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가 메모리 독식… 자동차·의료기기 부품난 현실화
구형 D램 가격 올해만 최대 100% 급등… 소비자 부담 직결
구형 D램 가격 올해만 최대 100% 급등… 소비자 부담 직결
이미지 확대보기자동차혁신연합(Alliance for Automotive Innovation)을 포함한 미국 주요 업종 단체 9곳은 지난 3일(현지시각)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에게 공동 건의문을 보내 "메모리칩 시장의 긴박한 불균형이 미국 가계 물가를 크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끌어올리고 공급망을 교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지난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AI 투자 붐이 반도체 제조사들의 생산 역량을 고수익 AI용 칩 쪽으로 빠르게 재편하면서, 자동차와 의료기기 산업이 부품 확보에서 밀려나는 구조적 문제가 공식화된 것이다.
9개 업종 단체가 한목소리로 "이미 피해 시작"
이번 서한에는 자동차혁신연합 외에도 전미소매연합(National Retail Federation), 의료기기제조사협회(Medical Device Manufacturers Association), 인터넷·TV협회(NCTA) 등 자동차·유통·의료·통신 분야를 망라하는 9개 단체가 이름을 올렸다.
공동 건의문은 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메모리칩 부족이 소비자 가전 비용 상승, 공급망 교란, 유통 마진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체들은 "파급영향이 이미 시작됐다"고 명시했다. 건의문은 메모리칩의 AI 데이터센터 쏠림이 가전·정보기술(IT) 제품 전반의 가격 인상으로 현실화됐고, 자동차·의료기기·여타 제조업 부문에도 생산 차질과 제품 수급 리스크를 가져오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S&P 글로벌의 분석은 이 우려를 수치로 뒷받침한다. 자동차용 구형 D램 가격은 2026년 한 해에만 70~100% 오를 것으로 예상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3사가 자동차용 D램 공급의 88%를 쥐고 있는 가운데 이들 모두 수익성이 훨씬 높은 데이터센터용 고객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AI가 빼앗은 생산라인… 車 업계는 '하위 우선순위'
기술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갈등의 뿌리가 더욱 뚜렷하다. 자동차 업계가 필요로 하는 부품은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자율주행 기술에 쓰이는 D램이다.
마이크론 최고사업책임자에 따르면 AI 가속기용 HBM 생산에는 일반 D램보다 3배 많은 웨이퍼 투입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2023년 30주치 이상 쌓였던 메모리 재고는 현재 약 8주치 수준으로 줄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30% 성장하면서도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서는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분석했으며, 빅테크와 클라우드 사업자들은 장기 계약과 선급금 구조를 통해 HBM을 선점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2021년 팬데믹 시기의 자동차용 반도체 대란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는 수요 급증에 따른 일시적 공급 충격이었지만, 이번은 AI 산업의 구조적 성장이 만들어낸 만성적 우선순위 재편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빅테크와 주요 AI 가속기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HBM 물량을 확보하면서 자동차나 스마트폰 제조사는 후순위로 밀리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개입 요청… 해법은 '수년 뒤'
단체들이 건의문을 재무부와 상무부에 동시에 보낸 것은 정책적 해결을 촉구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통해 마이크론 등 국내 메모리 생산 확충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왔다.
건의문은 이 보조금 집행 가속화, 무역 정책 조정, 제조사에 대한 균형 생산 압박 등의 수단을 간접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증설이 곧바로 해소책이 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 입안자들이 당길 수 있는 레버가 일부 존재하지만, 국내 추가 생산 역량이 실제 시장에 공급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한다.
AI 투자가 멈출 기미 없이 가속하는 한, 메모리 반도체를 둘러싼 산업 간 자원 쟁탈전은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자동차 업계로서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전환이 가속하면서 D램 의존도가 높아지는 시점에, 공급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구조적 취약성이 현실화된 셈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