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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들고 있다면… AI 리스크, 이제는 '워싱턴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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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들고 있다면… AI 리스크, 이제는 '워싱턴 변수'다

이란 종전에 나스닥 3.1% 환호, 앤스로픽 모델 규제는 왜 묻혔나
美 'AI 모델 수출통제' 첫 발동… 삼성·SK HBM 발주 타이밍까지 닿는다
미국이 처음으로 'AI 모델 자체'를 수출통제 대상에 올렸다. 앤스로픽 사태가 AI 산업 전체의 새 위험을 드러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 처음으로 'AI 모델 자체'를 수출통제 대상에 올렸다. 앤스로픽 사태가 AI 산업 전체의 새 위험을 드러냈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이 처음으로 'AI 모델 자체'를 수출통제 대상에 올렸다. 배런스는 지난 15(현지시각) 이번 앤스로픽 사태가 AI 산업 전체의 새 위험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그간 수출통제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ASML 노광장비처럼 '물리적 하드웨어'에 집중됐다. 이번엔 소프트웨어 단계까지 규제가 확장됐다. ① 정부가 최첨단 모델을 직접 차단했고 ② 증시는 이를 외면했으며 ③ 한국 반도체 수급 변수로 번질 가능성을 남겼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탈옥 논란이 촉발한 초강수


앤스로픽은 지난 12일 최신·최강 모델인 페이블5와 미토스5의 접속을 전면 중단했다. 미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외국 국적자의 접근을 차단하라는 수출통제 지침을 내리자, 기술적 우회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전 고객 대상의 서비스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둔 결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에게 서한을 보냈다고 전했다. 통제 대상에는 회사의 외국 국적 직원까지 포함됐다.

악시오스는 다른 기업이 미토스 모델을 '탈옥(jailbreak·안전장치 우회)'했다고 주장하자 상무부가 움직였다고 보도했다. 탈옥은 개발사가 모델에 심어둔 차단 규칙을 우회하는 기법이다. 사이버 공격 코드나 유해 정보처럼 원래는 답을 거부하도록 설정된 영역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 안전장치를 풀어내는 식이다.

앤스로픽은 정면 반박했다. 회사는 공식 성명에서 좁은 범위의 우회 기법 하나를 빌미로 상용 모델을 회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출시 전 미·영 정부와 외부 기관이 수천 시간 검증했지만 광범위한 '보편적 탈옥'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란 종전 호재에 묻힌 '정부 개입' 리스크


증시 반응은 정반대였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123.1% 뛰었다. 시장은 이번 조치를 산업 전반의 규제 신호가 아니라 특정 기업과 행정부 사이의 충돌로 해석했다. 결국 시장은 '정책 리스크'보다 '유동성·유가 변수'를 더 크게 봤다.

호재의 실체는 중동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이란과 전쟁을 끝내고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공식 서명은 오는 19일로 예정됐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합의 직후 4.5% 넘게 빠져 배럴당 80달러까지 내렸다. 3월 첫째 주 이후 가장 낮은 값이다. 유가 하락과 위험자산 선호가 겹치며 기술주가 날아올랐다.

문제는 '정부 개입'이라는 새 변수다. 프리덤캐피털마켓의 폴 믹스 상무는 배런스에 "연방정부가 어느 기업에서든 한순간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영구적 대립 관계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 일이 벌어진 뒤로는 새 위험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맺은 매출 계약의 가치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투자자의 셈법이 복잡해졌다는 진단이다.

오픈AI 제쳤는데… '구원 투수' 필요한 1459조 몸값


이번 충돌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앤스로픽과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관계가 틀어진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모든 연방기관에 앤스로픽 사용 중단을 지시했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 회사를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했다. 살상력·감시 영역에서 제약 없이 AI를 쓰게 해달라는 국방부 요구를 거부한 결과였다. 틀어진 관계 위에서 규제가 또 터진 셈이다.

분쟁의 무게는 시점에서 나온다. 앤스로픽은 지난 1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를 위한 S-1 서류를 비공개 제출했다. 회사는 앞서 지난달 8(시리즈H) 투자 유치에서 9650억 달러(1459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블룸버그와 CNBC는 이를 앤스로픽이 오픈AI를 처음 앞지른 평가로 전했다. 믹스 상무는 "최고가에 최대 물량을 팔려면 정부와의 좋은 관계가 체크리스트에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규제 불씨가 IPO 흥행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경계다.

다만 완충 요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CNBC는 앤스로픽 고위 인사들이 분쟁 해소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와 만났다고 보도했다. 상무부와의 협의도 진행됐다. 한 정부 관계자는 모델 봉쇄가 몇 주 안에 풀릴 수 있다고 악시오스에 밝혔다. 시장이 이를 '일시적 잡음'으로 본 배경이다.

모델 규제에서 HBM까지… 한국 반도체 공급망 흔드나


한국 투자자에게 이 사안은 멀리 있지 않다. 시장에서는 규제 장기화 시 그 전이 경로가 단계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모델 접근 제한이 서비스 출시 지연으로 이어지면,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증설 속도가 조절되면서 설비투자(CAPEX) 계획이 바뀔 수 있다.

그 연쇄 효과의 끝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발주 타이밍과 물량 강도가 직간접적 영향을 받게 된다. 두 회사는 지난달 앤스로픽의 시리즈H 투자 라운드에 핵심 메모리 공급 파트너 성격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규제 국면의 장단기 방향성에 따라 AI 공급망 전반의 불확실성이 요동칠 수 있는 구조다.

투자자가 지금 지켜봐야 할 신호는 세 가지다.

첫째, 앤스로픽과 상무부 협의 결과와 접속 복구 시점이다. 봉쇄가 길어지면 AI 투자심리 전반이 식을 수 있다.

둘째, 오는 19일 이란 종전 서명과 유가 흐름이다. 유가가 더 내리면 위험자산 선호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셋째, 빅테크 AI 설비투자 계획의 유지 여부다. 이 흐름이 꺾이면 HBM 수요의 방향타도 함께 흔들린다.

증시는 호재를 골랐지만, 규제라는 변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증권가에서는 이 세 신호가 동시에 흔들릴 경우, 반도체 랠리가 '수요'가 아니라 '정책'에서 꺾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AI 시대의 변동성은 기술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