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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열전] 혹 탄(Hock Tan) "브로드컴 통행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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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열전] 혹 탄(Hock Tan) "브로드컴 통행세"

훅탄 브로드컴 CEO/ 사진=브로드컴  이미지 확대보기
훅탄 브로드컴 CEO/ 사진=브로드컴
인공지능이 세계경제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가운데 또 한명의 인공지능 스타가 떠오르고 있다. 지금 대중의 시선은 화려한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이나, 생성형 AI의 문을 연 오픈AI(OpenAI)의 샘 알트만에 쏠려 있다. 그러나 거대한 AI 생태계의 심연(深淵)을 들여다보면, 그 모든 데이터가 오가는 물리적 길목을 틀어쥐고 막대한 '통행세'를 거두어들이는 보이지 않는 지배자가 존재한다. 그가 바로 글로벌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제국 브로드컴(Broadcom)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바로 혹 탄(Hock E. Tan)이다.

기술을 종교처럼 받들며 세상을 바꿀 혁신을 부르짖는 실리콘밸리에서, 혹 탄은 철저한 이단아이다. 1951년 말레이시아 페낭의 가난한 노동자 계층 화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자폐 스펙트럼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학업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1971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기계공학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그 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최고의 공학 지식과 고도의 재무 감각을 동시에 손에 쥐었으나, 그의 커리어는 반도체 연구실이 아닌 제너럴 모터스(GM), 펩시코(PepsiCo)의 재무 부서와 벤처 캐피털에서 시작되었다. 기업의 현금 흐름을 해부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훈련을 거친 그는 반도체 산업을 '첨단 기술의 집약체'가 아니라 '마진율과 잉여현금흐름(FCF)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바라보았다. 이는 훗날 브로드컴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과 혹독한 비용 절감이라는 경영 철학의 뼈대가 된다.

혹 탄의 경영 방식은 기술 기업이라기보다는 철저한 사모펀드(Private Equity)의 롤오버(Rollover) 전략과 맞닿아 있다. 그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2006년, 사모펀드 KKR과 실버레이크가 휴렛팩커드(HP)의 자회사였던 아바고(Avago)를 인수하며 그를 CEO로 앉히면서부터다. 이후의 연대기는 반도체 업계를 뒤흔든 거대한 포식의 역사다. LSI 코퍼레이션(2013년)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컸던 통신용 반도체의 제왕 브로드컴(Broadcom Corp.)을 370억 달러에 집어삼켰다. '새우가 고래를 삼킨' 이 세기의 빅딜 이후, 그는 인지도가 높은 브로드컴으로 사명을 바꾼 뒤 전례 없는 구조조정의 칼을 빼 들었다.

그의 이른바 '프랜차이즈 모델(Franchise Model)'은 냉혹할 정도로 직관적이다. 인수한 기업을 여러 사업부로 쪼갠 뒤, 해당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또는 2위를 차지하는 핵심 알짜 부서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매각하거나 폐기한다. 당장의 현금 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는 장기 기초 R&D(연구개발) 예산과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은 대폭 삭감된다.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제품 가격 결정권(Pricing Power)을 극대화하고, 여기서 창출된 막대한 잉여현금을 바탕으로 다시 더 큰 기업을 사냥하는 레버리지 바이아웃(LBO)의 교과서를 반도체 시장에 구현한 것이다.
2017년그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제왕 퀄컴(Qualcomm)을 1,170억 달러에 적대적 인수하려 하며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비록 국가 안보와 중국 통신 굴기를 우려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무산되었으나, 이 사건은 그가 그리는 제국의 스케일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다. 반도체 시장에서의 M&A가 한계에 부딪히자, 그는 멈추지 않고 기업용 인프라 소프트웨어 기업인 CA 테크놀로지스, 시만텍 엔터프라이즈, 그리고 61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에 클라우드 공룡 VM웨어(VMware)마저 집어삼키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거대한 인프라 생태계를 완성했다. 엔비디아가 AI 연산의 '두뇌(GPU)'를 독점했다면, 혹 탄의 브로드컴은 그 두뇌들을 연결하는 '신경망(Networking)'과 기업들의 독립을 돕는 '맞춤형 설계(ASIC)'를 독점하고 있다.

지금의 AI는 단일 칩의 성능보다 수만 개의 GPU를 데이터센터 단위로 묶어 데이터를 얼마나 병목 현상 없이, 빠르게 전송하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 여기서 브로드컴의 스위치 칩(Tomahawk, Jericho 등)과 라우팅 장비는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 데이터센터의 표준이자 대체 불가능한 인프라다. GPU 간의 데이터를 연결하는 PCIe 스위치나 이더넷(Ethernet) 네트워크 인프라에서 브로드컴의 장비를 배제하고 거대 AI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AI 열풍으로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할수록, 혹 탄의 금고에는 쉼 없이 통행세가 쌓이는 구조다.

구글,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현재 엔비디아의 턱없이 높은 GPU 가격과 독점적 공급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사의 서비스에 최적화된 자체 AI 반도체를 만들고자 하지만, 반도체 설계부터 패키징, 파운드리(위탁생산) 조율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역량은 부족하다.이 틈새를 정확히 파고든 것이 바로 브로드컴이다.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 메타의 맞춤형 칩(MTIA) 등 빅테크의 독자 노선 이면에는 브로드컴의 설계 IP(지식재산권)와 기술 지원이 필수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반엔비디아 연합군이 강해질수록, 맞춤형 칩(ASIC)의 설계 외주 시장을 장악한 브로드컴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진다.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혹 탄을 평가하자면, 그는 반도체라는 첨단 기술 산업에 존재했던 '낭만'을 걷어내고 철저한 '효율'을 이식한 냉혹한 자본가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엔지니어들은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숫자에만 집착하는 그의 방식을 비판하기도 한다. 미래를 향한 모험적인 투자보다는, 이미 성숙한 기술을 독점화하여 이익을 짜내는(Cash Cow) 데 집중한다는 지적이다.주주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그는 의심의 여지 없는 당대 최고의 경영인이다. 불필요한 사업을 도려내고, 시장 지배력을 극대화하여 마진율을 소프트웨어 기업 수준인 70% 이상으로 끌어올린 그의 역량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2023년 미국 경영인 연봉 1위에 오른 그의 천문학적인 보상은, 철저히 숫자로 증명해 낸 그의 성과에 대한 시장의 보답이다.

그가 조립해 낸 이 거대한 독점적 인프라는 현재 인류의 가장 혁신적인 도전인 AI 혁명을 떠받치는 가장 튼튼한 기반암이 되었다. 천재적인 엔지니어들이 AI의 미래를 상상할 때, 천재적인 재무 공학자 혹 탄은 그들이 뛰어놀 수밖에 없는 거대한 운동장을 짓고 입장권을 팔고 있다. 이것이 혹 탄이라는 인물이 인공지능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경제 현상 그 자체인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