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보호무역 맞선 '신(新)군비 시대'… REPowerEU·데이터센터 전력망 투자 폭발
지멘스 증설 완료 전까지 시장 장악… 변압기 리드타임 5년 장기 호황의 비밀
지멘스 증설 완료 전까지 시장 장악… 변압기 리드타임 5년 장기 호황의 비밀
이미지 확대보기독일 일간지 베를트(WELT)는 지난 18일(현지시각) 유럽이 냉전기 이후 최대 규모의 군비와 인프라 투자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압박이 맞물린 결과다.
유럽은 현재 방산을 넘어 에너지 공급망,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반에서 자립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 거시적 흐름은 기술력과 납기 대응력을 갖춘 한국 전력기기와 방산 기업들에 대규모 수주 기회로 직결된다.
메가트렌드로 진화하는 유럽의 자립주의 공급망
유럽 국가들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분담금 증액 압박에 대응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군비 지출을 2.0% 이상으로 늘리는 추세다. 특히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전력망 현대화를 위해 오는 2030년까지 총 5840억 유로(약 1030조 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리드타임 5년' 극단적 공급 불균형과 한국의 시간 경쟁력
한국 기업들이 마주한 '운명의 시차'는 공급과 수요의 극단적인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지난 2021년 18개월에서 24개월 수준이던 글로벌 초고압 변압기 리드타임(주문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현재 48개월에서 60개월까지 늘어났다. 핵심 원자재인 방향성 전기강판(GOES) 공급 부족과 숙련 인력 부족이 겹친 탓이다.
국내 전력기기 3사는 유럽의 노후 전력망 교체 주기와 데이터센터 붐을 타고 이미 오는 2028년에서 2029년까지 반영되는 3년에서 4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반면 유럽 현지 공룡 기업인 지멘스 에너지는 전력망 설비 공장 증설에 20억 유로를 투입하며 추격을 시작했으나 생산능력 확대 시점은 오는 2028년으로 예상된다. 지멘스의 인도 기간이 최소 5년 걸리는 사이, 한국 기업들은 효율적인 공정 관리를 바탕으로 2년에서 3년 내 납기를 달성하며 증설 공백기를 공략하고 있다.
원가 절감과 턴키 역량으로 무장한 K-전력·방산의 침투
한국 전력기기의 경쟁력은 단순 납기를 넘어 가격과 패키징 역량으로 확장된다. 국내 기업들은 표준화된 생산 공정과 규모의 경제,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 구조를 확립해 메이저 업체 대비 높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설계·조달·시공(EPC) 통합 능력과 턴키 계약 솔루션까지 제공하며 시장을 장악하는 중이다.
방산 분야 역시 유럽의 탄약 및 무기 체계 생산능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결함을 파고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NATO는 멤버국들에 '30일 이상 탄약 비축 기준' 강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나 유럽 현지의 포탄 생산능력은 러시아 대비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에 K9 자주포 등을 생산할 현지 공장인 'H-ACE 유럽'을 착공하며 동유럽 방산 공급망의 핵심 축을 박았다. 현대로템과 함께 폴란드 후속 물량 계약을 추진하며 시장 침투율을 높이고 있다.
리스크 요인과 2028년 공급 정상화 변곡점
다만 유럽 장기금리가 3.5%에서 4.0% 이상으로 고착화되어 인프라 투자가 지연되거나, EU의 재정규율 복귀로 국방비 예산 집행이 둔화할 가능성은 투자자가 경계해야 할 트리거다. 특히 전년 대비(YoY) 수주 증가율이 둔화하는 시점은 주가의 피크아웃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오는 2028년은 유럽 시장의 수요 피크가 아니라, 현지 공룡 기업들의 증설 물량이 쏟아지는 '공급 정상화의 시작점'이자 '가격 협상력 약화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의 하이테크 인프라 주도주들이 가시적인 실적 성장세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이번 사이클은 수요가 아니라 공급 부족이 만든 시간의 시장이며, 결국 이 시장은 누가 먼저 납품하느냐의 게임이다.
투자자 핵심 체크포인트
첫째, 유럽 경쟁사의 리드타임 단축 시점 점검이다. 지멘스 에너지 등 유럽 메이저 업체의 납기 주기가 현재 5년에서 3년 수준으로 단축되는 신호가 나타나면 공급 정상화에 따른 사이클 피크를 준비해야 한다.
둘째, 유럽 연동 현지 법인의 매출 전환율 확인이다. 효성중공업 영국 공장 등 EU 영토 내 거점의 수주액이 실제 매출로 전환되는 속도가 규제 우회 및 이익 성장의 실질 지표다.
셋째, 동유럽 국방비 집행률 및 탄약 공급망 추이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예산 집행률과 전년 대비 수주 증가율(YoY)을 상시 확인해야 K-방산의 계약 파기 리스크를 방어하고 중장기 실적 가시성을 신뢰할 수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