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붐에 IPO·증자 봇물…JP모건 “2년간 2271조원 순공급”
이미지 확대보기스페이스X, 오픈AI, 앤스로픽 등 대형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상장이 미국 증시의 오랜 ‘주식 희소성’ 시대를 끝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사주 매입과 비상장 장기화로 줄어들던 공개시장 주식 공급이 AI 투자 붐을 계기로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스페이스X와 오픈AI가 월가의 주식 부족 시대를 끝내고 있다며 미국 주식시장이 닷컴버블 이후 보기 드문 규모로 다시 팽창할 가능성이 있다고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기업공개(IPO), 2차 공모, 증자 등 각종 주식 발행은 자사주 매입 효과를 감안한 뒤에도 앞으로 2년 동안 미국 주식시장에 약 1조5000억달러(약 2271조원)의 순공급을 더할 전망이다. 현실화하면 1990년대 후반 이후 가장 강한 순주식 발행 국면이 된다.
이는 지난 20년 가까이 미국 증시를 지탱해온 구조와 반대 방향이다. 그동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만으로 약 12조달러(약 1경8168조원)어치 주식이 공개시장에서 사라졌다. 주식 수가 줄어드는 흐름은 주주환원과 주가 상승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 자사주 매입 시대에서 발행 시대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증시는 오랜 기간 ‘디이퀴타이제이션(de-equitization)’의 혜택을 누렸다.
디이퀴타이제이션은 기업의 자사주 매입과 상장폐지, 비상장 기업의 상장 지연 등으로 공개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수가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기업들은 이익과 현금을 배당보다 자사주 매입에 투입했고 비상장 기업들은 더 오래 비상장 상태로 남았다. 그 결과 공개시장에서 살 수 있는 주식은 줄어들고 제한된 물량을 두고 투자자 수요가 몰리면서 주가에는 구조적 지지력이 생겼다.
빈센트 델루아르 스톤엑스파이낸셜 글로벌 매크로 전략가는 “과거에는 유통주식 수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투자해야 하는 새 시대”라며 “음악이 나오고 있으니 춤을 춰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이스X는 이같은 변화의 상징적 사례다. 일론 머스크의 로켓·위성·AI 복합기업인 스페이스X는 지난주 사상 최대 IPO를 통해 750억달러(약 114조원)를 조달했다. 상장 첫날 주가는 19% 급등했다.
앞으로는 오픈AI와 앤스로픽도 대형 IPO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알파벳, 메타플랫폼스, 오라클 등 기존 대형 기술기업들도 AI 투자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주식 매각에 나서고 있다.
◇ AI 투자비, 현금·부채만으론 부족
AI 투자 붐은 기업 재무 전략을 바꾸고 있다. 대형 기술기업들은 초기에는 보유 현금과 잉여현금흐름으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를 감당했다. 이후에는 채권 발행으로 부족분을 메웠다. 그러나 금리가 높아지면서 차입 비용이 커졌고, AI 투자 규모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제는 현금흐름과 부채만으로 부족해지자 주식 발행까지 동원하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델루아르 전략가는 “처음에는 이익과 잉여현금흐름으로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부채를 조달했다”며 “이제는 현금흐름, 부채, 주식까지 모두 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알파벳은 대표적 사례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오랫동안 대규모 자사주 매입 기업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일본 등에서 부채를 조달해 AI 확장에 나선 데 이어 850억달러(약 129조원) 규모의 주식 매각도 계획하고 있다.
스페이스X와 오픈AI, 앤스로픽은 또 다른 유형의 사례다. 이들은 아직 수익성이 약하거나 대규모 손실을 내면서도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기업들이다. 네드데이비스리서치 계산에 따르면 세 회사는 단기간에 1700억달러(약 257조원) 이상을 조달할 수 있다.
◇ “누가 이 물량을 살 것인가”
문제는 시장이 이 모든 물량을 흡수할 수 있느냐다. 개별 거래만 보면 감당 불가능한 규모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IPO와 증자, 기존 주주의 보호예수 해제 물량이 한꺼번에 늘어나면 시장 전체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주식 공급 증가가 그동안 거의 사라졌던 질문을 되살리고 있다”면서 “그 질문이란 ‘도대체 누가 이 모든 주식을 살 것인가’”라고 전했다.
올해 들어 약 160개 기업이 IPO를 통해 1200억달러(약 182조원) 이상을 조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앞선 2년간 합산 규모를 넘어선다. 이미 상장된 기업의 추가 주식 발행까지 포함하면 올해 신규 공급 규모는 3600억달러(약 545조원)를 넘어섰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최근 5년 중 가장 큰 규모다.
로버트 버클랜드 전 씨티그룹 전략가는 자사주 매입과 유통주식 감소가 증시에 양적완화(QE)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봤다. 그는 지금 상황을 “공격적인 이퀴타이제이션”이라고 표현했다. 기업들이 주식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늘리는 국면이라는 뜻이다.
◇ 대형 IPO 뒤 수익률 둔화 우려
대형 IPO가 줄줄이 이어질 경우 증시 수익률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노아 와이스버거 BCA리서치 미국 주식 전략 책임자는 40년간 약 1만2000건의 IPO를 분석한 결과 대형 IPO 이후 12개월 동안 S&P500 수익률이 다른 기간보다 낮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대형 IPO 이후 1년간 S&P500은 중간값 기준 8% 상승하는 데 그쳤고 약 20%의 경우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는 앞으로 매우 큰 IPO가 여러 건 나올 예정이기 때문에 우려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이니고 프레이저 젠킨스 얼라이언스번스타인 공동 기관솔루션 책임자는 주식 발행 증가는 향후 수익률을 낮추고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위험 요인이지, 시장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기업 이익이 견조하면 증시를 계속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시장을 끌어내리는 전환점으로 보기보다 투자자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 수준을 더 현실적으로 봐야 하는 상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 높은 주가가 기업엔 기회
기업들이 주식 발행에 나서는 이유는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높은 주가 덕분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도 크다.
현재 S&P500은 주가수익비율(PER) 25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 정도 평가는 2000년 이후로도 드문 높은 수준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주식 투자자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있는 시점에 지분을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채권시장 조달 비용도 여전히 높다. 연방준비제도가 2023년 금리를 20여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뒤, 부채 조달은 이전보다 비싸졌다. 반면 미국 증시는 이후 약 30조달러(약 4경5420조원) 규모의 랠리를 이어가며 주식 발행 조건을 좋게 만들었다.
존 루크 타이너 앱터스캐피털어드바이저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많은 기업들이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며 “그들이 주식이 싸다고 생각해서 시장을 두드리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개인투자자 수요도 한 축
이번 주식 공급 붐에는 개인투자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자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 거래는 전체 주식 거래량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이는 2010년의 두 배 수준이다.
스페이스X는 IPO 물량의 20%를 개인투자자에게 배정했다. 일반적인 대형 IPO보다 높은 비중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스페이스X 같은 상징적 기업에 강한 관심을 보이면서 기업들이 더 쉽게 공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델루아르 전략가는 이런 기업은 실제 재무전망을 들고 기관투자자 대상 설명회를 하는 것보다 개인투자자에게 파는 것이 훨씬 쉽다며, 개인투자자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사실상 “어떤 가격에도 사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런 수요가 건강하고 넓은 시장 기반을 뜻하는지는 별개 문제다. 테세라PE의 찬 안 창업자는 스페이스X를 둘러싼 열기가 AI와 우주개발에 대한 열망뿐 아니라 그동안 일반 투자자들이 비상장 거대기업에 접근하지 못했던 데서 생긴 수요의 누적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엄청난 수요가 있다”며 “하지만 그 수요가 건강하고 폭넓은 시장의 증거는 아니고, 접근 기회가 부족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 주식 공급, 강세장 변수로 부상
역사적으로 대규모 주식 발행은 대형 투자 붐과 함께 나타났다. 철도, 운하, 통신망 구축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고 기업들은 주식 발행으로 확장 자금을 마련했다. AI 투자 붐도 같은 패턴에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공급이 너무 빠르게 늘 경우 강세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수년간 미국 증시는 높은 인플레이션, 여러 전쟁, 신용 불안에도 버텨왔다. 그러나 새 주식 공급이 본격적으로 늘면 그동안 자사주 매입과 주식 부족이 제공했던 구조적 지지력이 약해질 수 있다.
버클랜드 전 전략가는 지금까지는 주식 공급이 본격적으로 늘기 전이라 강세장에 맞서지 않았지만, 이제는 공급이 정말로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이스X는 현재 시장의 관심을 독점하고 있지만 뒤이어 오픈AI와 앤스로픽, 다른 AI 관련 기업들이 대기하고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투자자 자금이 다른 곳에 묶이기 전에 먼저 시장에 나가야 한다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미국 증시는 이제 다시 공급이라는 변수를 마주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투자자들은 자사주 매입과 비상장 장기화가 만든 주식 부족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AI 투자 붐이 IPO와 증자, 대규모 주식 매각을 촉발하면서 월가는 다시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가고 있다”면서 “늘어나는 주식을 시장이 모두 사줄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알림]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