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새 또 상향… 2028년 삼성 610조·SK하이닉스 454조 "2030년까지 간다"
빅테크 700조 투자·HBM4 입도선매가 떠받쳐… 거품 판별 '3가지 숫자'
빅테크 700조 투자·HBM4 입도선매가 떠받쳐… 거품 판별 '3가지 숫자'
이미지 확대보기2분기 D램값 60% 폭등… 트렌드포스 "2011년 이후 최악 품귀"
전망의 출발점은 가격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은 직전 분기보다 58~63% 오른다. 낸드플래시는 70~75% 뛴다. 10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1분기에 D램 계약가가 분기 기준 90% 넘게 급등한 데 이은 추가 인상이다.
품귀의 골은 더 깊어졌다. 트렌드포스는 D램 공급부족률 4.9%, 낸드 4.2%, HBM 5.1%로 집계 기준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수익성 높은 AI 서버용 메모리로 캐파를 돌리면서 범용 제품이 동난 결과다. 새 공장 가동은 2027년 말에서 2028년에야 본격화된다는 게 트렌드포스의 진단이다.
한 달 새 또 상향… 삼성 610조·하이닉스 454조
눈여겨볼 대목은 수치가 한 달 새 또 뛰었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5월 초만 해도 삼성 2028년 영업이익을 약 494조 원으로 봤다. 그러나 5월 말 리포트에서는 메모리 호황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하이어 포 롱거(Higher for Longer)' 국면이라며 610조 원으로 다시 높였다. 환율·기간 가정에 따라 원문 수치에 다소 차이가 있는 만큼, '1000조'는 상징적 규모로 받아들이는 게 합리적이다.
특히 이번 골드만삭스의 전망치는 리포트 내 극단적인 고환율 지속(원화 약세) 가정과 함께, AI 인프라 확충으로 범용 D램 및 낸드 가격의 누적 복리 상승세가 2028년까지 꺾이지 않고 유지된다는 특수한 매커니즘을 전제로 산출된 수치다.
상향 폭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삼성 영업이익은 올해 374조 원, 2027년 530조 원, 2028년 610조 원이다. 한 달 전과 견주면 올해는 5.4% 올리는 데 그쳤지만 2028년은 23.3% 끌어올렸다. SK하이닉스도 올해 271조 원, 2027년 401조 원, 2028년 454조 원으로, 상향 폭이 올해 3.7%에서 2028년 24%까지 확대됐다. 골드만삭스는 SK하이닉스 2028년 낸드 영업이익 전망치를 36.8% 높였고, 일본 낸드 업체 키오시아 투자의견도 '매수'로 올렸다. 골드만삭스는 최소 2028~2030년 구간까지 호황이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전제하고 있다.
참고로 1000조 원은 지난해 토요타 영업이익(약 43조 원)의 20배를 넘는 규모다. 실제 실현 여부와는 별개로, 시장 기대감의 크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다. 일본 온라인에서 "삼성 한 곳이 일본 상위 100개사 합산 영업이익을 웃돈다"는 비교가 화제가 된 배경이다.
"닷컴버블과 다르다"… 슈퍼사이클 떠받치는 세 기둥
골드만삭스가 '초장기 사이클'을 확신하는 첫째 근거는 빅테크의 압도적 설비투자다.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메타 4사의 올해 합산 설비투자는 7000억 달러(약 1055조 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약 4000억 달러(약 603조 원)에서 60% 넘게 급증한 규모다. 과거 PC·스마트폰 사이클은 소비자 수요에 좌우됐지만, 이번에는 데이터센터·AI 인프라라는 기업 간 거래(B2B) 투자가 축이라는 점이 다르다.
투자 강도도 이례적이다. 신용평가사 크레디트사이츠 등에 따르면 빅테크의 설비투자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30%까지 치솟았다. AI 이전 10~15%의 두 배 수준이다(전통 제조업체가 보통 10% 안팎인 것과도 대조적이다). 그만큼 거품 논란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둘째는 범용 D램·낸드 가격 급등이다. 과거에는 가격 급등 뒤 급락이 반복됐지만, 이번에는 HBM 등 고부가 메모리가 전체 수익성을 떠받친다는 점이 다르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SK하이닉스의 D램 영업이익률이 70% 후반, 낸드는 40% 후반에 이를 것으로 봤다. 통상 변동성이 큰 산업에서는 보기 드문 수치다.
셋째는 장기공급계약(LTA) 구조다. 과거 메모리 시장은 공급 과잉과 수요 절벽에 가격이 출렁이는 '천수답'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빅테크가 물량을 선점하려고 3~5년 단위 LTA를 맺는다. 선수금과 물량 미인수 페널티 조항이 강해져, 공급자·수요자가 재고·가격 위험을 나눠 부담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업황이 급격히 꺾이는 위험이 줄었다는 게 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의 공통된 해석이다. 다만 수요가 급랭하면 페널티 조항이 오히려 고객 측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어, 완벽한 '실적 안전판'으로 보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월가는 2000년 닷컴버블과의 차이도 강조한다. 당시 시스코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52배였지만, 현재 엔비디아는 35배 수준이다. PER만 놓고 보면 밸류에이션은 닷컴버블 시기보다 낮다. 다만 그만큼 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은 여전하다.
HBM4 주도권 SK하이닉스 우위… 삼성은 추격
수급 불일치 국면에서 6세대 HBM(HBM4) 캐파를 더 확보한 쪽이 사이클의 과실을 더 가져간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HBM4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54%, 삼성전자가 28%, 마이크론이 1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HBM4 개발 완료와 양산 체제 구축을 공식 발표했다. 본격 양산·출하 경쟁은 올해 2월 시작됐는데, 삼성전자가 2월 초 업계 처음으로 HBM4 양산·출하를 공식화하며 먼저 치고 나갔다. SK하이닉스도 같은 1분기 안에 양산과 엔비디아 공급을 본격화했다.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에 탑재할 HBM4 초도 물량 기준으로 전체의 약 3분의 2(60~70% 수준)를 SK하이닉스에 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라 루빈은 이미 완전 양산 단계에 들어가 올해 말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될 예정이다. 맞춤형 제품 요구 속에서도 기존 HBM3E에서 입증한 안정적 수율과 엔비디아와의 견고한 파트너십이 대규모 수주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삼성전자도 만회 속도를 높인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엔비디아에 베라 루빈용 HBM4의 30% 이상을 공급하는 협상을 마무리 단계에 둔 것으로 전해졌다. HBM3E에서 겪은 부진을 HBM4에서 되돌리려는 행보다. 삼성은 차세대 HBM5 시제품도 처음 공개하며 열 관리 기술을 새로 선보였다.
두 회사의 전략 색깔은 뚜렷이 갈린다. SK하이닉스는 'HBM 집중·고수율'로 AI 사이클의 마진을 극대화하는 쪽이다. HBM이 전체 메모리 매출의 절반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삼성은 HBM 비중이 약 30%(추정)에 그치는 대신, 메모리·로직·파운드리를 함께 묶어 레버리지하는 '포트폴리오·공정 통합' 전략에 가깝다.
업계에서는 SK그룹 최태원 회장 발언도 주목한다. 그는 대만 컴퓨텍스에서 "향후 5년간 전체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D램·HBM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AI 생태계의 장기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공급자 스스로 가격 과열을 우려한 셈이다.
'서사'에서 '증명'으로… 균열 신호도
반면 위험 신호도 또렷하다. 메타가 올해 설비투자 가이던스를 1250억~1450억 달러(약 188조~218조 원)로 추가 상향한 직후, 주가가 하루 9% 넘게 빠졌다. 투자자 인내심이 무한하지 않다는 신호다. AI 매출이 투자 속도를 따라가는지가 사이클 지속의 관건이 됐다.
가격 급등의 역풍도 시작됐다. 트렌드포스는 메모리값 상승을 이유로 올해 스마트폰·노트북 생산 전망치를 끌어내렸다. 메모리가 완제품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전방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품귀가 단기 수익은 키우지만, 중장기 수요 기반을 갉아먹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삼성·SK 주주가 지켜볼 체크포인트
낙관 시나리오는 LTA 구조가 가격 변동성을 흡수하며 2030년까지 고수익이 이어지는 경우다. 비관 시나리오는 AI 투자가 조정되거나 뒤늦게 공급이 과잉으로 돌아서며 급락 사이클이 재현되는 경우다. 기본 시나리오는 그 사이에서 고점이 길게 이어지는 형태다.
AI 거품 여부를 가늠하려면 세 가지 지표를 함께 봐야 한다.
첫째, 빅테크 설비투자 증가율이다. 현재 4사 합산 투자는 전년 대비 60% 넘게 늘어 이미 과거 클라우드 1차 투자 정점을 웃돈다. 증가율이 꺾이면 메모리 주문도 함께 줄어든다.
둘째, HBM 단가와 가동률이다. HBM4 가격은 스택당 500달러(약 75만 원) 안팎으로 범용 D램의 여러 배다. 이 단가가 무너지면 고수익 구조의 근간이 흔들린다.
셋째, 빅테크의 잉여현금흐름(FCF)이다. 아마존은 올해 주요 투자은행 추정치별로 약 170억~280억 달러(약 25조~42조 원) 적자가 예상된다. 적자 폭이 커지면 시장이 투자 속도 조절을 요구할 수 있다.
삼성·SK 주주라면 분기마다 빅테크의 설비투자 가이던스, 두 회사 실적 발표의 HBM 평균판매가격(ASP) 언급, 잉여현금흐름과 재고 추이를 함께 따라 보면 된다.
골드만삭스의 1000조 원 전망은 강력하다. 그러나 그 숫자를 떠받치는 것은 결국 빅테크가 쏟아붓는 현금의 회수 속도다. 메모리의 운명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데이터센터의 손익계산서에 달려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