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럽 무역흑자 3600억 유로 돌파에 격분… "암세포 도려낼 고강도 화학요법 시작"
중국, 배터리 현지 투자로 '유럽 내 중국화' 노리나… CRMA 입법으로 규제 정교화
중국, 배터리 현지 투자로 '유럽 내 중국화' 노리나… CRMA 입법으로 규제 정교화
이미지 확대보기벨기에 브뤼셀에서 지난 22일(현지 시각) 개최된 EU 외교이사회 무역장관 회의에서 프랑스 출신의 스테판 세주르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번영·산업전략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유럽 기업 중 공급망의 지정학 리스크를 사업 계획에 선제 반영하는 곳이 너무 적다"면서 "특정 국가로부터 원자재를 100% 조달하는 비정상적 구조를 즉시 변경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EU가 중국 주도의 독점적 공급망 구조에서 완전히 이탈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조치다. 이에 따라 유럽 시장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구축한 한국 전기차·배터리 업계의 조달 전략 재수립이 당면 과제로 부상했다.
희토류 무기화 나선 중국…EU, 'CRMA 의존도 제한' 카드로 맞불
이번 분쟁의 도화선은 중국의 독점적 원자재 통제령이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해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네오디뮴(Nd)·디스프로슘(Dy) 등 영구자석과 방산 부품의 필수재인 중희토류 12개 품목의 수출을 제한했다. 유럽의회는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가 90.0%를 웃도는 현 상황이 지속되면 역내 디지털·방위 산업이 궤멸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의 태도는 완강하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지난 17일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열린 레나르트 메리 콘퍼런스에서 중국의 공격적인 수출 관행을 '암(Cancer)'에 비유했다. 칼라스 대표는 "보조금 지급이라는 진통제 처방은 끝났다"면서 "보복에 따른 단기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무역 구제 조치라는 고강도 화학요법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는 이에 대응해 지난해 12월 핵심원자재법(CRMA)과 원자재 동맹(ERMA)을 중심으로 30억 유로(약 5조2600억 원)를 투입해 영구자석 영토 확보에 나섰다. 특히 CRMA를 통해 특정국 의존도를 제한하는 정밀한 규제 틀을 완성했다.
중국 투자 7년 만에 최대치 올랐지만…속내는 '유럽 내 중국화' 노림수
글로벌 컨설팅 기업 로디움그룹과 독일 메르카토르 중국학연구소(MERICS)가 지난 20일 발표한 '중국 외공 자금 흐름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중국의 대유럽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168억 유로(약 29조4800억 원)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67.0% 급증한 수치이며 2018년 이후 7년 만의 최고치다. 지정학적 봉쇄로 인해 중국의 대미 FDI가 10년 만의 최저치인 30억 유로(약 5조2600억 원) 선에 갇힌 것과 정반대 행보다.
중국 닝더스다이(CATL)가 헝가리 데브레첸에 건설 중인 배터리 제2공장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무역 당국은 이를 정상적인 투자 확대로 보지 않는다. 중국 내수 침체와 과잉 생산으로 마진이 급감하자 규제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유럽 현지에 깃발을 꽂는 '밀어내기식 투자'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2025년 중국의 대유럽 무역 순흑자(유럽 무역적자)는 3600억 유로(약 631조8000억 원)를 돌파하며 유럽 당국을 자극했다.
글로벌 광물 동맹 결성…한국 배터리 '양날의 검' 마주했다
유럽은 자체 규제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의 공조를 택했다. 양측은 지난 4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핵심 광물 액션플랜'을 체결하고 공동 구매 및 공급망 청정화에 합의했다. 이는 폴란드에 거점을 둔 LG에너지솔루션, 헝가리에서 CATL과 전면전을 벌이는 삼성SDI, 유럽 내 합작법인(JV) 고도화를 추진 중인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에 거대한 청구서이자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미 유럽 내 생산기지를 갖춘 한국 기업이라도 배터리를 만들기 전 단계의 물질인 전구체 등 원재료 조달 구조는 여전히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비용 청구서다. 중국산 저가 배터리 소재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대체 공급망 확보를 위한 물류비와 초기 원가 부담이 불가피하게 상승한다. 리튬·니켈 등 핵심 광물의 정련 마진이 높은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할 경우 일시적인 제품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반면 중장기적으로 보면 시장 선점 기회가 될 수 있다. EU가 호주·캐나다·동남아시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가동해 대체 공급망 다변화를 본격화함에 따라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거대한 공간이 열린다. 탈중국 공급망 체계를 선제적으로 완비한 기업이 유럽 시장의 점유율을 독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상무는 "앞으로 유럽 비즈니스의 성패는 단순한 배터리 제조 단가 싸움이 아니라 조달 청정도를 입증하는 공급망 실사 능력이 가를 것"이라고 제언했다.
기업이 지금 당장 점검해야 할 3대 경제안보 지표
첫째, 품목별 중희토류(NdFeB 영구자석·Dy 등) 중국산 비중 65.0% 초과 여부 추적이다. 유럽 수출용 모터·배터리 전반에 걸쳐 핵심 영구자석 소재의 중국산 조달 비율이 상한선을 넘을 경우 역내 판매가 불가능하므로 세부 품목별 공급처 추적이 필수적이다.
둘째, 북미·유럽 규제 동시 충족 광구의 장기 구매 계약 현황 점검이다. 미국 IRA와 EU CRMA의 보조금 및 진입 요건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도록 인도·호주 등 신뢰할 수 있는 제3국 광산과의 장기 선구매 계약 지분을 선제 확보해야 한다.
셋째, 유럽 역내 블랙매스(Black Mass) 확보와 리사이클링 공급망 가동률 확인이다. 오는 2030년까지 의무화되는 역내 재활용 소재 비율(25.0%)을 맞추기 위해 폐배터리 스크랩의 수거와 방전 후 파쇄를 거쳐 나오는 중간 과정물인 블랙매스 조달 체계를 현지 전문기업과 연계해 완비해야 한다.
이제 유럽 시장에서 생존은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라 중국산 공급망과 결별하는 속도에 달려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