈을 우려해 팜유 수출 통제에 나섰다. 이 조치 직후 방콕 시내 7-Eleven 등 대형 소매점에는 ‘쇼핑객 1인당 1리터 식용유 6병 제한’이라는 기습 공고문이 붙으며 사재기 공포를 자극했다.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미 디젤에 팜유 40% 혼합(B40)을 강제해 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당국은 오는 7월 1일까지 이를 50%(B50)로 상향하라고 정유 업계에 기습 지시했다.

말레이시아 정부 또한 기습적으로 국가 디젤 기준을 6월 1일부터 B15로 상향 조정하며 밸류체인을 뒤흔들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에너지 안보에 전략적 불확실성을 초래했다”며 “재생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바이오연료 시장에 대대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국가 수출세 연간 15조 원 증발… 필리핀·베트남 등 식량 생태계 붕괴


문제는 이러한 과격한 연료 전환이 국가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전선과 민생 경제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필수서비스개혁연구소(IESR)의 파비 투미와 전무이사는 인도네시아의 B50 의무화로 인해 매년 해외로 수출되던 원유 팜유 물량 중 무려 400만~500만 톤(전체 수출량의 최대 15.5%)이 연료 탱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입을 연간 수출세 손실만 최대 15조 루피아(한화 약 1조26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자카르타 국립개발대학교의 아흐마드 누르 히다야트 강사는 “팜유 가격 폭등으로 리터당 식용유 가격이 기습 인상되면서 노점상과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고 경고했다.

필리핀 역시 바이오디젤 의무화를 B5로 높이려다 코코넛 공급망이 완전히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필리핀 코코넛농민단체연합은 “노령화된 나무와 낮은 생산성 상황에서 연료용 코코넛 18억 개를 억지로 쥐어짜 내면 고부가가치 수출품인 버진 코코넛 오일 등 다른 산업 부문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사탕수수와 카사바를 활용해 E10~E20 바이오에탄올 휘발유 전환을 추진 중인 베트남과 태국 역시 식량 작물의 연료 전용에 따른 극심한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

“고무 호스 녹아내린다”… 차량 운영자들 엔진 고장 및 유지비 폭탄 우려


소비자들과 산업계는 식량 부족 외에도 ‘기계적 결함’이라는 또 다른 실성 자산 훼손 리스크에 직면했다. 바이오 연료의 혼합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자동차나 중장비 엔진의 성능 저하와 내부 부품 부식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동칼리만탄 지역의 한 광산 엔지니어는 “디젤에 팜유가 50%나 섞인 B50 연료를 도입할 경우, 연료 호스와 같은 모든 고무 부품이 부식되어 교체 주기가 극도로 짧아진다”며 “이로 인해 사내 석탄 채굴 차량의 순수 유지보수 비용이 최소 15%에서 최대 18%까지 폭증할 것”이라고 폭로했다.

베트남 하노이의 운전자들 역시 과거 E5 바이오 휘발유 의무화 당시 겪었던 엔진 점화 플러그 고장 악몽을 떠올리며 “화석 연료 기반으로 설계된 엔진에 식물성 에탄올을 섞는 E10 연료 사용을 거부하겠다”며 강한 반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려는 동남아 정부의 무리한 독자 행보가 공급망 마비와 내수 불신이라는 거대한 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